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으뜸가는 성공이 뭐냐면 말이여 가정적 행복이여”
단체는 단체다워야 돼 1불이라도 투명해야 돼(언론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다 좋은 소리를 하려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안돼. 정의감을 갖고 소신껏 해야 돼. 불의와 타협하면 안돼.
1919년 11월23일 충남 논산 태생. 한국식 나이로 아흔인 양성덕 전 EB노인회 회장은 아직도 손수 운전을 한다. 밤길 운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10년동안 맡았던 EB노인회 회장직을 지난해 7월1일 내놓은 뒤 한동안 한인사회 각종 행사장 행차가 좀 뜸했던 ‘북가주 한인사회 큰어른’이 요즘 다시 바빠졌다.
“별거 아니여,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10년동안 그거 하면서 별 대과없이 지낸 게 다 여러 사람들이 도와줘서 그런 거 아니여, 그래서 한사람 한사람 만나면서 감사하단 말도 하고 돌아가는 얘기도 듣고 그러는 거여.”
지난달 29일 오클랜드 오가네에서 만난 양 전 회장은 이런저런 안부나눔 뒤에 슬근슬근 메모를 해가며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는 기자가 인터뷰성 질문을 던질라치면 “오늘은 거시기 그런 얘기(인터뷰)를 할라고 그런 게 아니여, 이봐, 오늘은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내가 듣고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여”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거(EB노인회장) 그만 두면서 후임 회장한테 1년동안 걸치작거리지 않게 꼼짝 안할테니까 소신껏 하라고 했어, 아니 내가 자주 나타나면 (후임 회장이) 부담을 느낄 수도 있고 또 내가 독재한다 소리도 들을 수 있고 그렇잖아. 하지만 이봐, 소일거리, 일거리가 없다는 것 같이 답답한 게 어딨어.”
지나치는 말투로 일의 소중함을 들춘 양 전 회장은 “우리 아파트 사람들 하고 운동도 하고, 우리 할머니(세살터울 부인을 그는 그렇게 불렀다)가 아프니께 차 몰고 병원에도 다니고, 사람도 좀 만나고 그러면서 소일한다”고 근황을 전했다.
“살아보니까 가장 으뜸가는 성공이 뭐냐면 말이여, 가정적인 행복이여.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있잖어? 돈 출세 이런 거 별거 아니여, 가정적으로 행복해야 돼.”
양 전 회장 자신의 가정적 행복도는 얼마쯤일까. 딱부러지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우리 할머니’ 얘기며 북가주 사는 큰딸네(최금열 전 SF체육회장 부부) 얘기며 한국에 사는 다른 자녀들과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는 얘기며 가족얘기를 할 때 그의 얼굴 가득한 웃음이 대변했다. 환갑 지난 82년에야 시작한 미국생활에 대해서도 만족감이 배어났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그래, 우리 노인들한테는 참 좋아, 돈(연금) 대주지 아프면 약 대주지, 우리 할머니 심장수술도 거의 그냥 했어. 엊그저께 무슨 약 무슨 약 해서 열다섯가진가 사는데도 31불밖에 안들었어. 감사하지 뭐야.”
재원확보 회관마련 등 EB한미노인봉사회의 기틀을 다지는 데 앞장섰던 양 전 회장의 눈에 많고 많은 다른 단체들의 모습은 어떻게 비쳤을까.
“그거 내가 할 얘기는 아니지만 말이여, 단체가 단체다워야 돼. 우선 사무실이라도 있어서 일하는 것 같이 해야지. 사무실이 있으면 전기값 물값이라도 들겠지, 그거 내야지, 누가 지키고 있어야지, 전화라도 놔야지, 그럴라면 돈이 있어야 돼. 어디서 못 구하면 대표되는 사람이 그런 정도는 부담할 각오로 하든지. 그것도 저것도 아니면서 여기저기 옮겨다니면서 남의 돈 받아다가 쓰면서 함부로 쓰고 그러면 안돼. 도와달라 도와달라 하기에 앞서서 단돈 1불 10불이라도 투명하게 해야 되는데 그게 안돼서 욕먹고들 그러잖어.”
이러저리 튀던 화제는 잠시 언론문제에 닿기도 했다. “그 뭐냐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다 좋은 소리를 하려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안돼. 정의감을 갖고 소신껏 해야 돼. 불의와 타협하면 안돼. 이봐, 정(그는 기자를 이렇게 불렀다)도 명심하라고, 누가 뭐래도 바른 소리를 할 때는 바른 소리를 해야지, 좋은 게 좋다고 왔다갔다 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돼. 옳은 것은 소신껏 하라고, 그게 재산이여.”
갈비만 빼놓고 갈비탕 한그릇을 거뜬히 비우며 아흔 나이를 몰라보게 간간이 유머를 섞어가며 얘기꽃을 피우던 양 전 회장은 그러나 어릴 적 고향친구들이 하나도 남지 않은 얘기를 할 때는 잠시 뜸을 들였다.
“다 그렇게 됐어. 딱 한명 남았는데 재작년에 죽었어. 거기(고향)나 여기나 나 혼자 남았어.”
어둠이 짙어지자 “우리 할머니 기다리니까 인자 가봐야겠다”며 자리를 털고일어선 양 전 회장은 또다시 “소신껏 하라”는 말과 함께 손을 흔들고는 거리를 향해 승용차를 몰았다. 저녁 내내 1시간30분 내내 못찍은 사진은 그제서야 찍을 수 있었다.
<정태수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