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후보에게 귀에 번쩍 뜨일 뉴스가 있다. 여론조사 결과 1위다. 40%가 넘는 지지율로. 정말인가. 한 한국 내 보도에 따르면 그렇다. 단, 그 이회창 지지 1위 지역은 한국이 아니다. 미국의 뉴욕-뉴저지 일원이라고 했던가.
조국에 관심을 가져주어서 고맙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받아들이겠다. 그렇지만 너무 한 것 아닌가. 마치 미국에서 한국 대선이 열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니. 미국 정치에나 관심을 가져라.
한국 대선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높다. 미주 한인사회가 보이고 있는 이 현상에 대해 한국의 특파원들이 저마다 칼럼이란 걸 통해 한국에 전하는 얘기다. 충고를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아냥거림이다. 왜 본국인들보다 더 난리냐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 대선에 대한 미주 한인의 높은 관심이 이처럼 핀잔만 들을 성질의 문제일까. 수긍이 잘 안 간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정말이지 한국 대선에 이처럼 관심이 높은 적이 없었다. 이 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힌두교 근본주의 본부가 있는 곳은 인도가 아닌 런던이다. 아일랜드의 축제인 성패트릭 데이 축제에 아일랜드 본토에서는 동성애자의 참가가 진작 허락됐다. 뉴욕과 필라델피아의 아일랜드인들은 아직도 엄격히 금하고 있다. 아일랜드 전통에 어긋난다는 뜻에서다.
‘원거리 민족주의’란 말이 있다. 해외에 사는 사람들이 더 전통에 집착한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대한 자부심이 여간 강한 게 아니다. 그 원거리 민족주의는 때로 이런 식으로도 표출된다고 한다. 해외의 화교들이 중국 본토인보다 더 대만 공격을 거세게 주장하는 식으로.
왜 그토록 관심인가. 원거리 민족주의가 분명히 그 한 답이 될 수 있다. 다른 측면도 있을 것 같다. 세계화의 본류다. 미국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미국에서 한국을 바라본다. 한국에서의 흐름이란 것이 그런데 그렇다. 세계화, 세계사의 흐름에 역류한다.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낀다. 세계화의 한 가운데에 있다. 그 리듬이 부지부식 간에 체화(體化)돼 있어서다. 세계사적 보편성에 대한 한국사의 특수성.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걸 직감한다. 거기서 위기까지 느낀 것이다.
왜 한국 대선에 그토록 높은 관심을 보이는가. 핀잔까지 들으면서. 이에 대한 또 다른 답이 아닐까. 달리 말하면 일종의 ‘원거리 애국심’의 발로라고.
멀리서 보이는 한국, 노무현 정권 5년의 한국은 영락없는 국가 자폐증 환자였다. 총체적 소통장애의 현장이었다. 그 한 가운데에 있는 것이 386에 둘러싸인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자폐의 증세는 먼저 ‘우리끼리’의 형태로 나타났다. ‘미국’자만 들어가면 무조건 반대다. 동시에 이념과잉의 혁명 담론만 고집한다. 이른바 ‘87체제’다. 좌우간 친북(親北)이어야만 한다. 반외세여야 한다. 그게 ‘우리끼리의 자폐증’이다.
그 자폐의 증세는 먼저 오만과 착각의 합병 증세를 가져왔다. ‘우리’ 밖의 존재는 모두 타도의 대상일 뿐이다. 거기서 부활한 게 좌파 관념론으로, 역사를 역류시킨 것이다. 시대착오도 보통 시대착오가 아니다.
이 자폐 증세는 한국 사회 곳곳에 큰 상처를 남겼다. ‘노무현 언어’로 압축되는 언어폭력 난무가 그 하나다. 헌법의 수호자인 대통령이 헌법을 무시하는 발언을 예사로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 자체마저 부인되는 정도다. 갈 데까지 간 언어폭력이다.
이 자폐증의 또 다른 합병증은 패거리 정치, 문화권력 독식에서 발견된다. 자폐 증세가 가장 큰 상처를 남긴 분야는 안보외교다. 한미 군사동맹체제는 결단나기 일보직전이다. 그러면서 이 ‘우리끼리 자폐증’은 점차 ‘김정일 자폐증’을 닮아가고 있었다.
그 한국적 상황을 먼저 감지한 게 미주 한인들이 아닐까. 무슨 예리한 통찰력에서가 아니다. 세계화의 본류에 몸담고 있다. 때문에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한국 대선에 미주 한인들은 비상한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하는 절박감과 함께.
2007년 한국 대선은 그러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 방향성을 결정하는 선거다. ‘우리끼리의 자폐증’에서 벗어나 세계사의 본류에 다시 합류하느냐 마느냐, 그 방향 선택이 이번 한국 대선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세계화가 바로 시대정신이란 말이다.
이 한국 대선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건 미주 한인뿐이 아니다. 세계적 관심사다. ‘2007년 세계가 가장 주목해야 할 선거’로 ‘포린 폴리시’지는 한국 대선을 지목한 특집을 지난 1월호에 게재했다. 한국의 세계화 흐름에의 재편입의 역사적 의미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이제 하루 남은 한국의 대선이다. 어떤 결과가 나올까.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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