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희(뉴욕시 교육청 학부모 조정관)
“사라야! 한국음식 좀 싸줄까?”
No! “그럼 햇반이라도 가져갈래? 아니면 고추장이라도...”
No, thank you! “아 그래, 그러면 런던은 비가 자주 온다니까, 너 라면이라도 몇 개 가지고 갈래? 엄마! I told you, I am fine! 씩씩하게 뒤도 안 돌아보며 런던으로 대학 간 딸이 정확하게 2주가 되자, 이메일로 김치와 라면이 너무 먹고 싶으니 우편으로 좀 보내 달라고 했다. 그 말에
딸이 안쓰러우면서도 왜 그렇게 속으로 고소해 했는지 모른다.
그러면 그렇지. 우편은 너무 비싸니까 대신 런던에 있는 한국 수퍼마켓에서 사다 먹어! 딱 부러지게 얘기하니 속이 다 시원했다. 평소 입버릇처럼 부모와 떨어져 사는 게 꿈이라고 하던 딸이 간지 두 달이 못돼, 이메일을 보낼 때마다 ‘엄마가 런던에 한번 왔으면 좋겠다’고 나에게 간청했다. 여행을 원래 좋아하고 재작년에 돌아가신 친정엄마를 뵈러 한국에 자주 가느라고 유럽에도 한번 못가고 지낸 세월이라, 핑계 김에 남편과 상의하니 쾌히 승낙해 컬럼버스 데이가 낀 연휴를 이용해서 다녀오기로 했다.
갑자기 일주일을 앞두고 여행을 하려니 비행기표 값이 만만치 않았지만 인터넷을 뒤져 본 결과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입, 생전 처음 타는 에어인디아를 타고 런던에 가게 됐다. 지난 2월 겨울 방학,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가고 싶은 마음에 큰 딸 사라와 조카 의주와 사흘 동안 런던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사라가 마침 런던으로 학교를 가게 돼 기회가 왔고, 또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무조건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카레향이 밴 채식주의자식의 기내식이 아주 먹을 만했고, 기내도 깨끗하고 친절했다. 가지고 간 책을 읽고 한숨 자고나니, 벌써 30분이면 런던 히드로 공항이라며 기내방송이 도착을 알렸다. 공항도 붐비지 않았고 이민국 직원도 아주 상냥했다. 공항 도착 후, 엄마가 기차타고 오면서 길을 헤맬까 봐 미리 마중 나온 기특한 딸을 반갑게 만났다. 15 파운드짜리 익스프레스 기차와 지하철을 타고 투팅 브로드웨이 역에서 내렸다.
빨간 2층 버스를 타고 네 정거장을 간 후, 10분 정도 언덕길을 걸으니 딸의 기숙사에 도착했다. 그토록 맨해튼과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만 좋아하고 플러싱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딸이 플러싱과 아주 비슷한 투팅 브로드웨이라는 런던의 남쪽 구석 동네에 기숙사를 배정받은 것이다. 입학
허가 통보를 늦게 받은 터라 런던 시내나 학교근처의 기숙사들은 벌써 다 입주된 상태여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니 그렇게도 플러싱에서 전철 타고 오가는 것을 지겹게 생각 하더니...’ 학교에서 써클라인 전철을 타고 스탁웰이라는 역에서 다시 노던라인 전철로 갈아탄 다음 내려, 두 블록을 걸어 버스를 타고 또 한참을 걸어야 했다. 기숙사 방은 작았고 시설은 미비했다. 천장에는 스프링 쿨러와 알람 등이 부착 돼 있고 세면대와 옷장, 침대와 책상, 의자와 낡은 소파 하나가 전부였고 화장실과 샤워와 부엌은 공동으로 쓰
게 돼 있었다. 현대적인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필요한 건 다 있었다. 기숙사 정문을 열쇠로 연 다음, 현관에서 엘리베이터로 통하는 공간까지 두 개의 문은 아이디카드를 긁어야 들어 갈수 있었다. 철통같은 보안이 맘에 들었다.
마침 도착 이틀 후, 아침 등교 시간 즈음해 화재비상 경보가 울렸다. 이 바람에 엘리베이터의 전원은 일시에 다 나가고, 모든 학생들이 계단을 통해 조용히 내려왔다. 시간은 약 5분 정도 걸렸다. 보슬비가 내리는 기숙사 마당에서 서성대니 5분내에 소방차 두 대와 구조대원을 태우고 온 차가 8명의 소방대원을 토해내고 그들은 곧바로 건물로 들어갔다. 약 15분 후에 누가 토스터기에 빵을 태운 것이 화재 경보기가 작동하게 된 원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런던의 소방대원들은 거의 밤색에 가까운 아주 짙은 자주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뉴욕의 소방대원들보다 더 날씬해 보였다. 어쨌든 온 김에 비상사태를 대비하는 모습을 실제로 체험 한 것이 안심이 됐다.
물가가 워낙 비싼 영국이라 기숙사 근처에 싱글 룸을 예약했는데 샤워는 있고 화장실은 공동 사용하는 방이 28파운드였다. 마침 도착하니 혼자 호텔에 있는 게 싫어서 기숙사 매니저에게 얘기하니 딸과 같이 있어도 된다며 친절하게 승낙했다. 문제는 자고난 다음 아침인데 딸이 짜증을 내서 이를 참고 있다가, 오후에 “너 그렇게 엄마와 같이 있는 게 싫으면 오늘 오후라도 호텔로 즉시 옮기겠다”고 협박했다.
그랬더니 “좁은 방에서 혼자 생활하다가 엄마가 와서 ‘이 물건은 어디 있느냐’ 자꾸 물어보고 좁은 침대에서 둘이 자야 하고 하니 그랬다”고 미안해하며 엄마와 같이 있는 게 좋다고 했다. 나는 “한번만 더 그러면 즉시 호텔로 간다.”며 못 이기는 척 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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