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스코 성당의 내부를 돌아보는 산악회 일행들. 어디서나 잉카의 태양신 문명에 기독교를 무리하게 접목시킨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갈대로 만든 새 배의 첫 출항을 위해 우리 일행도 함께 배를 호수 위로 밀었다.
푹신힌 갈대배 타고 호반의 섬 환상 일주
곳곳에 지구 온난화로
빙하 사라져 생태파괴
훼손당한 잉카 유적지
스페인군 만행에 분노
6월7일 11시쯤 마추피추를 떠나 버스로 시내(Aguas Calientes)로 갔다. 점심 먹으러 들어간 이 식당으로 우리의 모든 짐들이 배달되어 있었다. 포터들이 갖다놓고 갔구나, 다시금 고마웠다.
최 약사와 나와 동생 셋이서 피자와 맥주를 샀다. 우리에게 신고식을 하라고 말한 사람도 아무도 없었지만 등산 초보생인 우리들이 그 유명한 잉카 트레일을 무사히 마치게 해주신 KAAC 회원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었다. 나무로 불을 지핀 오븐에서 구운 피자와 아보카도 샐러드, 수프와 닭고기 등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여자 5명은 온천을 하러 갔다. 물이 기대만큼 뜨겁지는 않았지만 3박4일 산행 동안 머리도 못 감고 목욕을 못했던 나는 미지근한 온천물도 감지덕지였다.
쿠스코로 돌아가는 기차에 타자마자 나는 잠이 들었다. 4일간의 산행과 마추피추, 그리고 배불리 먹은 점심 후의 온천, 몸은 노곤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고 보니 사방이 어두웠고 기차는 Ollantaytambo역에 도착해 있었다. 마추피추에서 오는 길의 숲과 계곡과 산들과 마을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고 최 약사가 말했다. 깎아 세운 듯한 바위 절벽에 야생난들이 다닥다닥 붙어 자라고 있었단다. 며칠 전 우리가 묵었던 호텔로 돌아오니 집에 온 듯 반가웠다.
6월8일 푸노(Puno)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기차가 있으나 중간 중간에 6곳의 유적지를 보기 위해 버스를 탄다고 했다. 400여년 전에 지은 성당에 들렀다. 이들 민족이 만든 건물의 허리를 잘라 그 위에 성당을 지은 어디나 스페인군이 할퀴고 간 자국이 있다. 특이한 것은 성당 앞면의 천장 쪽에 커다란 금으로 태양 모양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었다. 이 민족의 건물에 성당을 접목시켜 지은 것처럼 태양신에 십자가가 접목되어 있었다.
우리가 성당 내부를 구경하는 사이에 김 회장님은 성당 옆 묘지에서 사진을 찍어 오셨다. 사람이 죽으면 다시 환생한다고 믿었던 이들은 시신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뇌와 내장을 모두 꺼낸 후 그 속에 마늘, 후추, 고추, 소금, 향료 등을 넣고는 팔꿈치와 무릎을 가슴 위에 X모양으로 접고 솜으로 몸을 싸서 앉아 있는 모습으로 장례를 치른 머미(mummy) 사진이었다.
성미구엘 성당에 들렀다. 이곳에는 잉카 이전 시대의 유물이 있는 박물관도 있었고 제주도의 돌하르방 같은 왕방울 눈을 가진 남자 조각이 있었다. 아이의 목을 제물로 드린 듯, 한 남자가 다른 조그만 얼굴을 양손으로 붙들고 있는 돌 조각도 몇 개 보였다. 교회 지붕 위 황소 2마리의 조각이 눈에 띄었다. 이들 민족이 풍요를 기원하는 뜻으로 그들의 가축인 라마 2마리를 조각하여 지붕에 얹어 놓았는데 스페인군이 와서 라마를 치우고 십자가와 함께 황소를 대신 얹어놓았다고 한다. 십자가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횡포가 행해졌는지 모른다.
