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in you / 그대 안의 세상
최정화/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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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are not in the world;
the world is in you.
그대가 세상 속에 있는 게 아니다.
세상이 그대 안에 있다.
아침 강의를 마치고 화창한 가을 오후 캠퍼스를 걷습니다. 넘치는 미소와 재잘대는 수다로 범벅이 된 젊은이들이 옆을스칩니다. 간간이 마주치는 눈 인사에 마냥 정겨운 영혼들을 느낍니다. 학생회관 식당에 들려 간단히 점심[占心]하고 오피스로 돌아오는 길에 회관 옆 노천극장에서 경쾌한 플라멩고 기타 연주가 귀를 잡아 당깁니다. 잠시 여유를 내 한 구석 커다란 나무 등걸에 홀로 기댄 채 네 사람의 멋진 연주에 잠시 취해 봅니다.
내려 쪼이는 햇볕에 벗겨진 머리를 훌렁 드러낸 채 열심히 봉고를 두드리는 중년 사내. 훤칠한 키에 다소 말라 보이는 젊은 여인의 기타 반주가 솔로 기타를 황홀하게 퉁겨내는 콧수염 사내의 작달막한 키와 잘 어울립니다. 뒷전에서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중후한 베이스 기타 소리를 울려대는
거구의 뚱보 사내도 전체 그림의 꼭 필요한 구석을 멋지게메웁니다. 하늘 위로 떠 가는 거대한 흰 구름들 아래로 네 명의 뮤지션과 옹기종기 넓게 모여 앉은 사람들이 한 폭의 구상화를 그려 내고 있음에 찬탄하며 가을 오후를 만끽합니다.
바로 그 때, 어! 갑자기 송곳으로 도려내는 듯한 아찔한 통증이 왼 쪽 아래 어금니 밑을 관통합니다. 몇 차례 심하게 찌르는 아픔이 몰아치자 돌연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흰구름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토록 찬탄해마지 않던 모든 광경들이 한 순간에 속절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부리나케 자리를 떠 대학 보건소 치과 응급실에 들려 진통처방을 허겁지겁 목으로 넘깁니다.
불과 삼십 분 정도 사이에 천국과 지옥이 교차된 느낌이었습니다. 몇 년 전 보았던 어느 선[禪] 만화가 한 편 떠 올랐습니다. 어느 구십 노파가 늘 절간에 앉아 치성을 드리고 있습니다. 부처님 은덕으로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 늘 고마울 뿐입니다.
언제라도 부르시면 돌아 갈 준비가 되었으니 이 마음의 평화, 그저 감사합니다... 이렇게 길게 감사 기도를 드리는 중,높게 앉아 있던 금불상 뒤에 숨은 장난꾸러기 동자 하나가 짐짓 거룩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그래? 그렇담 오늘 그대를 데려가려하니 그리 알고 준비하도록 해라. 이 말에 화들짝 놀라 “아니, 오늘은 아닙니다!” 외치며 나 몰라라 줄행랑 치는 노파.
사랑과 평화, 실존과 자아실현 등을 뇌까리던 그 입 안의 어금니 하나에 조금 통증이 오자 온갖 형이상학이 그림자처럼 순간에 사라져 버렸음에 자괴합니다. 진통제 기운에 잠시 되찾은[?] 정신으로 아까 온 길을 되돌아 가는 길, … 만화의 구십 노인이 바로 나임을 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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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are not in the world;
the world is in you.
그대가 세상 속에 있는 게 아니다.
세상이 그대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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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누군가 내가 죽고 나면 해도 뜨지 않는 법!이라 큰 소리 치던 표정을 또 올립니다. 그 분의 객기에 놀란 듯 감전됐던 느낌도 되새김합니다. 해가 떠 오른 건 그걸 봐 주는 내가 있기에 떠 오를 뿐, 봐 주는 내가 없다면 해가 떠 오르던 내려 앉던 그건 해도 나도 상관할 바 아니라던 그 선객[禪客]의 당당함!
인식과 경험, 경험 이전의 선험, 그리고 선험과 경험을 모두 넘는 초험. 이런 머리 속 알음알이들이 한 순간 ‘한 소식’에 몽땅 사그라져 녹아 버리는 바로 ‘지금 여기’! 내가 보는 세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의 세상이 내 기분에 따라 이리 저리 휘둘릴 뿐이라는 실존의 깨달음이 명멸한 그 가을 오후.
그토록 황홀했던 환희심과 그토록 아찔했던 절대절명의 혼절감이 찰나에
교차되던 바로 그 화창한 가을 대낮. 세상이 바로 내 안에서 벌어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던 은총의 ‘Here and Now’ - 바로 ‘지금 여기’에 온 세상이 시공을 넘어 한꺼번에 벌어짐을 아직도 한 어금니로 물고 있는 중입니다.
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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