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가을을 만날 기대에 부풀어 시카고행 비행기를 탔다가 며칠 기록적 폭염에 시달린 후 되돌아 온 LA공항에서 뜻밖에 한 줄기 가을바람을 보았다. 에어컨 고장 난 사무실에서 숨막히는 여름을 보내며 그토록 기다렸던 첫 비가 지난 주말 내렸다고 했다. 비냄새, 흙냄새가 조금쯤 남아있는 듯, 달려드는 바람이 청결하고 상쾌했다. 그날이 추분 하루 뒤, 가을의 둘째 날이었다.
금년 가을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은 9월23일 오전 9시51분, 그 순간에 태양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적도를 가로질러 넘었다는 뜻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아침 해가 정동쪽에서 떠오르고 저녁 해가 정서쪽으로 지는 날, 낮과 밤이 길이가 같아 일출과 일몰의 사이가 정확히 12시간이다. 영어로는 equinox, ‘똑같은 밤’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왔다.
이날부터 밤이 길어진다. 어제 새벽 6시44분에 떠서 저녁 6시45분에 졌던 해가 오늘은 6시45분에 떠서 6시43분에 질것으로 예보되었다. 하루 만에 낮 시간이 3분이나 짧아진다. 매일 몇 분씩의 빛이 낮에서 사라져 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데 이같은 빛의 증발은 겨울이 시작되는 동지까지 앞으로 86일 동안 계속될 것이다.
미국의 가을은 따끈한 오트밀과 애플사이더의 달콤한 향기에서 시작된다. 겨울폭풍을 막아줄 창문에 덧문을 달고, 한 키 넘게 눈이 쌓이는 버펄로에선 눈 치울 제설장비도 손보아야 할 때다. 북동부로 단풍행렬이 이어지면, 록키산엔 이른 첫눈이 예보되고, 서리 내리는 밤 벽난로 장작 튀는 소리가 집집마다 들려오고…이처럼 가을 풍경이 그려지면 엔젤리노들은 좀 부러워진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남가주엔 계절이 없다. 5월 한달 자카란다가 거리를 온통 보랏빛으로 채울 때를 제외하곤 그날이 그날 같다. 겨울도 여름 같고 6월과 9월을 구별하기도 쉽지 않다. 봄과 가을을 따로 체험해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계절의 차이를 가르치기가 너무 힘들다는 초등학교 교사들의 하소연도 과장이 아니다. 이민후의 기억들은 온통 뒤죽박죽이라는 한인들도 적지 않다. 옛 친구를 만났던 것이 여름의 결혼식이었는지 겨울의 연말파티였는지…옷차림이 비슷해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남가주의 계절은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외길’처럼 때론 우리의 마음을 지치게 한다.
가을도 달력을 통해 온다. 휴가 갔던 사람들이 되돌아오고 새학기를 설명하는 백투스쿨나잇을 위해 시간을 쪼개내고 퇴근길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느끼며 아, 가을인가, 하다가 백화점이 온통 블랙과 오렌지 빛깔의 할로윈 상품으로 가득 찬 것을 보며 벌써 연말로 접어드는 구나, 마음이 급해진다.
우리는 모두 급하게 산다. 시간은 없고 할 일은 많아 매사에 서둘며 살다보면 애초에 서둘던 목적조차 잊어버린다. 빨리 쉬기위해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고 빨리 일어나기위해 빨리 쉰다. 서둘러 일 가기위해 빨리 일어나고 서둘러 집에 돌아오기 위해 급하게 일한다. 기를 쓰고 시간을 아끼는 것일 뿐 아껴둔 시간을 쓰기위한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는 잊어버리고 산다.
환절기는 이처럼 급하게 달리는 끝이 안보이는 길에서 숨을 고르게 해주는 스톱사인이 될 수 있다. 특히 공기가 투명해지는 가을 길목은 자신의 깊은 내부를 들여다보기엔 안성맞춤의 시간이다. 숨을 고르고 움켜쥐었던 일상의 끈을 조금 늦추어 보면 내면의 소리와 함께 보이지 않았던 자연의 변화도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가을은 그 어느 때보다 내밀한 계절이다.
시인들의 가을도 저마다 다르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의 ‘자화상’은 가을 속에 잠겨있고 ‘목마와 숙녀’를 남긴 박인환은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라고 암울한 시대 속에서 맞는 감성의 계절을 못 견디어 했다.
‘이제 나도 한잎의 낙엽으로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고 황동규는 ‘시월’에서 고백했고 ‘누구나 한번은/수의를 준비하는 가을입니다/살아온 날을 고마워하며/떠날 채비에 눈을 씻는 계절’이라고 이해인은 ‘가을 편지’를 통해 고개를 숙였다.
가을이란 단어는 들어있지 않아도 가을에 어울리는 시는 고은의 ‘삶’이다.
‘비록 우리가 몇 가지 가진 것 없어도/바람 한 점 없이/지는 나무 잎새의 모습을 바라 볼 일이다…우리가 기역 니은 아는 것 없어도/물이 왔다가 가는/저 오랜 고군산 썰물 때에 남아있을 일이다/젊은 아내여/여기서 사는 동안/우리가 무엇을 더 가지겠는가/…잎새 나서 지고 물도 차면 기우므로/우리도 그것들이 우리 따르듯 따라서/무정한 것 아닌 몸으로 살다 갈 일이다’
늦더위는 이번 주말이면 물러갈 것이다. 기상대도 본격적인 가을을 예보하고 있다. 일상에 파묻고 있던 머리를 들어 자신을 깊숙이 바라 볼 때다. 우리의 삶은 어차피 ‘가진 것 없고 아는 것 없어’ 조금씩 누추하고 조금씩 모자란다. 그러나 ‘나고 지는 잎새, 차고 기우는 물길’에서 자연의 섭리를 체득하고 욕심을 버리면 생을 향한 겸손한 자세와 관조하는 예지를 얻을 수 있다.
박 록 / 주 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