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행사 분위기 ‘살리고 남’ 양재경 ‘띄우고 녀’ 재키 김
이 단체 저 단체, 이 동문회 저 동문회, 이 향우회 저 향우회, 줄줄이사탕 모임이 이어지는12월이다. 바깥세상과 담을 쌓은 사람이 아니라면, 더욱이 한인사회에서 꽤 알려져 오라는 곳이 많은 이들, 그리고 이 모임 저 모임을 취재를 해야 하는 기자들은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다. 못지 않게 바쁜 이들이 있다. 모임의 흥취를 돋워주는 감초들이다.
<악사 양재경>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지 그냥 그래요. 그래도 그런대로 괜찮아요.” 북가주 한인사회 각종여흥행사의 감초인 양재경씨는 요즘 어떻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는 “일주일에, 주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두세건 정도 뛴다”고 했다. 출연료는 딱히 정해진 게 아니었다. “성격마다 좀 틀리는데 인원이 좀 많거나 그러면 장비를 많이 갖고 나가야 되니까 (좀 더 받고) 내가 사회를 볼 때도 좀 틀려지고. 노인회 같은 데는 거의 도네이션 차원으로 나가고.”
양재경(408-568-5251).
검은 재킷 검은 모자의 사나이 양씨는 나이도 비밀이었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철학만은 또렷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때 음악학교 갈라고 그랬는데 하도 집에서 반대를 해서 가출을 했고, 나중에 미8군에서 베이스기타를 치면서 이 잡(job)을 시작했어요. 힘도 들지만 돈 때문에 하는 게 아니고,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음악을 한다는 것조차 복받았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남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것, 그거 큰 보람이죠.”
낮에는 피아노 조율사로, 밤에는 서니베일의 S클럽에 악사로 밤낮없이 뛰는 그가 갖고 있는음악장비만 해도 대략 5만달러어치다. 장단맞추기만 하는 게 아니다. 흥이 나면 섹소폰을 멋드러지게 불어제끼기도 하고, 진한 허스키 목소리로 노래를 몇 곡조씩 뽑기도 한다. 지난달 24일 북가주한인세탁인의 밤 행사에서도 섹소폰 솜씨를 선보여 갈채를 받았다.
미국살이 17년동안 LA 하와이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 등등 한인사회가 형성된 곳이면 거의 안 살아본 곳이 없고, 그때 그곳에 머물게 된 이유는 죄다 음악이다. “원래 이 직업이 떠도는 것 아닙니까. 그러다가 날씨도 좋고 사람들도 젠틀하고 해서 여기(북가주) 정착하게 됐네요. 벌써 8년 됐나? 연습하고 플레이(업소 공연)하고 하다보니 골프를 칠 시간도 없었어요. 배우지도 못했어요.”
조용필의 노래를 특히 좋아한다는 그는 “음악을 할 때는 아무 걱정도 없고 나에 도취돼 하니까 그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다”며 음악과 함께 살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거듭 하나님의 은총으로 돌렸다. “장가 좀 가게 좋게 써주세요, 하하하하하.” 그는 호탕하게 웃었다.
<가수 재키 김>
지난달 24일 산라몬 메리엇호텔에서 열린 북가주한인세탁협회 송년행사. 다소 근엄한(?) 1부 순서가 끝나고 2부 여흥순서가 되자 400여석에 꽉 찬 ‘주로 넥타이 부대’ 참석자들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슬슬 타오르던 불길에 기름을 확 끼얹은 이가 있었다.
재키 김(415-279-9729).
지난해 연말 기자협회 간담회 겸 송년회 등 몇몇 행사에서 깜짝스타로 떠올랐던 이 ‘작은 거인’ 부동산전문인이 확 트인 음성, 화끈한 율동으로 나미의 <인디안 인형처럼> 자자그룹의 <버스 안에서> 왁스의 <머니머니>를 부르는 동안 넥타이 부대들은 무대 앞 플로어에서 신나게 몸을 풀었다. 좌석에 앉은 이들도 연신 들썩들썩. 11월29일 저녁 북가주한인부동산융자협회 송년행사 후반부 분위기도 그녀가 있어 엄청 떴다.
재키 김씨는 지난해 그의 ‘숨은 솜씨’를 잘 아는 친한 사람의 강권에 못이겨 무대에 올랐다가 이제는 연말이면 쇄도하는 출연요청을 기분 상하게 않게 거절하느라 고역을 치러야 하는 유명인사가 됐다. 올해도 이 연줄 저 연줄 동원해 “딱 한두곡만” 부탁이 이어졌다. 그러나 김씨는 북가주세탁협회, 부동산융자협회(11월29일)에 이어 8일 저녁 실리콘밸리드라이클리너스협회 송년행사까지만 OK사인을 보냈다. 나머지 요청은 되물릴 참이다.
“노래요? 노래방 역사가 시작되고 내 노래역사도 시작됐죠.” 언제부터 ‘끼’를 남들에게 들키기 시작했느냐는 물음에 재키 김씨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장난스런 대답을 쏟았다. 그리고는 이었다. “실은 어려서 가정에서부터 자주 불렀어요. 친정 아버님께서 집안사람들 모이면 꼭 노래를 시키고 그러셨거든요.”
작은 체구를 보상하듯 엄청 풍부한 성량으로 템포 빠른 곡들을 기막히게 소화하는 김씨는 ‘마이크를 잡는 그 순간’만 딱 부러지는 게 아니다. 시부모의 며느리로, 친정부모의 딸로, 부동산전문인 동업자이자 라이벌인 남편(김신호 전 SF한인회 부회장, SF시청 직원, 본보 객원기자)의 아내로, 초등학생 남매의 엄마로 집안에서도 만점이다. 뿐만 아니다. 지난해 가을 시작한 부동산전문인으로서 김씨의 SJ뉴스타 루키상을 받았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임하는 김씨의 자세가 ‘불황 속 호황’을 가능케한 자양분이었음은 물론이다.
노래하는 곳에 행복이 있다. 노래를 하면 행복해지고 행복해지면 노래를 부른다. 그래서 김씨의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 꼴불견 걸림돌도 만난다.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그냥 분위기에 맞춰 즐겁게 놀지 못하고 꼭 이상한 수작을 피우려는 사람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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