한편에 눈 덮인 산이 보인다. 5,590미터의 높은 산, 3~4년까지만 해도 꼭대기에 만년설인 빙하가 있었는데 지금은 지구 온난화로 더 이상 빙하는 없고 눈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곳곳에 지구 온난화가 미치는 변화가 눈에 보인다. 동생과 들렀던 ‘National Park Reserves Paracas’ 해양보호구역도 물 온도가 섭씨 15도였던 것이 요즘은 25도나 되어 남으로 이동하는 플라밍고 등의 철새들과 돌고래 등이 그 곳에 머물 때 물 온도가 높아지면서 먹이인 앤초비가 바다 깊이 내려가 철새들과 물고기 떼가 충분한 음식과 쉼을 갖지 못하여 목적지까지 제대로 갈 수가 없다고 한다. 지구의 신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6월9일 아침 7시 출발, 배를 타고 티티카카 호수로 갔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3,830미터에 자리한 195×50km의 남미에서 가장 큰 호수, 4분의3이 페루에 속하고 나머지 4분의1은 볼리비아에 속한다고 한다. 배를 타고 약 40분쯤 가니 갈대로 엮어 만든 섬이 나왔다. 우로스(Uros)라는 인조섬. 갈대의 엉키고 엉킨 뿌리를 바닥으로 하고 그 위에 갈대 잎을 가로 세로로 깔아 만든 물 위에 떠 있는 갈대 섬이었다.
갈대로 집을 지어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달려 왔다. 밝은 표정의 귀여운 아이들. 동생이 가져간 과자를 나눠주었다. 원래 가난한 어부들이 물가에 무수히 자란 갈대를 엮어 그 위에 살던 것을 약 30년 전, 페루 정부에서 관광 목적으로 깨끗한 갈대 섬을 만들어 관리하고 페루 여인들은 전통 복장을 하고 있었다.
한편에 갈대로 만든 배가 있었다. 남자 7명이 한 달 걸려 만든 새 배로 오늘 첫 출항을 한다고 했다. 우리는 배를 호수 위로 함께 밀었고 배가 뜨자 함께 배에 탔다. 배 안은 다다미처럼 폭신했고 마른 풀냄새 같은 갈대 향이 좋았다. 고향 같은 느낌이었다. 선두는 새의 머리 모양을 했고 후미는 갈대 잎을 묶어 새의 꼬리 같았다.
곧 진수식을 한단다. 늙은 할머니가 콜카 풀잎을 호수에 던지면서 고기 많이 잡고 무사하길 빌었다. 뚝배기 같은 그릇에 든 물을 휙- 뿌리면서 ‘꼬시레’를 했다. 부와 안전을 구하는 마음은 한국이나 다름이 없구나. K2씨가 진수식의 주역을 맡아 배의 옆구리에 매단 샴페인병을 나무망치로 힘껏 쳐서 한 방에 터뜨렸고 우리는 환호를 질렀다. 진수식을 끝낸 배는 두 남자가 노를 저어 우리를 뱃놀이시켜 주었다.
순간순간이 즐거웠다. 다시 유람선을 타고 약 2시간 달린 후 따르끼레(Tarquile) 섬에 도착했다. 약 3,200년 전부터 따르끼레라고 하는 민족이 살며 깨츄 언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는 약 45분을 걸어 올라가서 섬의 가장 높은 곳에 마련된 식당에 앉았다. 파아란 호수, 멀리 보이는 볼리비아 빙산, 그 위의 하얀 구름, 그리고 푸른 하늘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이 섬에는 아직 수도 시설이 없어 새벽 5~6시면 마을 사람들이 호수에 물을 뜨러 간단다. 정부에서 이곳에 워터 펌프시설을 하려고 했으나 100만 sol 이상의 돈만 낭비한 채 아직 펌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이곳은 1950년 가뭄으로 머리에 이가 극성을 부릴 때까지는 모두들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이 머리 자르는 것은 불효라고 믿었던 것과 같은 것일까? 아직도 긴 머리를 한 여인들이 제법 보였다.
모든 남자, 여자, 애들까지도 길을 걸으면서도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가이드가 말하기를 이 섬은 뜨개질 작품으로 유명해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곳이란다.
www.kaacla.com
하 성 자<약사·재미한인 산악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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