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막이 1주일 남은 한국대선에서도, 첫 투표가 3주일 남은 미국대선에서도 ‘지지선언(endorsement)’이 화제가 되고 있다.
선두주자를 제외한 한국의 나머지 후보들에게 막판 뒤집기를 끌어낼 ‘마지막 변수’가 제시된다 : 선거 이틀 전 노무현대통령의 ‘이명박 지지선언’이 나와야 한다, 결정적 효과가 없으면 선거 하루 전 김정일 위원장의 “이명박 후보를 지지합네다” 선언을 끌어내야 한다 - 물론 BBK 수사발표 후 이명박 대세론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떠도는 우스개 소리다.
미 대선에선 ‘오프라 효과’가 단연 화제다. 지난 주말 이틀간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의 버락 오바마 지원유세가 미디어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전국적 관심을 독차지한 것이다.
집회는 대성공이었다. 초반 예선이 실시되는 3개주에서 열린 집회에 6만7,000명이 모여들었고 자원봉사자만도 4천여명에 달했다. 이번 대선의 최대 인파였다. 영하의 날씨는 아랑곳없이 유세장은 ‘더블 O - 오프라바마(오프라와 오바마)’에 열광하는 박수와 환호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케네디이후 최고의 열기’라고 흥분하는 취재기자들의 리포트가 TV화면도 달구었다.
과연 이 열기는 1월3일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8일 뉴햄프셔 예선에서, 그리고 26일 사우스 캐롤라이나 예선에서 오바마에게 던지는 한표로 이어질 수 있을까.
어느 선거에서건 명사들의 지지선언 확보경쟁은 치열하다. 활기와 상승무드를 불어넣으며 한꺼번에 관심과 돈, 그리고 조직적인 지지를 끌어모을 좋은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힐러리 클린턴과 미트 롬니 등의 웹사이트에도 지지를 선언한 수백명의 명단이 올라있다.
그러나 지지선언이 곧 표는 아니다. 긍정적 효과는 커녕 반대로 표를 깎아먹는 역풍이 될 수도 있다. 88년 대선에 출마했던 앨 고어가 뼈아프게 체험한 사실이다. 민주당 지명전에서 삼고초려 끝에 어렵게 당시 에드 카치 뉴욕시장의 지지를 얻어냈다. 그러나 며칠후 “유대인이 (흑인) 제시 잭슨을 지지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카치의 인종차별 발언은 그대로 고어에게도 폭탄이 되어 떨어졌다. 뉴욕에서 고작 10% 득표에 그친 고어는 곧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주로 정치가나 성직자들의 몫이던 지지선언에 스타들이 동원된 것은 20세기 들어서였다. 1928년 인기절정의 야구스타 베이브 루스가 공화당 후보와는 사진찍기 조차 거부하고 민주당 ‘알프레드 스미스에게 한표를!’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유세를 다닌 일화가 유명하고 1944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4선 캠페인 때 힘찬 기적소리와 함께 “루실 볼입니다. 루즈벨트의 기차를 탔어요”라고 외쳤던 라디오 광고가 성공적인 스타의 지지선언으로 기록되고 있다.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워렌 베이티, 제인 폰다, 로버트 레드포드 등이 주역이었던 80년대에 활발했던 스타들의 정치참여는 그후 모금행사를 제외하곤 계속 줄어드는 추세였다. 대대적 뉴스의 각광을 받으며 발로 뛰는 지원유세에 나선 것은 근년 들어 오프라가 처음이다.
오프라의 지지선언이 가져온 효과는 아직 엇갈린다. 주요언론들은 ‘표로 이어지지는 못할 것’이라고 평가절하하는 분위기가 뚜렷하지만 일선 캠페인 참모들과 일부 정치분석가들은 ‘오프라는 다르다’며 지난 주말 이후 3개주에서의 지지율 추이를 조심스럽게 지켜본다. ‘오프라 효과’라고 단언하기는 이르지만 3개주에서 모두 오바마는 상승세, 힐러리는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하긴 오프라가 누구인가. 그가 감명깊게 읽었다는 한마디에 1백년전 러시아의 고전 ‘안나 카레니나’가 단숨에 미 전국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로 떠오르기도 하고 “난 이런 가방을 좋아해요”란 손짓 하나로 수천만건의 주문이 쇄도하는 대박 상품이 탄생하기도 한다. 충실한 4,900만 애청자를 확보하고 있다. 그냥 노래를 잘해서, 연기를 잘 해서가 아니다. 그는 ‘신뢰받는 스타’다. 인종, 연령, 성별을 초월해 대중에게서 공감대를 이끌어낼 줄 안다.
대중에 미치는 엔터테이너로서의 막강한 영향력이 정치로 이어질 수 있을까, 인종을 초월하는 그의 인기가 인종을 초월하는 정치 실현의 한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까. 오프라의 이번 지지선언은 단순한 지지를 넘어 여기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한 시험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프라와 오바마, 무대 위 스타들은 흑인이었지만 아이오와의 유세장엔 백인이 대다수였고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유세장엔 흑인이 가득했다. 환호의 열기는 두 곳 다 똑같이 뜨거웠다. 아이오와의 한 백인 여성은 “난 흑이나 백,진보나 보수가 아닌, 내일의 미국을 위한 희망을 발견했다”며 마음을 바꿔 오바마 지지를 서명했고,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한 흑인 청년은 “오늘 난 흑인도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감격을 감추지 않았다.
‘오프라 효과’가 표로 이어질지는 아직 예측하기 힘들다. 그러나 백인 유권자에게 인종을 뛰어넘는 계기를 제공하고, 회의적인 흑인 청년에게 자긍을 각성케 해준 것만으로도 그의 지지선언은 충분히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한편, 활기 찬 축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게 우스개로 동원된 이번 한국대선의 마지막 ‘지지선언’은 정말 우습게도 ‘노명박 커넥션’이라는 주장으로 진화되고 있다. 막판 뒤집기가 아무리 절박하다해도 너무 민망스러운 발상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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