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이후 미 정치상황
테러 - 이라크전 영화
어둡고 우울한 소재에 극적 요소 미흡, 관객들 외면
화제작 ‘양들을 위한…’ ‘왕국’등 제작비도 못건져
올 가을시즌에 9.11 이후의 미국의 정치적 상황과 테러와 이라크 전쟁을 다룬 영화들이 여러 편 나왔지만 전부 흥행서 죽을 쓰고 있다. 이런 영화 중 제일 먼저 지난 9월 중순에 개봉된 ‘엘라의 계곡에서’(In the Valley of Elah)는 지금까지 달랑 총 700만달러를 벌었다. 이라크에서 귀국 후 실종된 군인아들을 찾는 아버지의 얘기로 아버지역의 타미 리 존스가 가슴 저며 드는 연기를 해 호평을 받았지만 관객은 멀리했다.
이보다 한달 후 개봉된 ‘범인 인도’(Rendition)는 CIA가 이집트계 미 영주권자를 테러리스트로 몰아 모진 고문을 가하는 내용의 드라마. 젊은 스타들인 리스 위더스푼과 제이크 질렌할 그리고 연기파 메릴 스트립이 나왔는데도 지금까지 모두 900만달러를 버는데 그쳤다. 흥행 보증수표라고 할 수 있는 제이미 팍스가 나온 사우디를 무대로 한 정치성을 내포한 액션영화 ‘왕국’(The Kingdom)도 총 4,700만달러 수입에 그쳐 총 제작비 7,000만달러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이다.
올 가을 가장 큰 화제작인 정치영화 ‘양들을 위한 사자들’(Lions for Lambs)은 3인의 수퍼스타들인 탐 크루즈, 로버트 레드포드(감독 겸) 메릴 스트립 등이 공연했으나 흥행서 참패했다. 지난 9일 개봉한 이 영화는 미국의 아프간전을 다룬 것으로 개봉 2주째인 지난 18일 현재 총 1,16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개봉 3주째는 흥행 10위권 밖으로 밀려날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이 영화는 크루즈가 활동을 재개한 UA의 공동사장으로 취임한 뒤 나온 첫 영화여서 UA의 앞날이 그리 평탄치 못하리라는 때 이른 풍문까지 나돌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또 다른 이라크전 영화 ‘편집된 진실’(Redacted)이 개봉됐으나 이 영화가 흥행서 성공하리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브라이언 디 팔마 감독의 올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으로 이라크전에 참전한 미군의 이라크 소녀 강간과 가족몰살 실화를 극화한 것인데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싫어하고 있다. 가을뿐 아니라 지난 6월에 나온 앤젤리나 졸리 주연의 ‘위대한 마음’(A Mighty Heart)도 역시 흥행서 실패했다. 파키스탄에서 테러리스트에 의해 납치돼 참수당한 월스트릿 저널 기자 대니얼 펄의 얘기로 수퍼스타 졸리의 연기가 극찬을 받았는데도 관객은 외면했다.
이들 대부분 영화들이 오스카상을 받은 배우들과 감독이 만든 것인 데다가 일부는 비평가들의 칭찬을 받았는데도 관객이 외면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첫째 시가전 위주의 이라크전은 옛날 전쟁 영화들이 지녔던 극적 요소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점을 이유로 든다. 그리고 이들 영화의 내용이 모두 사람의 기분을 어둡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과 함께 같은 시즌에 너무 많은 정치 전쟁영화가 출하된 점도 그 까닭으로 지적됐다.
전문가들은 “24시간 뉴스 채널을 통해 보는 내용을 누가 돈 주고 극장에 가서 보겠는가”라면서 “아직 이라크전을 다룬 영화를 관객들이 보고 즐기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제대로 된 베트남전에 관한 영화로 비평과 흥행서 모두 성공한 영화들인 ‘디어 헌터’ ‘귀향’ ‘지옥의 묵시록’ 및 ‘플래툰’ 등이 종전 후 4~10여년 뒤에 나온 것을 그 예로 들고 있다.
심각하고 현안을 다룬 A급 스타들 주연의 이들 영화들은 수상 시즌이 시작되면서 여러 부문에서의 오스카상 후보를 노리고 개봉됐다. 그러나 오스카 회원들은 흥행이 부진한 영화는 외면하는 성향이 있어 이들 영화들은 수상 잔치에서도 찬밥신세를 면치 못할 것 같다.
앞으로 개봉될 두 편의 전쟁영화로 ‘그레이스는 갔다’(Grace Is Gone, 12월7일)와 ‘찰리 윌슨의 전쟁’(Charlie Wilson’s War)이 있다. ‘그레이스는 갔다’는 이라크전에서 전사한 아내의 소식을 두 어린 딸에게 알려줘야 하는 아버지(존 큐색)의 이야기인데 소품이어서 흥행을 거론할 만한 영화가 못된다. 팬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오스카상을 받은 감독 마이크 니콜스와 역시 오스카상 수상자들인 탐 행스, 줄리아 로버츠 및 필립 시모어 하프만 등이 공연한 ‘찰리 윌슨의-’. 1980년 침략군 소련군에 저항하는 아프간 저항군에게 무기를 공급하려고 노력하는 술꾼이자 바람둥이인 텍사스의 연방 하원의원(행스)의 드라마를 코믹터치를 가해 그렸다. 상영시간이 100분 미만인 데다가 내용도 오락성이 짙어 관객들의 호응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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