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팔월, 나는 라진시 인민위원회 초청으로 며칠간 북한 나진, 선봉 지구를 다녀왔다. 그들이 나진, 선봉 지구를 외국인들에게 공개된 지역으로 택한 이유가 있었다.
풍광이 명미했고, 중국과 러시아도 가깝고 항구가 있어서 공개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곳의 고아원, 탁아소, 진료소 등을 돌아보았고, 차를 타고 마을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장터를 다니면서 그들의 삶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의 삶이 안됐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 것은 왜일까?
그들 중엔 아무도 배나온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배가 나올 여유가 없었다. 20리길을 걸어서, 아니면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부지런히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말로만 듣던 북한의 모습을 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가난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외국인 전용(?)의 비싼 식당에서 잘 먹는 살찌고 배나온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러워하지도 않았다.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가장 우수한 것으로 믿고 대를 이어가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북한의 주체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인 <위키백과>에서는 주체사상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주체사상(主體思想) 혹은 김일성주의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스탈린주의와 유교사상과 섞어 김일성이 내놓은 정치철학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식 이념이다. 주체사상은 김일성은 본래 맑스-레닌주의에 정통해 있었으나 조선혁명의 진행과정에서 그것을 북조선의 현실에 맞게 수정 적용한 것이 주체사상의 사회역사적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주체사상의 기본개념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는 수령이라는 하나의 개인을 우상화 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론이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타파하고 당에 의한 인간 지배를 강조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변종임이 명확하다.
다시 말해 주체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후계임을 주장하지만, 이는 관념론, 우상 숭배로 빠져 스탈린보다 더한 개인 숭배의 이데올로기 체제다. 또한 현재 북조선은 선군정치라 하여, 로동자가 아니라 군인이 국가의 기반이며 자주성을 수호하는 주체임을 선포,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완전히 결별했다.
정리하면 북한의 주체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도 아닌 철저한 개인숭배사상으로 흘러갔다. 북한 주민들은 그 숭배사상에 젖어서 자신들의 모든 이념을 접어둔 채 인생을 대를 이어 김일성 부자(父子)에게 걸었다.
김일성 원수(元首)는 지금도 영원히 그들 마음 속에 살아남아 있다. 그들을 불쌍하게 볼 수도 없고, 비난할 수도 없다. 내가 본 그들은 그것 자체가 자랑스럽게 대를 이은 자연스런 충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들 방식대로 살기를 선포하고 거리거리마다 그들 특유의 목소리를 높였다. 너무나 당연하게 그들의 삶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세계가 아무리 부르조아지 사상에 물들어서 배불러 있어도 자신들은 그렇게 살지 않고 자기들 방식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보았다. 그것이 북한이었다.
이런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북한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안목은 너무나 제한되어 있다. 빨갱이 나라라고 하면서 한국전쟁을 떠올리고, 저쪽에서는 미제 승냥이를 부르짖으며 미제국주의를 규탄하고 있다. 제한된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다. 여전히 적대관계다.
그런데, 이번에 북한을 여행하면서 가장 절실히 느낀 것 한 가지는 북한의 주민들은 우리와 같은 혈육이라는 것이었다. 함께 갔던 미국 시민들 중에 한국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달리 남과 북이 달라도 ‘한국어’와 ‘조선어’가 한 언어라는 것을 나는 실감했다.
북조선의 그들과 남조선의 내 언어가 편하게 뜻이 통했다. 그래서 역시 남과 북은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을 절실히 몸으로 느낀 것이다.
말뿐만 아니라 느낌이 우리와 같은 한 민족으로서 그들을 품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동포애로 저들을 더 많이 찾아주어야 한다. 내가 부끄러웠던 것은 물질적으로 잘 사는 나라에 살면서 우리끼리 배부르게 먹는 날로 배 두드리면서 감각 없이 살았던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을 생각하여 먹을 것을 나누어먹으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그들도 함께 느끼면서 동시에 ‘남조선’의 우리 동포들과도 원쑤관계에서 벗어나서 형제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한에서 가져간 초코파이를 봉지째 안내원에게 주었을 때 남조선 물건이라고 거들떠 보지도 않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중국돈, 러시아돈과 달러는 통용되고 중국 물건과 다른 나라 물건들은 볼 수 있어도 남한 물건들은 찾아볼 수 없는 나라 북조선의 한 구석에서 나는 한 동안 생각없이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념(ism)은 무섭게도 우리를 갈라놓는다. 국민들과 인민들의 혈육의 정도 상관없이 이념은 우리를 하얀 것과 검은 것으로 나누어버린다. 강태흥의 <금강산 떼다팔면 우리가 더 부자디요>라는 책을 보면 거기에는 북한의 인민들 속에도 인간의 자연스런 욕구들이 우리와 똑같이 나타나는 것을 본다. 그렇다. 사람의 본능과 인간의 정은 이념을 넘어선다.
몇 대를 걸쳐 있는데도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민족정서를 가진 한민족의 후예였다. 오히려 우리 민족의 단일성을 지키면서 살아온 우리의 소중한 혈육이었다.
북한은 비난 받을 일을 하고 있는 나라가 아니라 우리가 사랑해야 할 모습 그대로다. 나는 북한예찬론자가 아니다. 그들의 사상이 뛰어나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들 정부가 왜 주체사상을 그렇게 철저히 신봉하고 있는지 그 이유도 묻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선교할 대상으로 생각하지만 그 이전에 북한은 사랑해야 할 내 민족이다. 이념과 전쟁으로 피해를 입으신 어르신들은 북한돕기를 말하면 고개를 내저으실지 모른다.
지금은 적대 관계로 휴전선을 가운데 두고 대치되어 있으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나라, 당장이라도 육로로, 해상으로, 하늘을 가로질러 휴전선을 넘어 한 두시간 안에 갈 수 있는 곳, 내 동족이 있는 곳이 바로 북한이다.
이루어지고 있는 많은 경제특구 소식들을 접하면서 금강산 관광에 이어 이제는 백두산도 곧 휴전선을 넘어 육로를 통해 관광한다고 하니 동해안을 따라 열차를 타고 러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여행할 날이 속히 올 것을 믿는다.
머지않아 북조선, 남조선을 지역 구분으로만 부르며 하나의 ‘조선’으로 세계에 우뚝 설 날이 올 것을 믿으며 그 맑았던 나진의 하늘과 웃음 없는 사람들 속에서 엷은 웃음으로 나를 멀찍이 바라보던 한 소년의 모습을 떠올린다.
나순규 / 새크라멘토 부흥그리스도의교회 목사 soon_n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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