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닷새째 타오르는 불길을 지켜보며 몇가지를 생각한다. 거의 해마다 떠오르는 똑같은 의문이다.
왜 남가주의 산불은 한 여름 열기의 와중이 아닌 가을엔 발생할까. 겨울로 접어드는 할로윈이 내일모레인데 왜 기온은 1백도까지 치솟는 것일까. 폭풍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도 않은 채 하늘은 맑고, 태양은 쨍쨍한데 어떻게 시속 80마일을 넘는 강풍이 며칠을 계속 휘몰아칠 수 있는가. 매년 발생하는 산불인데 진화는커녕 왜 해가 갈수록 불길은 더 강해지고 피해는 더 커지는 것일까. 그리고 사람들은 화재위험이 높은 바로 그 자리에 왜 그처럼 비싼 집을 짓는 것일까…기후학자 마크 라이즈너는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자연을 사랑은 하지만, 이해는 하려고도 않기 때문”이라고 마지막 질문에 대답한다.
옛 인디언들은 LA를 ‘연기의 계곡(Valley of the Smokes)’이라고 불렀다. 잠시만 방심하면 키 높이로 자라버리는 덤불의 번식을 막기위해 자주 불을 놓아 태우느라고 늘 연기가 피워올랐기 때문이다. 현대의 한 환경학자는 남가주를 ‘자연에 도전한 인간의 위대한 승리’라고 표현했다. 잡목 뒹굴던 황폐한 사막에 펼쳐진 풍요로운 문명의 본보기이긴 하지만 샌디에고에서 샌타바바라까지 해안선을 따라 수백만명이 집짓고 사는 것은 아무래도 신의 뜻은 아닌 것 같다는 한마디도 덧붙였다.
18세기 중반 처음으로 이 해안가를 따라 여행했던 스페인의 후안 크레스피 신부도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오며 지진이 계속되는’ 이곳은 경치는 아름답지만 사람이 터 잡고 살기는 힘든 곳이라고 일지에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신부의 뒤를 따라 들어온 개척민들은 그의 충고를 따르지 않았다. 자연을 거슬러 강의 물길을 돌리고 언덕을 깎고 계곡을 메워 수천수만의 집을 지었다. 그러나 건설은 인간의 능력이지만 자연은 신의 영역이다.
6백마일 멀리에서 끌어온 물로 오아시스를 건설했으나 기후가 바뀐 것은 아니다. 수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남가주는 불타기 좋은 ‘천혜’의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끝없이 긴 태양의 계절에 이어 잠시 따뜻한 겨울이 뒤따른다. 비 한방울 안 오는 긴 여름은 극도로 건조하고 짧은 겨울동안 쏟아지는 폭우로 잡목은 무섭게 성장한다. 남가주에 가장 흔한 덤불인 만자니타도 그중 하나다. 짧은 겨울에 부쩍 자라 길고 건조한 여름을 견디기 위해 제 몸속에 수분대신 오일을 비축하는 만자니타 덤불 1파운드는 1컵의 개솔린과 같다고 보면 된다.
남가주는 사막이다. 시속 1백마일 넘게 불어대는 뜨겁고 건조한 샌타애나 바람과 90도를 넘는 인디언 서머가 맞닥뜨릴 무렵 제 몸에 기름을 담은 채 죽은 덤불들이 계곡과 벌판에 가득 찬 때가 남가주의 10월이다. 해마다 그랬듯이 앞으로도 산불은 그치지 않고 발생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번 화재를 ‘메가 파이어’라고 이름붙인 크리스천 사이언스모니터지는 금년 산불의 원인을 몇 가지로 꼽았다. 평년보다 9인치나 부족했던 강우량, 20년 전보다 78일이나 길어진 산불시즌, 지구온난화로 1도나 상승한 서부지역 평균기온…이런 자연의 파워가 그 어느 때보다 개선된 인간의 화재대비 체제를 무색케 한 것이다.
산불의 근본원인으로 한가지가 더 지적되었다. 너무 깊이 너무 많이 자연 속을 헤집고 들어 간 주택 개발이다. 매년 60만명에 달하는 인구증가 탓이다. 도심지에서 넘쳐나는 잉여인구가 터 잡은 곳이 산기슭과 계곡이다. 바로 산불이 가장 자주, 가장 맹렬하게 일어나는 곳이다. ‘활화산 중턱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한 지질학교수는 경고하지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오늘로 바람은 잦아들 것이다. 기온도 떨어질 것이다. 주말을 넘기며 TV카메라도 현장을 떠나고 한두주 사이 소방관들도 각자 집으로 돌아 갈 것이다. 집을 잃은 주민들의 ‘외로운 싸움’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이번에도 불길이 삼킨 주택은 1,200채에 달한다. 그들이 말리브의 부자이건, 간신히 내집을 마련했던 소시민이건 상관없이 그 속에 깃들였던 수천명의 평온한 일상과 꿈과 갖가지 추억이 잿더미에 묻혀버린 것이다.
요 며칠 저녁 해는 기이한 느낌이다. 잿빛 하늘의 붉은 해는 석양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LA를 동서남북 사방으로 둘러싸고 미친듯 타오르는 화염벽을 연상케 한다. 어느 쪽으로 눈을 돌려도 불길이 보일듯하고, TV 화면에서도 매캐한 연기냄새를 맡을듯한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10여년전 기억이 엊그제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길 건너 언덕위에 줄지어 섰던 집들이 한 나절 만에 눈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목격하며 느꼈던 공포감이 다시 엄습한다. 그 때 쓴 칼럼에 이런 말을 인용했었다. “이번 화재가 우리에게 준 하나의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매년 여름마다 되풀이 전해져온 가혹하지만 평범한 메시지다 : 이 일은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앞으로 10여년 후 우리는 이 메시지를 다시 기억하게 될까.
박 록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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