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하기엔 너무 찬란한 유혹-<미녀는 괴로워>
이 시대의 미녀들이 괴로운 진정한 이유
1. 어쩔 수 없이, 미녀를 만나다.
내가, <미녀는 괴로워>라는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순전히 강의를 위해서였다. 내 학생들은 내주를 위한 수업 준비로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페이퍼를 작성해 와야 했는데, 내가 칠판 가득 써놓은 한국영화와 드라마 리스트에 <미녀는 괴로워>가 구색 맞추기용으로 끼어 있었던 거다.
리스트에 오른 각종의 볼거리들은 한국인의 성정체성과 미의식의 상관 관계를 테마로 하는 것들이었고, 나는 거듭 내 학생들에게 <코르셋>이라든가 <301, 302> 같은 영화를 보아줄 것을 종용하면서 다음주 학생들의 무척 철학적일 페이퍼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주가 흘러 강의 시간. 왠걸, 선생의 큰 기대는 아랑곳없이 대부분의 학생들이 오직 하나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미녀는 괴로워>라는 영화말이다.
앞뒤가 무척이나 꽉꽉 막힌 인문학적 인간인데다, 미인이라면 시인 김수영의 <미인>이라는 시의 이미저리를 제일 먼저 떠올리는 약간 촌스러운 나로서는, <샬로우 할>의 기니스 펠트로우를 흉내내고 있는 여배우하며, 헐리우드를 베낀 엉성한 가족드라마의 흔적이 잔뜩 묻어 있는데다, 하이틴류의 로맨스로 위장한 그 영화가 무척 마땅찮았고, 더불어 학생들의 ‘영화 고르는 눈’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음을 고백해야 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미녀는 괴로워>라는 이야기에 대해 쓰려고 한다.
한국의 모든 상을 거의 휩쓸다시피하면서 한국사회에 ‘미녀’신드롬을 일으킨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그 이름부터 무척 아리송하다. 한국 사회에서 ‘미녀’가 괴로울 일이 만무할 터임에도, 미녀는 괴롭나니, 백번 죽었다 께어나도 미녀의 괴로움을 알지 못할 나로서는 두고두고 생각해 보아야 할 숙제감일 뿐이다.
그래, 미녀가 왜 괴로운 건지, 우리의 국민적 미녀를 괴롭히는 것이 고대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영화를 읽어 볼까나.
2. 한나가 얻은 것과 마리아 칼라스가 잃은 것.
한나의 존재감은 마치 오페라의 유령처럼 어두운 무대 뒤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로 재현될 뿐이다. 마치 디즈니랜드 애니메이션 속 인어공주나 동화 속의 사이렌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몸을 지닌 ‘미녀’를 넘어서는 지점에 있다.
그러나, 미녀의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일에 만족하기에 한나의 상진에 대한 사랑과 애착이 너무 강하다. 그러느로, 상진을 향한 한나의 욕망은 미녀의 육체에 대한 욕망으로 전도될 수밖에 없다.
인어공주 에어리얼이 왕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목소리를 버려고 두 다리를 얻는 변신을 시도했다면, 한나는 좀 더 과학적인 방식으로 무척 모던한 21세기적 변신을 시도한다.
200파운드의 지방을 거대한 파도처럼 출렁이던 뚱녀 ‘한나’는 과학의 힘으로 미녀 ‘제니’로 재탄생하게 된다. 사실,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한나/제니가 미녀의 육체를 얻기 위해 잃은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인어공주 에어리얼이 두 다리를 얻은 대신 목소리를 잃었고, 저 유명한 마리아 칼라스가 극심한 다이어트로 체지방을 잃어가는 동안 극찬받던 미성과 세기의 연인 오나시스를 한꺼번에 잃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한나/제니가 벌인 한판의 도박은 무척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토록 무모하고 엽기적인 협박과 거래를 통해 바비인형으로 재탄생한 그녀들, 한나/제니가 인어공주도 마리아 칼라스도 피해갈 수 없었던 징벌로부터 자유롭다는 사실이라든가, 여전히 ‘마리아’를 멋지게 부르고 상진에게 그 매혹적인 목소리로 사랑을 속삭일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 재미있다.
