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김웅수 전 가톨릭대 교수(84)의 회고록을 연재한다. 김 전 교수는 한국전 당시 2사단장을 지내며 공산화를 막아냈으며 6군단장 재임시 발발한 5.16 쿠데타를 반대하다 투옥된, 살아있는 참 군인의 표상으로 불리고 있다. 회고록에는 가팔랐던 건국 과정과 6.25전쟁의 흥미진진한 비사, 박정희를 둘러싼 비화, 그리고 반 망명의 길을 떠나 미국에서 갖은 역경을 딛고 대학교수가 된 한 인간의 꼿꼿했던 풍모가 그대로 담겨 있다.
주 5회 연재될 회고록은 그가 올해 펴낸 ‘송화강에서 포토맥 강까지’ 중 군 생활 부분을 위주로 소개되며 이민 후세들에 큰 귀감이 될 것으로 믿는다. <편집자 주>
연재를 시작하며
내 나이 이제 80이 넘었다. 기억력이 남아 있을 때 내가 겪었던 한국전쟁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나는 창군 때부터 군문에 종사한 덕분으로 전쟁 중 비교적 고급장교의 한 사람으로서 전쟁을 경험하게 되었다. 남북의 많은 피난민들의 고생과 굶주림, 전쟁미망인과 고아들을 보며 가정들이 파괴됨을 보았다. 전쟁은 군인 못지않은 많은 민가인의 희생을 동반하였고 학살, 납치, 실종 등으로 수복은 또 하나의 국민 비애가 되었다. 전쟁터에서의 가옥을 필두로 한 재산의 피해도 서울과 대전이 초토화됨도 보았고 전쟁 중 평양을 방문하여 미군에 의해 가설된 주교를 통해 대동강을 건너보았고 피난 간 마을의 잠겨있는 빈집에서 이부자리를 운반하는 군인들에게 분노해보기도 했고 사단 법무관에게 전투지역에서 여인을 강간한 병사에게 사형언도를 강요해 보기도 하였다. 야음에 밀려 적의 전차망에 들어갔다가 부하를 잃은 경험도 하고 북한군의 서울 진입을 확인하며 서울 탈출을 위해 학생복으로 변장하고 지나가는 배 머리를 잡고 한강을 넘기도 하였다. 전쟁터에서 실종되어 어려운 걸음에 지쳐 행인의 소도 빌려 타 보았다. 부대 철수 명령 하달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낙동강에 뛰어 들어가 강물에 떠나려가는 경험도 해 보았다. 그리고 가족의 피난살이에 고민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처남이 유복자를 남겨둔 채 전사를 하게 되었고 대를 이어야할 사촌 동생을 전지에 나가 전사케 하는 쓰라림도 가져 보았다.
그러나 군의 고위급 장교의 덕으로 일반 국민의 희생과 고통에 비하면 나의 고통은 가벼웠을 것이다. 나는 일반 국민이 겪었던 희생을 생각하면 또 다시 전쟁이 나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북한이 전쟁을 도발하였다고는 하나 제공권과 제해권이 남에게 있었던 북한 주민들의 희생과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일이었으리라 믿기에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이런 생각은 젊은이들의 통일에 대한 감상이나 전쟁을 겪지 아니한 세대들의 이상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직접 경험하고 그로 말미암은 민초들의 고통의 실상을 본 결과이다.
그러나 전쟁 의 방지는 이상이나 희망만으로는 이루어 지지 아니함은 전쟁능력을 기르는데 소극적이었던 우리의 근대사가 증명해 준다. 전쟁은 힘의 균형이 깨질 때 그리고 국민의 투지가 약한 틈을 타고 일어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독립에 현혹되고 건국초기의 전쟁 대비를 미국에게만 의존 했던 과거가 남북을 합해 300만에서 500만의 전쟁 희생을 감수하여야 되었다. 이 희생의 대가를 물을 겨를 없이 과거가 잊혀져가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나는 한국의 통일은 진실이 밝혀지는 가운데 과거의 쓰라림에 대한 망각을 통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왔다. 노 대통령의 담화에서 6.25 남침에 대한 사과를 북으로부터 얻는다는 것은 싸우자는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냐 라는 이야기를 듣고 심히 정치적인 발언이라 생각케 되었다. 전쟁을 피하려면 정쟁을 준비하라는 역설도 있다.
나는 고위 군인으로서는 전쟁터에서 소부대 전투를 지휘하거나 사생의 전쟁터의 경험보다는 교육을 통해 장교를 배출하는 일 혹은 육군본부나 전선 군단 참모로서의 경험이 주였다. 그러던 중 휴전 말기 전선 사단장으로서 철원 백마산을 중심으로 중공군과 휴전선 다툼을 위한 전투에서 부하들의 희생 위에 태극 무공훈장과 Legion Merit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내가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을 맞이한 곳은 내가 부임한 지 2주일 밖에 되지 아니한 편성 도중의 수도사단 참모장 자리였다. 나는 전쟁 전에 대령으로 당시 태릉에 위치했던 육사 생도 1기생(후에 10기생)의 생도 대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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