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도 차가운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다. 대륙을 가로질러 불어오는 북풍이 언제 한파를 몰고올 지 모를 지금의 겨울바다는 연말 우리 스시바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해줄 참치, 방어, 도미, 광어 등을 쫓는 선단들이 짧은 해를 안 넘기려고 서둘러 조업을 할 때다. 일본에서는 홋카이도(北海道) 이북, 캄차카 반도를 걸쳐 베링해, 알라스카 근해의 차고 깊은 바다에서 잡는 ‘털게’가 이 겨울 최고의 상품일 테고, 복 사시미가 제철일 것이다. 한국은 동해안 감포 앞바다에서 머구리(잠수부)들이 따 올리는 전복이 최고일 테고, 또 설악산을 뒤집어놓은 깊이만큼의 속초 앞바다에서 잡히는 홍게가 제철일 것이다.
한편 마루 한켠에 쌀가마를 쌓아놓은 한국의 농부는 올 농사의 결실을 속으로 셈해가며 부자된 기분에 젖어 있을 것이다. 쌀이 우리에서 ‘부’의 상징이었다면 그 옛날 일본에서는 무력(武力)의 원천은 쌀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히데요시(豊信秀吉)는 전국 각 영지에서 생산되는 쌀의 수확량을 근거로 100석(가마) 당 3명꼴로 징집을 명했고 이렇게 편성된 16개 군단 15만 병력이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1만5천명을 선봉으로 대륙출병을 감행하지 않았던가. 그 옛날 생선을 쌀에 보관하면서부터 시작된 스시문화에서 이제 그 쌀이 우리 스시의 생명인 것이다.
쌀이 나쁘면 스시는 생명을 잃은 빛바랜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쌀이 나쁘면 스시맨의 칼끝이고 손끝이고 다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참치의 담백한 맛, 방어의 농후한 맛, 광어의 고소한 맛, 새색시 볼처럼 홍조를 띈 흑돔의 감치는 맛, 씹을수록 탄력있는 오징어의 백치미 같은 단순 맛, 연어의 노리끼리한 서구적인 맛, 새우의 단맛… 이 모든 스시는 좋은 쌀로 정성껏 빚은 초밥과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제 맛을 내고 그 예술성은 빛이 나는 것이다.
설령 아니끼(兄貴-좀 처진 생선을 일컫는 스시바 은어)라도 제 맛이 살아있는 건 순전히 좋은 쌀 덕분이다. 이 겨울 뼈 속까지 냉기가 스미는 찬물에 쌀을 씻고 생선을 다듬는 스시맨의 손이 트지 않고 늘상 스시바 손님에게 부드러운 손길을 내보이는 건 쌀로 빚은 식초물에 늘 손을 담구기 때문이다. 옛 어른들이 말하는 쌀의 영험은 여러 예가 있지만 아무튼 서생원조차도 감히 쌀가마에 구멍을 못 내며 마당 한켠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볏단의 벼이삭 한 톨도 못 건드리는 것이다.
도쿄의 이이다바시(飯田橋), 그 옛날 오태환 목사님이 이끌던 한인교회가 있던 곳, 동경대학 이학부 건물이 끝나는 곳쯤에 있는 한 이자까야(居住屋-선술집)는 철따라 은어, 모래무치. 멸치, 갈치, 망둥어, 정어리, 상어, 무지개 송어 또 무슨 생선 등 보통의 스시바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귀한(?) 어종을 많이 취급했는데 때를 놓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제철 생선’을 찾는 이색 취향의 일인들에게 대단히 인기가 있었다. 지금의 이 계절은 전어와 도다리 세꼬시(背越-작은 생선을 내장과 비늘만 제거하고 뼈째로 얇게 썬 회)와 겨울이 진미인 호다떼가이(가리비), 피조개, 굴, 또 이름도 생소한 조개류를 가지고 인근 퇴근길 직장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머리와 꼬리만 붙어 있으면 훌륭한 횟감인 이들에게 망둥어도 예외는 아니고 껍질 속에만 들어 있으면 훌륭한 조개인 것이다.
뉴욕 맨하탄의 Iron Chef ‘N’이 이끄는 ‘LITTLE TOKYO’라고 불리는, 따로이 Party Room은 물론 지정석까지 갖춘 ‘일본 Restaurant N’은 N이 개발해 상품화까지 시킨 Recipe와 독특한 퓨전 스타일을 가지고 연말 뉴욕을 찾는 부호들, 월가의 큰손, 유명 연예인, 스포츠인, 고액 연봉의 Newyorker등을 상대로 하루 10만불의 Business를 승부로 벌써부터 도쿄 스끼지(築地) 수산시장으로부터의 이 겨울철 최고의 스시재료가 공수되고 있을 것이다.
이 연말 우리 스시바도 거래처 Fish Market에 어떤 생선이 새로이 입하되었는지를 늘 물어 송년을 즐기러온 Party손님을 즐겁게 해주자. 대부분의 생선은 기름기 오른 이 겨울은 다 맛이 있다. 단골들은 이런 살아있는 분위기와 스시맨의 계절감각이 뛰어난 스시바를 좋아하며 또 다른 손님을 몰고 올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