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여행사를 통해 난생 처음으로 서유럽 6개국을 다녀왔다. 작년에 인생의 또 한 번의 굵은 매듭을 지나며 여행을 계획했으나 그 꿈이 올해에야 이루어졌다. 늘 유럽을 가고 싶어 하던 아내가 그렇게 좋아하니 본인도 참으로 행복한 여행이었다. 단순히 “왔다, 보았다, 찍었다 (사진)”식의 여행이 싫어서 안내자의 말을 최대한 경청했다. 그러나 39만 여 점의 작품이 소장된 루브르 박물관을 두 시간만 들릴 정도로 바쁜 일정이라 보고들은 것을 벌써 많이 잊어버렸지만 간간이 느낀 생각의 조각들을 모아본다.
런던을 비롯해 유럽에서는 아주 드물게 좋은 날씨가 매일 계속되었고, 29명의 일행이 모두 건강하게, 도난이나 실종 등 아무 사고 없이 다녀왔으니 감사하다. 우연인지 일행 전원이 기독교인들이었는데 나폴리에서 로마로 향하던 우리 버스가 극적으로 충돌사고를 피한 후 안내자는 “아마도 여러분들 중에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시는 분이 타고 계신 것 같다”라고 말했는데, 버스만 타면 오랫동안 기도하시는 권사님을 비롯해 모두 각자 자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기대를 훨씬 넘는 좋은 여행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 맡은 안내자 외에 파리와 이태리에서는 현지 안내자가 여행을 도왔는데 그 해박한 지식과 애써 보살피는 성실성과 조금이라도 더 가르쳐 주려는 열정이 참 아름다웠다. 특히 로마의 안내자가 인상적이었는데, 음악가인 그는 로마의 역사와 예술을 깊이 연구하면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고백한다. Sistine Chapel에 소장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그림을 설명하면서 본인은 사후의 심판을 확실히 믿으며, 인간이 저지른 악행에는 반드시 보응이 따른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배웠노라고 강조한다. 그 그림에는 천국행과 지옥행의 명단이 적혀있는 작은 책과 큰 책이 있는데, 역시 천국 길은 좁고 험한 길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감히 교황의 권위와 교권에 대항하면 목숨이 위험한 그 시절에 못된 교황의 얼굴을 꼭 닮은 사람을 지옥행의 맨 밑에 그려 놓았으니 미켈란젤로의 용기와 신념이 놀랍기만 하다.
여러 곳을 다니면서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인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자연을 즐겼는가 하면 상상을 초월한 인간들의 위대한 작품인 그림, 조각, 건축물 등을 감상했다.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AD 79년에 베스비우스 화산 폭발로 잿더미에 거의 1,700년 동안 숨겨졌다가 발굴 작업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폼페이 시에는 놀랍게도 약 2,000년 전에 로마인들이 설치했던 상수도 관이 아직도 군데군데 보존되어 있다. 그 당시에 벌써 상수도, 하수도 시설이 설치되었고, 그 당시 만든 자갈로 된 마차길이 아직도 건재해서 연구해보니 자갈 밑에 서로 다른 흙으로 세 층의 기반을 다져서 만들었기 때문이라 하니 로마인들의 지혜에 놀랄 뿐이다. 그대로 보존된 임신한 여인의 죽은 모습, 고통 중에 뒤틀린 모습으로 죽어간 개의 모습 등을 통해 그때의 비애를 잠시나마 느끼며 인생의 허무를 절감케 했다. 움직이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적막으로 바뀌었을 터이니…
25세의 젊은 나이에 시작해 4년 반에 걸쳐 21미터 높이의 천장에 그린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있는 Sistine Chapel을 비롯해 온 시가 박물관 같은 로마 등 각 곳에 산재해 있는 말 할 수 없이 화려하고 웅장한 성당, 왕궁, 성 등을 관람했다. 특히 수백만의 통나무를 지중해 가운데 늪지에 깔아 만든 경이의 수상 도시 베니스에 아직도 건재한 성 마가 성당,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전, 국고가 바닥날 정도로 화려하게 지은 독일의 Neuschwanstein 성, 베드로가 순교한 자리에 세워진 성 베드로 성당 등이 인상적이었다. 꼭 그림같이 보이는 천장화, 벽화들이 대부분 금가루를 비롯해 각종 색깔로 채색한 조그만 조각들을 얇은 유리사이에 끼워 그 조각들을 붙여 만든 모자이크라니 참 믿기 어렵다. 아직까지도 잘 보존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다.
그런데 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과 건축물들이 그 당시의 교황이나 왕, 귀족들의 욕심과 질투, 시기와 경쟁의 산물인 것을 아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들 때문에 백성들은 심한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Ludwig 2세가 지은 Neuschwanstein 성을 비롯해 4개의 성들 때문에 국고가 바닥이 났는데, 그 화려한 성을 짓고 그 왕은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6개월 만에 사망했다 한다. 드높은 위용을 자랑했던 줄리어스 시저의 화장터는 잘 보존되어 있는데, 한 줌의 재가 된 그는 바람에 흩날려 그 무덤조차 없으니 새삼 이 세상 삶의 덧없는 유한성을 절감하며 부질없는 욕심을 버리자고 다짐하게 된다. 또한 인간의 영원한 삶을 믿는 신자이기에 C. S. Lewis의 “국가, 문화, 예술, 문명은 유한한 존재이므로 불멸의 인간의 삶에 비하면 모기의 삶처럼 하찮은 것이다”라는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로마의 안내자가 강조한 것처럼 여행을 통해 일상의 숨 가쁜 수레바퀴를 잠깐 멈추고 자기 자신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며 역사가 주는 교훈을 깨닫는 것이 여행의 큰 소득이라 생각된다.
특히 인생의 원숙기 이전의 젊은이들에게 되도록 많은 여행을 권하고 싶다. 또한 여행 전에 미리 필요한 역사와 문화를 공부한다면 더욱 값지고 많은 수확을 거두는 여행이 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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