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대통령이 추수감사절 스피치를 한 것은 재임 7년만에 처음있는 일이다. 매년 로즈가든에서 잘생긴 터키 한두마리를 ‘사면’하는 것으로 땡스기빙 공식행사를 치러온 부시가 금년엔 감사절을 며칠 앞두고 버지니아의 버클리 농장을 방문, 미 국민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마음으로 불우한 이웃에게 ‘베푸는 손길’을 내밀자고 호소한 것이다.
1619년 초겨울 영국정착민이 도착한 후 첫 감사의 기도를 드린 곳으로 알려진 버클리농장에 앞서 대통령은 리치몬드 식량배급소에도 들렀다. 이 푸드뱅크 한 곳에서만 수백만 파운드의 식량을 나눠주지만 창고에 쌓이는 식량보다는 배급을 기다리는 행렬이 점점 길어진다는 설명을 들었을 것이다. 들으면서 작년 한해 굶주린 미국인이 무려 3,550만 명이었다는 농무부 보고서와 추수감사절부터 크리스마스까지 미국민이 연말샤핑에 소비할 액수가 4,750억 달러라는 업계 예상을 함께 떠올리며 조금쯤 착잡했을 지도 모른다.
부시는 멀리 전쟁터에 보내진 군인들,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주, 식량을 공급하는 농부들, 재난에 맞서는 소방관과 경찰들, 헌신적인 교사들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미네아폴리스 다리 붕괴때 피해자들을 구해낸 보통사람들의 용기도 치하했다. 그리고 지난 4월 버지니아텍 총격사건에서 제자들을 보호하려 애쓰다 사망한 노교수의 희생도 상기시켰다.
아니, 9.11후에도 ‘미 경제에 자신감을 갖고 적극 참여하라고, 다시 말해, 샤핑을 계속하라고 촉구했던’ 대통령으로선 어째 좀 이례적인데, 남은 임기를 정리하며 다소 ‘사색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인가…이같은 기자들의 ‘의혹’에 백악관은 진지한 어조로 “대통령이 그동안 전국 곳곳에서 만난 많은 보통 미국인들의 선의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며 이들에 대한 감사를 공식적으로 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감사표시는 대통령이 진심으로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가장 강력한 힘은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친절과 배려입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을 세어보고 감사의 마음을 전파할 여러 방법을 생각해내기 바랍니다” - 적어도 오늘 하루만은 ‘정치적 배경’을 모두 접어두고 대통령의 이런 선의, 따뜻한 마음을 믿어도 좋을 것이다.
글자 그대로 ‘감사를 드리는 날’인 땡스기빙 데이는 다소 철학적인 명절이라 할 수 있다. 철학은 ‘생각’에서 시작되고, Think(생각)와 Thank(감사)는 같은 어원에서 나왔으며, 평소 당연히 누려온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감사하는 날이 땡스기빙 데이니까.
잠시 멈추어 생각한다면 오늘만 해도 감사할 것은 너무나 많다. 가을이 깊어진 11월의 자연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아직 우리는 건강하게 일하고 있다. 집 떠났던 아이들은 의젓한 모습으로 귀향했고 대부분의 우리는 가족과 함께 풍성한 저녁식탁에 둘러앉을 것이다. 불신의 세태 속에서도 우리 주위 곳곳엔 크고 작은 선의들이 따뜻하게 살아 있으며 전쟁과 기아에 시달리는 지구 저편을 보면 우리가 살고있는 미국은 여전히 선택받은 나라임에 틀림이 없다.
감사라는 말처럼 아름다운 말은 드물다. 내가 받은 작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살아가는 힘을 얻기도 하고, 작은 친절에 대한 나의 감사가 무의미했던 타인의 삶에 행복을 불어넣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을 가장 강력하게 이어주는 접착제 - 그래서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감사는 모든 미덕의 아버지”라고 말했나보다.
- 추수감사절을 맞아 한 초등학교 여교사가 1학년 학생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감사하게 여기는 것을 그려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마음 한 편엔 가난한 빈민가에 사는 이 아이들에게 과연 감사하게 여길 대상이 있을까 의문이 생겼다. 아마도 식탁에 차려진 터키구이 등 맛있는 음식을 그릴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런데 더글라스가 내미는 그림을 보고 여교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엔 어린아이의 서툰 솜씨로 단순한 손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누구의 손일까? 더글라스의 그림을 보여주자 아이들은 나름대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한 아이가 말했다.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손이 틀림없어요” 다른 아이가 말했다. “농부의 손일 거예요. 터키를 길러낸 농부요”
마침내 선생님은 더글라스에게 다가가 누구의 손을 그린 것이냐고 물었다. 더글라스는 머뭇거리면서 대답했다.
“이건 선생님의 손이예요”
쉬는 시간에 때때로 더글라스를 손으로 쓰다듬어 주곤 한 것이 기억나며 선생님은 가슴이 메어왔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종종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가난하고 버림받은 작은 아이 더글라스에게 그건 살아가는 힘이었던 것이다. - ‘영혼을 위한 치킨수프’에 실린 짤막한 이야기다.
우리가 누구에겐가 이 같은 ‘손’이 되는 일, 그리고 타인의 ‘손’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일 - 그것보다 더 참된 추수감사절의 의미는 찾기 힘들 것이다. 해피 땡스기빙!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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