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미학
샌프란시스코 대학교(University of San Francisco) 동아시아 철학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일본문화와 철학 강의를 듣고 나서 옆에 있던 중국인 대학원생이 “What a beautiful idea!” 라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사실, 미국내의 동아시아학과에서 철학의 원류는 중국의 유교, 노장사상 그리고 불교철학 등이다.
하지만 일본은 외부의 사상을 자신들의 문화에 접합 시키는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다. 많은 미국의 대학원 학생들은 다른 어떠한 강좌보다 이러한 일본철학, 문화강좌에 매료된다.
그 시간의 세미나 주제는 바로 일본의 ‘와비사비’라는 일본인의 미의식에 대한 소개였다. ‘와비사비’는 현세의 덧없이 사라지는 미에 대한 음미(the transient beauty of the physical world)에 근거한 일본 특유의 미적, 윤리적 감수성 (a traditional Japanese aesthetic and ethical sensibility)을 의미한다.
이는 세상사의 모든 것이 일시적이며 불완전하며 반드시 소멸한다는 다소 우울한 정서에 호소(melancholic appeal)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단순한 허무주의를 넘어 꾸밈없는 간소한 생활과 일상의 아름다움과 속세를 초월하려는 변증법적인 의지가 담겨있다. 이는 세상사의 일시성과 소멸성을 수용함으로써 좀더 높은 차원의 고결한 정신적인 해방을 추구하려는 은둔과 풍류의 정신으로 승화된다.
순간에 온 세상을 화려한 백색으로 치장하다 바로 일시적으로 소멸되는 벚꽃을 왜 일본인들이 그렇게 친숙하게 즐기는지 이해될 수 있다. 이는 일본 무사들의 인생관으로 투영되기도 한다.
일본인들의 미의식의 본바탕에는 인간의 실존적 한계와 고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긍하려는 도가적이며 불교적인 색채가 깔려있다. 자연과 인생에 대한 순간적인 아름다움과 일시성에 대한 깊은 상념과 애절함은 그들의 문학과 미학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모트프들 이다. 일본어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최대의 서정 시집인 만요슈(萬葉集)에는 일본인들의 정서가 잘 반영되어 있다.
세미나는 영어로 진행되어 원어의 맛을 살리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지만 여류 가인들의 섬세한 정서를 엿볼 수 있었다. 이들의 묘사하는 세계는 단순히 감각적이며 육감적인 세계가 아니라 미묘한 마음의 세계를 묘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몇 구절을 영어번역과 함께 소개해 본다.
당신은 오신다 해도 안 오실 때가 있는데
못 오시 겠다는데 기다리지 않으리
못 오신다 하는데……
Even if you say, ‘I come,’
At times you will not come,
Now you say: I will not come,’
Why should I look for your coming-
When you say you will not come!
(Vol. 4 poem 527)
그대 떠나시는 긴 여정을
끌어 당겨 접어서 태워 버릴
하늘이 불이라도 있었으면
O for a fire from heaven
To haul, fold and burn up
The long-stretched road you go!-
(Vol.15 poem 3724)
기다림과 이별의 애타는 여인의 마음을 간결하면서 연정의 격렬함을 직설적으로 진솔하게 묘사하고 있다. 두 번째 시는 ‘나보기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로 시작되는 김 소월님의 진달래 꽃의 정서와는 사뭇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일본미학의 특징은 추상성을 피하며 구체적이고 감성적인 측면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데 그 흡입력과 미적 세련됨이 있는 것 같다. 조락의 계절인 이 가을에 고국에서는 단풍놀이가 한창이다. 하지만 번거로운 자동차의 행렬과 번잡함을 피해 조용히 자연과 인생의 덧없음을 관조하며 몇 권의 시집과 함께 여행을 하고 싶은 계절이다.
<이종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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