올해는 ‘쥐의 해’다.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는 인간이 보기에 쥐는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지만 때로는 인간보다 나은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지진이 나기 전 쥐들이 먼저 이를 알아채거나 배가 가라앉기 전 인간보다 빨리 갑판 위로 뛰어 올라가는 것은 여러 번 목격됐다.
그러나 어떤 쥐보다 미래를 예견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 작년 미 의학 전문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드슨’에 이름이 오른 고양이가 있다.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에 있는 스티어 양로원에 살고 있는 오스카다. 이 고양이는 환자들이 누워 있는 여러 방을 돌아다니다가 죽음이 임박한 사람이 있으면 그 옆에 조용히 앉는다. 오스카가 머무는 환자는 2시간 안에 세상을 떠난다.
처음에는 우연의 일치라고 여겼던 의료진들도 25번이나 이런 현상이 반복되자 더 이상 오스카의 예견 능력을 의심하지 않고 오스카가 가까이 다가가 멈추는 환자 가족에게 임종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통고하게 됐다. 이 고양이는 환자들의 마지막 길을 따뜻이 배웅한 공로로 감사패까지 받았다.
동물 보호소에서 데려온 2살짜리 고양이가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다. 고양이만 맡을 수 있는 ‘죽음의 냄새’ 때문이라는 설, 죽기 직전 사람은 동작이 다른데 이를 파악했기 때문이라는 설, 그밖에 현존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이라는 설 등이 있으나 오스카가 남다른 예지 능력이 있다는 점만은 모두 인정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인간에게는 이런 능력이 없다. 모든 동물 중 가장 뛰어난 두뇌를 가졌고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규명할 정도로 재주 있는 인간이지만 때로는 세상일을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 세모에 샌프란시스코 동물원에서 일어난 호랑이 살인사건은 그 단적인 예다. 지난 크리스마스 오후 5시 동물원이 문 닫기 직전 우리를 뛰쳐나온 호랑이 한 마리가 친구들과 구경 온 17살 난 소년을 물어 죽였다. 미국 대도시 한복판에서 인간이 호랑이에 물려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지만 인간은 이를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현재에 상주하는 보통 동물과 달리 인간은 내일을 준비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어려서 학교에 다니는 것은 장차 경제적 독립을 하기 위함이고 지금 열심히 일하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보다 나은 삶과 은퇴를 위해서다. 미래를 내다보고자 하는 욕망은 ‘선지’(foresight)라는 뜻을 가진 프로메테우스에 의해 창조된(그리스 신화) 인간의 숙명인지 모른다.
새해에는 미주 한인 사회에 영향을 미칠 굵직굵직한 이슈들이 어느 때보다 많이 얽혀 있다. 우선 한국과 미국 모두 정부가 바뀐다. 노무현과 정치 철학이 반대인 이명박 정부가 들어설 경우 경제 정책 등 국내 문제는 물론이고 대북 관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미국 선거는 지금으로서는 결과가 오리무중이지만 민주당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이 높고 본선에서도 민주당에 부가 있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경우 미국 사회 전반에 걸쳐 상당한 반향이 있을 것이며 이라크나 북한 정책도 달라질 것이다.
한인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사건으로 한미간 비자 면제제도 시행을 빼놓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현재 연 90만 명을 헤아리는 방문객 수는 2배 가까이 늘어날 것이며 이들 1인당 3,000달러 이상 돈을 뿌릴 것으로 기대되는데 그 최대 수혜자는 한인 사회가 될 것이다. 한미 간 경제는 물론 외교 안보 측면에서도 더욱 관계를 돈독하게 할 것으로 기대되는 한미 자유 무역협정이 비준을 앞두고 있고 북핵 타결을 전제로 한 미북한 간의 수교 움직임도 가시화 되고 있다. 반면 작년 한 해 동안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 충격파를 던진 서브프라임 파동은 올해도 미 소비자들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기류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지는 신통력을 가진 고양이 오스카로서도 알 길이 없을 것이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를 기원하면서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는 것, 그것 말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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