그러나, 보라. 한나/제니는 정말로 성공했는가?
트랜스포머적 변신술에 성공한 한나/ 제니조차 끊임없이 싸우고 도망해야만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기억일 터. 한나는 한나인가? 제니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상진은 한나를 사랑하는가? 제니를 사랑하는가? 그도 아니면 신인류 팬텀을 사랑하는가?
성형 수술 후의 한나/제니의 육체는 각기 다른 두 개의 정체성과 영혼들이 격렬한 싸움을 벌이는 전투의 장으로 바뀐다. 더욱 큰 문제는, 그러나, 그녀가 한나나 제니, 그 어느편에도 완전히 동화될 수 없다는 사실.
인어공주와 오디세우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아봐 주는 개가 목메이게 반갑고 사무치게 고마운 친구라면, 한나/제니에게 있어 강아지는 성형 전의 추한 기억을 일깨우는, 일테면 일종의 손톱 밑의 가시같은 성가신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한나/제니는 그 어느 쪽과도 완전히 동일화할 수 없는 두 개의 동떨어진 정체성 속을 한 맺힌 유령처럼 떠도는 팬텀이자 분열증 환자이다.
3. <샬로우 할>과 <미녀는 과로워> 사이의 간극.
기니스 펠트로과 잭 블랙이 주연한 영화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샬로우 할>이 <미녀는 괴로워>와 마주 서 있다. 두 영화는 하나가 다른 하나를 베낀 듯 꼭 닮았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미녀는 괴로워>의 한나가 엄청난 성형술을 통해 미인으로 재탄생한 반면, <샬로우 할>의 로즈마리의 경우 최면술에 의존햇다는 사실. 그러므로 최면술이라는 약간 구식의학을 써먹고 사랑을 얻은 가짜미인 로즈마리의 정체성은 하등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단지, 비싼 의자를 부서뜨리거나, 수영장에서 거대한 해일을 만들거나, 잭으로서는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는 낙하산만한 엑스-라지 사이즈의 속옷을 침대 위에 남길 뿐이다.
감독은 기니스 펠트로의 육체 위에 로즈 마리의 내면 즉, 봉사단에 참가하고 화상병동의 아이들을 돌보는 천사 이미지를 겹쳐 씀으로써, 여성의 겉모습보다 내면을 보도록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최면을 걸고 있다.
<샬로우 할> 속에서 문제적인 캐릭터는 할이지 로즈 마리가 아니다. 로즈 마리는 언제까지나 로즈 마리일 뿐, 기네스 펠트로가 되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나, 보라. <미녀는 괴로워>의 한나는 제니가 되려함으로써 모호하고 불안한 주체의 떨림과 혼란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세상의 모든 빛은 제니에게로 가서 응결될 뿐, 반쪽인 한나에게는 여전히 금지된 것들이다.
제니가 ‘마리아’를 목청이 터져라 불러도 한나는 무대 뒤 어둠에 속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그것은 너무나 가볍게 처리된 영화의 후반부 해피엔딩과는 무관하게 사실은 죽음으로도 지워질 수 없는 육체적인 고통이자 심리적인 상흔인 것이다. 그래서말이다, 미녀는 정말 괴로운거다.
4. 미녀도 아줌마가 된다.
미는 거죽 한장 차이라 했다. 양귀비나 서시 같은 천하의 절색도 세월이 흐르면 서여사가 되고 양씨 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을 아는가. 어쩌면 시간이라는 놈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 주어서, 그리고 생로병사 앞에 누구든 맨 몸으로 평등하게 나서야 하기에 인간은 노추와 죽음을 의외로 쉽게 받아 들일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삶의 궁극적인 아름다움은 바로 시간의 삶의 평등함에 있다고 말해야 하리라.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답거나 추한 것들은 모두 먼지와 바람으로 돌아가리라는 사실. 그리고, 갑자기 떠오르는 막막한 의문 한가지. 그런데말이야, 실리콘도 먼지가 될 수 있으려나 몰라.
<정영화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