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편집국장
늘 드나들던 기자실 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졌다. 출입구에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붙었다. 기자들은 대신 로비에 ‘죽치고 앉아’ 기사를 썼다. 실은 농성이었다. 결국 거기서도 쫓겨났다.
얼마 전 한국언론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외교통상부 로비기자실의 풍경, 그것을 전후해 무수히 지면을 도배한 관련기사들은 많은 것을 생각케 했다. 정부는 꼭 그래야만 했을까,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대로 “기자실에 대못질을 해야” 직성이 풀릴까, 아니 그보다는 노 대통령이나 정부가 생각하는 언론문제가 해결될까….
기자라고 해서 팔이 마냥 안으로만 굽은 건 아니다. 한국언론은 참여정부에 대해 그토록 당당한가, 더욱이 정부의 조치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것까지야 언론으로서 응당 할 수 있다손치더라도 언론이 엄청난 탄압이라도 받은 듯이 신음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과연 정직한가, 만일 그렇다면 언론이 그토록 나 죽네 나 죽네 외치는데도 (기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언론을 동정하는 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은 까닭은 왜일까….
꼬리를 무는 물음들은 “이 시점에 내가 그곳에 있다면 어떤 입장을 취할까”라는 물음으로 이어졌다. 다른 기자들과 합세해 정부규탄에 나설까. 모르겠다. 솔직한 대답은 이것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정부조치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언론의 분기탱천, 좀 야박하게 빗대자면 누구도 슬퍼하지 않는 피해자연(然) 하는 태도 역시 탐탁치 않기 때문이다.
쉬 종잡을 수 없는 한국의 보통사람들 민심을, 게다가 6천마일 떨어진 미국에서 빨갛다 파랗다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부-언론 간 줄다리기를 보는 민심은 “노무현이 하는 짓은 다 싫어서 일단 편을 들어주려고 봤더니 하필 상대가 언론이어서 주저하고 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정부조치가 민심을 다잡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반성할 몫이므로 일단 접어두자. 언론의 언론탄압 주장이 먹혀들지 않은 것은 언론이 아프게 되새겨봐야 할 몫이다. 이렇게 당한다고 언론이 그렇게 아우성을 치는데도 민심이 함께 슬퍼해주지도 분노해주지도 않은 이유를 겸허하게 살펴야 하는 것이다.
정부가 무서워서 기죽었을 민심도 아니고, 정부를 좋아해서 가만있을 민심도 아니란 건 날이면 날마다 민심을 빗대어 정부를 쪼아대는 언론이 더 잘 안다. 언론의 책임이다. 언론 입장에서 야박하게 느껴질지 모를 무심한 민심은 언론의 자업자득이다.
그런데 언론의 그릇된 행태가 한국에서만 그럴까. 미주 한인사회 언론은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대답은 자명하다. 언론, 언론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에 대한 일반인식이 어떤가에 대해서는 언론, 언론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역시 자업자득이다.
본인들이 알고 있을 것이므로 에둘러 예를 몇가지만 들어보자. 올해 봄 어느 단체의 장이 바뀌었다. 새 대표 인터뷰는 공식행사를 통해 하기로 돼 있었다. 새 대표의 연락처를 묻는 어느 기자에게 그 단체 간부는 이 점을 밝혔다. 그 기자는 인터뷰를 하려는 게 아니라며 기어이 전화번호를 받아냈다.
그래놓고 인터뷰 기사를 버젓이 냈다. 이건 약과다. 어떤 기자는 한인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어떤 단체장에 대해 이래서 문제라느니 저래서 문제라느니 제법 입바른 소리를 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그 단체장을 비판한 기자더러 기자가 아니라는 등 글을 써대지 않나 다른 사람들 동의도 받지 않은 채 마치 여럿이 모여 작성한 듯이 무슨 성명서를 발표하지 않나, 그것도 모자라 그것이 제3의 단체에서 발표된 것처럼 자기매체에 게재하지 않나, 도무지 상식을 의심케 하는 행위를 되풀이했다. 또 어느 기자는 본보기자가 취재한 어느 행사에 나타나지도 않았으면서 그 취재원에게 거짓말을 시켜 본보로부터 사진을 받아내게 한 뒤 다시 그것을 가져다 자기매체에 실었다.
어느 매체는 작년 이맘 때 SF한인회의 수재의연금 전달지연을 두고 큰 흑막이 있는 것처럼 썼다가 본보가 원칙과 형평성을 들어 반박하자 ‘의혹’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으니 의혹제기가 아니라고 발뺌하는가 하면, 샌프란시스코 아시안아트뮤지엄 역사왜곡 일본설화 족자파동 때는 우리역사까지 왜곡(혹은 망각)하고 간단한 영어까지 희한하게 비틀어가며 억지주장을 펴다 본보가 족자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동의하되 우리의 주장을 관철하는 방식과 객관성을 문제삼자 지적에는 답하지 않고 ‘건강한 언론’이니 뭐니 하면서 슬그머니 덮으려 했다.
뿐만 아니다. 정론직필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충실한 단순전달자 역할도 못한 채 뒷전에서 별별 희한한 악의성 음모나 꾸미는 사람들이 언론, 언론인 행세를 하고 있다.
그럴싸한 예를 만들어낸 게 아니다. 기자가 경험한 실제사례들이다. 언론의 신뢰상실, 그 원인은 역시 언론에 있다. 구체적으로는 기자들이다. 기자역할은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기자행세에는 경이로울 정도로 근면한 사람들 말이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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