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진달은 종종 ‘포테이토’로 불리운다. 소수계이면서도 백인 못지않게 보수적인 그의 이념에 대한 반발 내지 보복성 빈정거림이다. 같은 동양인이라도 피부가 노란 색이면 ‘바나나’이고 인도계인 진달처럼 갈색이면 ‘감자’에 비유된다.
인도계 이민2세인 진달은 열흘 전 루이지애나 주지사에 당선되면서 미국의 새로운 스타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3년전 버락 오바마가 연방 상원의원으로 당선되며 일리노이주에서 누렸던 인기 못지않게 요즘 진달은 ‘루이지애나의 신화’로 각광받는다. 최초의 인도계 주지사, 불과 36세로 현재 미국 내 최연소 주지사, 그리고 루이지애나 사상 최초의 비백인 주지사… 루이지애나가 어떤 곳인가. 백인우월주의 극렬단체인 KKK단원이 주지사에 출마해 백인 유권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지 20년도 안지났다. 인종차별이 아직도 곳곳에 스며있는 ‘딥 사우스’ 루이지애나에서 소수 중 소수인 동양계 2세가 11명의 후보를 누르고 승리 거둔 것이다.
진달은 여러모로 똑똑한 한인2세를 연상케 한다. 인도 푼잡지방 가난한 가정의 9남매 중 유일하게 고등교육을 받은 엔지니어 아버지와 핵물리학자인 어머니가 미국으로 유학온지 6개월만에 태어난 그는 모든 시험은 100점을 받아야 만족하는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브라운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했고 로즈장학생으로 옥스퍼드를 마쳤다.
독특한 아이이기도 했다. 4살 때 ‘피유쉬’라는 인도고유의 이름을 스스로 ‘바비’로 바꾸었고 고교때 힌두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대학 1학년때 가톨릭이 되었다. 리버럴 수재들로 가득찬 아이비리그 캠퍼스에서 그의 거의 유일하게 ‘낙태반대’를 외치던 보수파였다. ‘레이건은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주장하며 브라운대학 내에 공화당 지부를 처음 설립한 그는 대부분 진보좌파의 대학생들 속에 독야청청했던 ‘희귀종’이었다.
의사가 되려던 계획을 접은 것은 여름방학때 연방하원 짐 매크리리의원 사무실에서 인턴을 하면서였다. 서류복사보다는 좀 더 일다운 일을 하고싶다는 인턴에게 매크리리의원은 메디케어 개선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해보라고 시켰다. 제출된 리포트는 놀랄만큼 뛰어났다.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어냈고 해결책을 명쾌하게 제시했다. 이 리포트는 몇 년 후 매크리리 의원이 진달을 루이지애나 주 보건부 장관으로 추천한 계기가 되었다.
젊다기 보다 어린 24세에 책임 맡았던 주 보건부는 연 40억달러 예산과 1만3,000명 스탭을 관리하는 주정부내 최대부서였고 극심한 재정난에 빠져있었다. 패기와 열정에 넘치는 젊은 ‘천재’ 진달이 4억달러에 달하던 적자를 거뜬히 해결해낸 것은 취임 2년만이었다.
진달의 이력서는 화려하다. 24세에 루이지애나주 보건부 장관, 26세에 전국 메디케어개혁위원회 위원장, 28세에 루이지애나 주립대 시스템 총괄 디렉터, 30세에 연방보건부 차관보, 32세 주지사 선거 도전(예선에선 1위였으나 결선에서 패배), 33세에 연방하원의원 당선, 35세에 연방하원 재선, 그리고 36세에 주지사 당선.
진달의 승리 요인은 크게 두가지로 꼽힌다. 첫째는 지칠줄 모르는 강행군 캠페인이다. 2003년 첫 도전에서 실패한 이후 지난 4년간 발로 뛰며 루이지애나 주 전역을 누볐다. 특히 첫 선거에서 자신을 외면했던 북부 백인 기독교인 표밭을 겨냥, 무려 77차례나 방문했다.
둘째는 타이밍이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몰아쳤을 때 주민들은 무능한 정부의 실체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지난 선거에서 진달을 누르고 당선되어 허리케인 재난을 겪었던 카틀린 블랑코 현 주지사는 인기폭락을 자각, 재선 출마를 포기했다. 현 정치에 실망하고 변화를 갈망하는 주민들은 ‘아웃사이더’이지만 유능하고 깨끗하고 참신한 새얼굴에 기대를 걸기로 한 것이다.
진짜 테스트는 이제 부터다. 진달은 으뜸공약으로 주정부의 윤리의식 회복을 내세웠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여 ‘새로운 루이지애나’를 실현시킬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약속이다. 취임즉시 윤리개혁을 위한 주의회 특별회기 소집을 공언했다. 부패했지만 뿌리 깊은 기존 정계, 특히 민주당 의회와의 한판 대결이 불가피하다. 이념이나 정치보다는 가난한 서민들의 민생을 위한 ‘실용적’ 주지사로 일관한다면 전망은 그리 나쁘지 않다.
또 다른 과제가 있다. 인도계, 나아가서는 소수계 커뮤니티와의 관계 재정립이다. 2003년 선거에서 인종차별적 흑색선전에 피해를 입었던 진달은 이번 캠페인중엔 인종이슈는 애써 피했다. 피부색 등 인종이슈가 제기되면 “중요한 색깔은 오직 적·백·청(성조기의 색)뿐이다”라고 잘라 말했을 정도다.
마이너리티 측면을 가능한 축소시키는 한편 낙태반대, 지적설계론(진화론에 맞서 과학이론으로 설명하려는 창조론) 교육 찬성, 작은 정부 등 공화당의 정통 보수이념을 펴는 그는 전형적 소수계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진보성향이 강한 마이너리티의 ‘바람직한’ 롤모델로 띄우기도 석연치 않다. “그가 우리와 피부빛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축하해야하느냐”는 불만은 그의 당선을 무조건 자랑스러워하는 이민1세보다는 주류사회로 진입한 2세들 사이에서 많이 나온다.
인종차별의 본거지였던 미 남부에서 인도계가 주지사에 당선될 만큼 미국은 변하고 있다. 미 주류사회로 진출하는 소수계 정체성에 대한 시각에도 변화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보수공화당 이민2세 진달의 화려한 비상은 우리에게도 이런 변화에 대해 깊게 생각할 계기가 되고있다.
박 록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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