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기자 정지원 주필
세상만사 칼럼 모아 새 책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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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한미수호 통상조약은 1882년 5월22일 체결됐으나 우리나라와 미국과 최초의 접촉은 1983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포경선 부산 용담포에 표류’란 이름표를 단 첫 장의 첫머리(제1부 제1장)처럼 책은 한미교류의 시원부터 구한말 고종이 미국에 파견한 전권사절 민영익, 일제하 안창호 선생의 흥사단 창단을 비롯한 미주이민선조들의 독립운동 발자취, 주샌프란시스코총영사관의 50여년 역사를 더듬는다. 화석처럼 굳은 역사만이 아니다. 샌프란시스코한인회의 역사, 올해 초 이석찬 SF한인회장의 취임과 구본우 총영사의 부임, 올 여름 한국의날 퍼레이드 및 민속축제 등 손에 잡히는 엊그제 이야기까지 쫙 펼쳐져 있다. 책의 끝자락(제3부)에는 ‘나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이름으로 황금돼지해(2007) 두가지 소망, 서울의 L형에게 띄우는 편지 등 독백 같은 글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취재수첩과 카메라를 둘러메고 뉴스의 현장을 누비는 ‘영원한 기자 정지원 주필(주간모닝)’이 최근 펴낸 책(원제 ‘정지원의 동서남북 세상만사 미국동포 밀물썰물’)은 표지 하단에 씌여진 대로 “북가주 동포사회를 맨발로 뛰어온 한 노기자의 현장 리포트”다.
“만 76세가 넘은 오늘도…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30년을 하고 있으니 고맙고 우선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1977년 9월6일 샌프란시스코로 이민 와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만 30년간 동포신문에 근무하면서…”
책머리 ‘노기자의 변’에 정 주필이 직접 쓴 것처럼 1950년대 한국전 직후 언론에 입문, 합동통신사 경향신문사 등을 거쳐 이민 이후에도 오직 언론 한 우물만 파온 그는 “원고지 칸 메꾸는 외에 할 일이 없다”며 “숨이 넘어갈 때까지, 끝까지 이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지금도 ‘골동품’이 돼버린 원고지를 사용해 기사와 칼럼을 작성한다.
“지난 4년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모닝 뉴스>의 지면을 차지했던 ‘세상만사’ 칼럼을 모아”책으로 엮은 ‘밀물썰물’은 당초 초년병 정 기자 시절부터 노기자 정 주필의 오늘까지 곁을 지켜온 한살터울 아래 박찬희 여사와의 결혼 50주년인 10월28일에 맞춰 세상빛을 볼 예정이었다.
출간 과정에 약간의 사정에 생겨 금혼식 날짜를 막 넘기고 배를 타고 오클랜드항에 도착한 이 책들을 정 주필은 우선 “이곳에 만 31년 사는 동안 이렇게 저렇게 인연맺은 사람들에게 증정”을 하고 있다. “주변에서 출판기념회 안하냐고 묻기도 하지만 뭐 금혼식도 그냥 넘겼는데”라며 정 주필은 당분간 지금처럼 나눠줄 예정이다. 물론, 노기자의 역작을 거저 받을 수 없다며 ‘성의’를 표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11일 저녁 EB상공인의 밤 행사 때도 30권이 순식간에 동나버렸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진보세력을 대표했던 조봉암 당수 등 거물들을 두루 취재하고 박정희 시대에도 뉴스의 현장을 누비면서, 그 옛날 서울에서도 쳤던 골프를 정작 미국에서는 25년째 한번도 못쳤을 정도가 됐는데 소회는 어떨까.
“미국까지 쫓겨온 사람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세상만사 새옹지마라고 그게 잘 된 게 아니냐 그래요. 서울에 있었다면 내 머리가 이렇게 남아 있겠어요? 아마 명도 제대로 못지켰을 거요. 서울 가서 보니까 나 있을 때 뽑은 1기생들이 머리가 나보다 희어가지고, 나보다 더 늙었어들. 병치레 안하고 노후 잘 돌봐주고, 미국에 참 감사하고 살아요.”
정 주필은 요즘도 새벽 5시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6시부터 1시간가량 헬스클럽에서 가벼운 운동을 하고 9시쯤 SF재팬타운 인근 가판대에서 신문을 꺼내 하루뉴스를 점검하는 것으로 ‘기자 25시’를 시작한다. 발에 채이는 모든 것, 눈에 보이는 모든 것, 귀에 들리는 모든 것을 다 기사밑천 아닌가 하고 대하는 직업정신은 쉴 겨를이 없다. 지난해 말 EB 어느 단체의 행사장에 들어서다 태극기가 거꾸로 걸린 것을 보고는 즉시 사진을 찍어 기자에게 그 무신경을 개탄하며 태극기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글로 써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정 주필이 사는 아파트는 수십년 전 자료와 신문잡지 기사스크랩 등이 가득하다고 한다.
기자정신의 실종. 후배기자들에 대한 선배기자의 충고부탁에 정 주필은 꼬집어 그 단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요즘 기자생활은 굉장히 변했어요, 옛날에는 지사적 견지에서 했는데. 돈 하고는 거리가 멀었어, 정의에 입각해서…”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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