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가 미덕(美德)이라는 미사여귀가 가장 잘 적용되는 나라가 미국이 아닐까. 가계소비가 미국경제의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만일 가계소비가 2%가 감소할 경우 미국경제는 곧바로 불경기(Recession)에 돌입할 것이라고 하니 소비는 미덕이 아니라 필수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문제는 소비가 소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개인 저축률이 계속 마이너스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소비가 소득에서 비롯된 자금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차입(borrowing)된 자금으로 충당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지난주 플래디맥(Freddie Mac)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중 이루어진 재 융자 가운데 캐쉬아웃 재융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87%에 달하고 있다. 캐쉬아웃(Cash-out)이란 종전의 모기지 금액에 비하여 5%이상 더 융자를 얻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와 같은 캐쉬아웃 재융자가 엄청난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전반적으로 경기가 위축될 경우 돈 벌기가 예전보다 쉽지 않아졌다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상황 하에서 소비를 줄이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융자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메우려고 하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매년 주택매매나 홈에퀴티융자 또는 재융자 등을 통해 마련한 돈이 무려 8천400억 달러라고 하며 이에 따라 총 3천100억 달러가 가계소비에 충당되어졌다고 한다. 이같은 현상은 돈이 없으면 빌려서 쓰면 된다라는 경제관념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아 마치 주택을 현금자동지급기(ATM)로 여기는 경향이 팽배했음을 알려준다. 아마도 이러한 경제관념은 지난 3~4년동안 지속되었던 주택버블이 안겨준 산물(産物)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주택 가치는 계속 상승하게 될 것이라는 전제가 주어져야 한다. 즉 주택가격이 계속 상승할 경우 돈을 빌려 쓰게 되더라도 이는 주택가격 상승에 따라 상쇄될 것이니 만큼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예전과 같으면 좋으련만 최근의 상황은 종전과는 전혀 다르다. 최근에 들어 나타나고 있는 뚜렷한 현상 중의 하나는 주택가격의 하락으로 인해 주택에 내재된 자기자산(Equity)이 그만큼 감소하였다는 것이다. 주택에 내재된 자기자산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융자로 빌려 쓸 수 있는 부분 역시 줄어들었다는 것을 나타낸다.주택융자에 있어서도 사이클(Cycle)이 존재한다. 즉 융자가 손쉬운 시절이 있다면 그 뒤를 이어 융자가 더욱 까다롭고 어려워지는 때가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주택시장의 침체와 가격하락의 현상에 이어 모기지 융자 역시 종전에 비하여 매우 까다로워지면서 더 이상 주택을 현금자동지급기(ATM)로 간주할 수만은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현재 주택시장의 침체에 따라 주택차압(Foreclosure)이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변동이자모기지에 관련하여 상환부담이 급증하는 등 여러 가지의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때에 우리들이 유념하여야 할 사항은 이러한 작금의 상황이 가져다주는 파급효과로 인해 주택을 통한 부의 축적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주택이라는 자산(資産)을 어떠한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할까. 주택이라는 자산에 있어 당연히 가치(Value)가 존재하지만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있느냐에 대하여 잘못 생각할 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의 경우 주택소유를 통하여 축적되는 재산을 노후 생활을 위한, 일종의 저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 3~4년 동안 주택가격이 크게 상승하게 되자 스스로가 부자가 된 듯한, 소위 “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생겨나도록 하여 저축의 필요성을 못 느끼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노후생활을 위하여 은퇴 연금 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나 비율은 지난 2001년 이래 계속 감소하고 있으며 또한 50%이상이 전혀 저축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반증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주택은 주거를 위하여 필수적이기 때문에 ‘사용자산’으로 분류된다. 즉 함부로 처분할 수 없는 자산이라는 것이다. 또한 주택에 내재된 자산은 일종의 예비금으로 생각되어야 한다. 예상치 않은 상황으로 인하여 예금과 같은 유동자산이 모두 소진되었을 경우를 대비한, 마치 자동차의 스페어타이어와 같은 것 말이다.
우리들 모두는 원하던 원하지 않던 나이를 먹게 되고 언젠가는 은퇴를 하여야 한다. 만일 주택이 자신이 갖고 있는 재산의 전부라면 이러한 때를 대비하여 손쉽게 써버리지는 우(愚)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70~80만 달러짜리 집을 가지고 있다면 재산이 넉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장기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주택소유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혜택은 나중에 노후생활에 있어 모기지 융자를 모두 상환하고 난 후 임대료나 모기지 상환을 하지 않으면서도 계속해서 해당 주택에 살 수 있다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소비가 미덕”이란 유산으로 말미암아 계속 늘어나기만 하는 비자카드의 빚을 갚기 위해 모기지 융자에 눈을 돌리는 것은 최선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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