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깔문 껄껄문
‘분도’씨는 이민온지 15년째입니다. 이민 1세대로 50을 갓 넘은 평범한 아저씨입니다.
작은 아파트를 팔아 가방 깊숙이 넣어온 전재산을 이민 오자마자 사촌형에게 몽땅 날리고, 하루가 막막하여 밤 청소회사에 아는 사람을 통해서 들어갔습니다. 그것도 직장이라고 얼마 지나자 사장과 대판 싸움을 하고 뛰쳐나와, 밤이나 낮이나 형과 청소회사 사장을 향해 이를 갈았습니다.
분도씨는 오직 <돈>을 벌어야 복수를 하고, 이 땅에서 살길이라고 이를 악 물고, 돈이 생기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볐습니다. 남이야 어찌되었던 내가 이익을 보는 일이라면 체면도, 뭣도 없었습니다.
마침 한인타운에 문을 닫는 한 식당을 거저랄 정도에 인수를 하고, 아내와 함께 깜깜한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목숨을 걸고 매달렸습니다. 자식이 없는 것을 복으로 생각하면서…… 물론 돈이 아까워 술 담배는 전혀 않습니다.
첨에는 원 베드룸 이파트도 못 얻어 스튜디오에서 공동 화장실을 쓰고 살다가, 화장실과 방이 따로 있는 아파트로 옮기니 천국이 따로 없는 것 같았습니다.
분도씨는 식당을 첨 인수 했을때, ‘운동삼아~’ 라고 하면서 걸어서 출퇴근을 했지요. 자동차 페이먼트와 보험료, 개스값을 생각하면 이것도 돈을 버는 것이라는 계산에 마음이 뿌듯하기 까지 했습니다.
분도씨는 식당을 하면서도 돈이 아까워 삶은 달걀이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종업원들 밥 먹는 것이 아까워 꼭꼭 적어두었다가, 월급날 여지없이 밥값을 식당 차림표에서 50%씩 제하고는 했지요.
분도씨 내외의 지극한 정성에 식당은 날로 번창해서 좀 더 큰 식당으로 바꾸고, 또 좀 더 큰 식당으로 바꾸고…
세월이 흘러 분도씨는 지금은 타운에서 손꼽히는 그럴듯한 식당에, 버젓한 집에, 유럽산 자가용에. 남 부러울 것 없이 생활이 안정이 되어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걸 어쩝니까. 바다 물은 채울 수 있어도 사람 욕심은 채울 수 없다고 했듯이 분도씨 한테는 고칠수 없는 고질병이 하나 생기고 말았지요.
병 이름은 <욕심 병>.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어느 날 아침 세수를 하다가 화장실 거울을 보니, 부석한 얼굴에 흰머리가 어느새 머리의 삼분의 일은 덮여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종합진찰 무료티켓이 하나 있는 것을 생각하고 병원엘 갔습니다. 분도씨는 진찰을 하고. 피를 뽑고. 소변을 받고, 엑스레이를 찍고…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조직검사 할것이 있으니 내일 아침에 공복상태로 나오세요”
분도씨는 자리에 누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위가 쓰린 것도 같고, 간이 아픈 것도 같고, 심장 박동이 빨라진 것도 같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가 병원엘 갔습니다.
하얀 긴 드레스를 입은 간호사가 안내를 합니다.
어느 방에 멈추어서니 문 위에는 <암 병동>이라 쓰여 있습니다.
“아니 내가 왜 여기를??? 내가 암에 걸렸단 말입니까?”
하얀 긴 드레스가 등을 밀어 들어간 곳은 어둡고 조용한 방이었습니다.
“아닐꺼야. 암. 아니고 말고. 내가 왜 암에 걸려? 아! 조용한 이곳에서 조직검사를 하나보다”
분도씨는 중얼거리며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가슴은 방망이질합니다. 하얀 긴 드레스의 간호사가 의자하나를 내밀며 말합니다.
“이 방에는 문이 둘 있어요. 이쪽문은 <깔깔 문>이라고 병이 완쾌되어 나가는 문이고요. 저쪽문은 <껄껄 문>이라고 <…하지 말 ‘껄’. …안 했으면 좋았을 ‘껄’.>하는 문인데요, 껄껄문은 바로 영안실로 통하는 문이랍니다.”
분도씨는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들이 필름처럼 지나갑니다.
형이나 청소사장을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미워했던 일. 돈이 된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볐던 일. 영주권 없는 히스패닉이나 흑인들을 매몰차게 착취 했던 일. 한국 사람이라도 속일 수만 있으면 가차 없이 속였던 일. 주변의 경사는 물론, 특히 장례식에는 재수 없다고 퇴!퇴! 하고 멀리 했으며. 심지어 주일헌금이 아까워 성당에도 안 나갔던 일……
사랑이나 배려는 산 너머에 있는 것, 절대로 돈이 안 되는 것이라 이웃을 외면하고 나만 생각하고 살았던 일. 욕심이 뭉치고 뭉쳐 가슴속에서 <악마>라는 혹이 자라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일. 자린고비처럼 인색했던 일. 아무리,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은 <그 놈의 욕심병>.
분도씨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그냥 쏟아집니다. 무서워서도, 슬퍼서도 아닌 것 같습니다. 분도씨도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가슴을 후벼 파는 <후회>.
하얀 긴 드레스의 간호사 치맛자락을 붙들고 애원합니다.
“제발… 제발… ‘껄껄 문’으로만 나가지 않게 해주십쇼.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어떤게 행복한 삶의 길인지 조금은 보이는 것 같습니다. 희미하지만 가늘게 조금은 보입니다.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 한.번.만. 네? 네? 껄껄문은 싫어요.”
“여. 여보~ 무슨 잠꼬대를 이렇게 해요? 어머 이 땀 좀 봐!”
“엉??? 여기가 어디야? 내가 ‘깔깔 문’으로 나온거야???”
“도대체 당신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분도씨는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를 합니다. 모든 마음의 때를 씻어버립니다. 이때 <욕심병>도 함께 씻겨져 나갑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기적이란 이렇게 쉬운 것을… 마음만 뒤집으면 되는 것을……”
머리 속이 개운한 것이 세상에 새로 태어난 것 같습니다. 모두가 새롭습니다.
이민 와서 첨으로 차분하게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마침 그때 파아란 하늘에 누군가 띄웠는지 분홍색 풍선들이 대여섯개 바람을 타고 오르고 있었습니다. 따스한 봄 같은 분홍색 풍선들이…
이때 핸드폰이 울립니다.
“분도씨. 여기 병원인데요. 의사 선생님이 조직검사 안 해도 된답니다.”
분도씨는 자동차에 올라 시동을 겁니다.
“앗싸~~”
이 모습을 보고 아스팔트 틈새에 피어있던 키 작은 노오란 민들레가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초록 이파리들이 바람결에 박수를 보냅니다.
“화이 팅―분도씨!”
<정해정>
약력: 한국일보 문예공모 시 입상. 크리스찬 문협 시 입상, ‘문학세계’ 시 당선. 한국 ‘한글문학’ 시 당선. 미주중앙일보 소설 당선. 한국 ‘아동 문예 문학상’ 수상. 창작동화 ‘빛이 내리는 집’ 출간. 미주 아동문학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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