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일본서기의 내용 중 사실을 기록했다는 사실의 내용과 윤색 왜곡한 내용을 하나하나 비교하며 살펴봅니다. 사실을 기록한 기사에는 “백제로부터의 대규모 이주민이 야마토에 정착하여 그곳의 지명이 백제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선 ‘백제로부터의 대규모 이주민’에 관해서 일본서기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應神(응신) 14년(403년), 동 16년 8월, 동 20년 9월조 기사는 백제로부터 대규모 집단이 야마토로 이주해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의 기사와, 동시에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사실기사의 앞뒤에 ▲백제왕이 조공을 하였으며 ▲신라왕이 일본 장군들의 공격을 받아 겁을 먹고 천황에 복종하였다는 기사 등을 배치하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60여년 후인 雄略(웅약) 14년(470년)의 사실기사는 ▲천황과 같은 지역에 사는 한 호족(豪族)이 천황의 보물을 착복하였다 ▲그 호족장이 거주하는 집은 천황이 거주하는 집보다 더 견고하고 훌륭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그러한 일본(大和倭)에 백제왕이 조공하고 신라왕이 강력한 왕권의 일본(大和倭) 천황에 항복, 服屬(복속)하였다는 기사는 허위임이 분명해 집니다. (서기 470년경이라면 신라는 慈悲麻立干(자비마립간) 13년이요, 백제는 蓋王(개로왕) 16년이며 고구려는 광개토대왕의 후대인 장수왕 58년이며 중국은 송나라 시대입니다. -이 때의 송나라는 A.D. 960년대의 後周(후주), 十國(십국) 이후의 송나라가 아님)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백제로부터의 대규모 이주민이 야마토에 정착하였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서 아예 백제로부터의 이주민을 다음과 같이 왜곡하고 있습니다. ▲고대 한국에서 일본에 항복한 포로 ▲일본 한 씨족의 조상 ▲나라 없는 진한(辰韓: 신라)의 유민 ▲한 중국인(秦氏:진씨)의 조상 ▲일본에 귀화한 낙랑, 대방의 인민
▲일본이 조선을 경영한 결과 일본에 귀화한 조선사람 ▲웅약(雄略)왕 시대의 설화를 응신(應神)시대에 소급한 것.
백제로부터의 이주민에 관한 기사는 모두 조작된 것이므로 믿을 수 없다고 피력합니다.
위 8가지 중 합당하다고 믿는, 또는 그렇게 믿고 싶거나 그렇게 믿게 하고 싶은 내용을 선택하여 주장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일본서기에 나타난 대화(大和), 하내(河內) 지역의 마을 이름이 백제라 되어있는 것은 어찌 설명할 수 있을지.
백제의 집단이주민은 최종 종착지 야마토(大和)나 처음 기착지이며 통과 지점인 가와치(河內) 지역의 촌락 이름을 백제라는 국호를 붙여 명명한 기록이 일본서기에 남아 있으니, 百濟大井(백제대정), 石川 百濟村(석천 백제촌), 下百濟河田村(하백제하전촌), 百濟川(백제천) 등입니다.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백제하전촌’은 촌보다는 넓은 지역이며, 이러한 촌을 관리하는 ‘하백제’와 ‘상백제’가 있었고, 이를 총칭하여 ‘백제’라 했을 것인데 백제는 국가적 의미요, 상백제, 하백제는 프로빈스(province)의 의미일 것이며 河田村(하전촌)은 마을일 것이다. 백제인의 거주지역에 이러한 명칭을 남긴 것은 신라와 고구려와 가야의 이주민도 있어서 그들은 그들의 나라이름을 사용하였으니 백제 역시 그들과의 구분을 위해서 이와 같은 명칭들을 사용한 것으로 생각 한다.
-이 지명들을 구분 표기하여 일본열도를 둘러보면 일본열도는 백제, 고구려, 신라, 가야라는 지명으로 덮여있는 형상으로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한 보고서는 비단 촌락명이나 하천 명에만 나라 명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섬(島), 산, 고개, 항구, 해변, 저수지, 험한 산길, 도선장, 역(驛), 목장, 사유지, 다리(橋) 이름 등은 물론 심지어는 선박이나 건물 이름에도 위 네 나라의 한국명을 사용하였으며, 중국의 晋書(진서)에도 이르기를 ‘일본열도 100여개의 小國(소국)들은 고대 한국인이 이주하여 건설한 국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일본 원주민은 문자도 없었다는 사실과 일본의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은 이른바 應神(응신) 왕릉과 仁德(인덕) 왕릉의 출토품을 위시하여 거의 전부가 한국의 것과 동일, 유사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日本書紀’에 나타난 大和倭王(대화왜왕)의 거처와 왕권에 관한 내용을 알아봅니다. (본 원고가 필요하신 분은 waks.info를 방문하시어 협의회 자료실을 열어보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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