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한가위다. 힘겹게 살아가는 이민 생활에서 우리의 고유 명절인 추석이 올 때마다 고향 그리움이 새삼 더하여오고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추석은 설, 단오와 함께 3대 명절중의 하나이며 한가위는 중추절, 가위라고도 부른다. 추석날 밤에는 멀리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그리던 고향집에 모여 그 동안 지나온 이야기며 가족 간에 끈끈한 정을 나누면서 온밤을 뜬 눈으로 지새운다.
추석의 기원은 신라 유리왕 년에 나라 안 6부의 부녀자들을 반으로 가르고 그중에 각각 두 명의 왕녀를 우두머리로 삼았다. 7월 중순에 시작하여 마지막 8월에 한 달 동안 짠 베를 가지고 승부판정을 내렸다. 이긴 편에게 진편이 회소곡을 부르며 음식을 대접하고 가무를 줄기고 흥을 돋웠다 한다. 이를 ‘가베’라 칭하였는데 한가위의 ‘가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추석날 아침에는 온 가족이 모여 조상에 은공을 추모하면서 제사를 올린다.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생각 하면서 뿌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고취 시킨다. 그렇게 덥다가도 추석이 되면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마음이 스산해진다. 정 붙이고 살면 어디나 고향이라지만 이민자들은 명절 때마다 참을 수 없는 그리움으로 한바탕 속앓이를 하게 된다. 뜬금없이 생각나는 지나온 유년들이 생각나고 떨칠 수 없는 귀향에 꿈으로 마음에 갈기를 달고 훨훨 날아간다.
자맥질하다 모래톱에 긁힌 상처가 부적처럼 아직도 남아 있다. 앞 냇가에는 피라미나 모래모지들이 한가히 놀고 있을까, 꿈결같이 흐르는 강물과 파아란 하늘에 뭉게구름, 모래밭에서 뒹굴다 보면 어느새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노을이 서서히 물든다.
지천으로 널린 무밭에서 파랗게 오른 것을 뽑아 덥석 입에 물면 입안으로 녹아내리는 알딸한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강둑길을 냅다 달려와 언덕에 올라 돌아서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가 저녁밥을 짓는 신호를 보낸다. 석양이 깊어가고 잔잔히 다가오는 어스름, 어스름 속에서 방금 켜지기 시작하는 등불들이 향수와 같은 것에 쌓여가고 고향마을은 하나로 합쳐져 간다.
유년에 추석날 밤 어머니의 하얀 모습이 떠오른다. 둥근 달이 휘영청 밝다.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집 앞 동산에 올랐다. 중추의 보름달, 두둥실 높이 떠오른 만월은 밝다 못해 맑기까지 하다. 어머니는 손을 들어 달을 가리켰다. 나에게 달을 보여 주고 싶어서였다. 저 달 속에서 무한한 지혜를 배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는 아침나절 쑥을 찧고 송편을 다듬던 어머니의 자랑스런 손끝에서 머물고 있었다. 어머니는 멀리 손을 저어 달을 보게 하였건만 나는 송편을 예쁘게 빚은 손가락만 보고 달을 건성으로 넘겼다. 그 당시 나의 어린 눈망울 속에는 오직 달보다 더 신비스러운 어머니 손만이 다가왔다. 달은 경험 저만큼 그 밖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앎이 모두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을까. 어머니의 손가락이 없이는 그 만큼의 하늘 높이도 못 보았을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눈앞의 현실 속에서 저만큼 더 달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참 지혜를 번득이게 하였다.
고향을 등지고 떠나올 때 젖은 눈을 훔치시던 어머니를 뒤돌아보려다 돌 뿌리에 채여 넘어 졌다. 그 때의 아픔이 새삼 애잔한 통증으로 되살아난다. 추석에 빚은 송편도 먹고 싶고 된장을 우려 고운 토장국도 그리워진다. 어머니의 손이 가면 감칠맛이 나고 맛있고 힘이 솟고 탱탱히 기가 살고, 무엇이고 안 되는 일이 없다. 이제는 고왔던 손도 늙어버린 무같이 시들어 가지만 영원히 어머니는 고향과 같이 우리가슴에 살아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했다. 삭막한 이민 생활에 메말라버린 정서가 다시 살아나서 한가위 보름달만큼 채워졌으면 좋겠다. 올해도 힘들게 흘린 땀방울이 알차게 결실을 보아 정이 넘치는 풍요로움으로 추수하는 추석이면 좋겠다.
안주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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