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서만 유독 경쟁사 항공권 못 팔게 해
‘어린애 팔목 비틀기’식 횡포 그만두어야
시카고를 비롯한 미주 한인 이용객들에게는 가격을 조작해 부당하게 높은 바가지요금을 내게 하고, 현지 여행사들에게는 판매 수수료를 안주거나 심지어 대리점 관계를 끊어 경쟁사 항공권을 못 팔게 한다. 소비자들에게는 적정한 가격에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현지 여행업체들에게는 정당한 대가를 주고 예우를 다하며 지역사회에 수익을 환원해야함에도 공정거래법과 상도덕까지 무시, 자사의 이윤만을 쫓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시카고를 비롯한 미주 한인들이 ‘우리의 날개’라 믿고 애용해왔던 대한항공이다.”
한 여행업 관계자의 고발이다.
▲경쟁사 취항 때마다 불공정 행위
대한항공이 특히 중서부 한인 소비자들과 현지 여행업계를 얼마나 얕잡아(?) 보고 있는 지는 2년 전 말썽이 나서 한국 정부로부터 주의 권고까지 받았던 불공정 거래 논란에 대해 아직도 시정하지 않고 있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대한항공은 최근 미 법무부에 담합을 인정, 거액의 벌금을 납부키로 한 것처럼 관계 당국이 철저한 조사를 벌이거나 누군가 법적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한,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그냥 모른척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중소규모 여행사들을 상대로 경쟁사 항공권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던 것은 지난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시아나항공이 LA나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하는 시카고 노선을 처음 띄웠을 때, 대한항공은 아시아나와 계약을 체결하는 업체에게는 자사 항공권을 판매하지 못하게 해 대부분 굴복시켰다고 여러 시카고 여행사 대표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2005년 아시아나항공이 시카고 직항 노선을 처음으로 취항하자 대한항공의 부당한 견제는 또다시 시작됐다. 피해 여행업체들에 따르면 당시 대한항공은 기존 대리점 여행사들이 아시아나항공과도 대리점 계약을 맺으려 할 경우 항공권 판매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는 방식을 사용했다. 아시아나가 직항 노선을 취항하면 양 항공사의 표를 모두 판매하는 것이 시카고 여행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만큼, 몇몇 여행사는 한동안 양사 항공권을 판매했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2005년 12월 이들 여행사에게 자사 항공권 예약 컴퓨터 시스템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차단시켜버렸다는 것이 해당 업체들의 주장이다.
시카고 여행업체들은 대한항공과 정당하게 대리점 계약을 맺은 여행사가 유나이티드 에어라인(UA), JAL 같은 외국 항공사와 계약하는 것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 단지 아시아나항공과 판매 계약을 맺는다고 표를 못 팔게 예약 시스템을 닫아버리는 것은 지나친 횡포라고 분개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이 자유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미국 땅에 와서 이처럼 불공정 거래 행위를 하는 것 자체가 부당한 수준을 넘어 위법이라고 시카고 한인 여행업계는 지적하고 있다.
▲건교부 주의 권고 불구, 시정 안해
사태가 확산되자 2005년 12월 한국 건설교통부가 “시카고 지역에서 앞으로 불공정한 판매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차후 불공정 행위가 사실로 드러나면 국내법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후속 조치가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공문을 대한항공 한국 본사에 보내기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 2006년 1월, 공정거래위원회 독점감시팀이 “대한항공이 일부 여행업체에 자사 예약 시스템을 닫아버린 이유가 단지 해당업체가 아시아나의 표도 팔았기 때문인 것으로 판명되면 불공정 행위를 금지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3조 위반으로 법적 제재가 가해 질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며 자료 수집에 나서기도 했다.
현지 여행업체들이 당시 한국 정부 기관의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력, 모든 자료를 제출했거나 미국 법원에 대한항공을 반독점법(Anti-trust law) 위반으로 고소했으면 지금쯤 최종 결과가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1~2년 지나면 대한항공이 LA나 뉴욕 등 타지역처럼 시카고에서도 두 항공사의 표를 모두 팔 수 있게 하겠지’, ‘점심시간도 없이 부지런히 전화 받고 항공권 하나라도 더 팔아야 살아남는 상황에서, 언제 자료를 정리해 제출하며 대기업을 상대로 과연 이길 수 있을까?’라는 등의 회의론이 당시 여행업계에 인데다 대한항공에 끝까지 맞서는 업체가 나타나지 않아 결국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2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시카고에는 양 항공사의 동시 계약 판매처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항공을 취급하는 여행사는 암암리에 아시아나 대리점에서 표를 받아 팔고 있다. 결국 대한항공은 여행사들이 아시아나 취항으로 새로운 수입을 올려 소비자들을 위해 서비스나 가격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게 시장질서와 정의를 완전히 왜곡시키고 있는 셈이다.
시카고의 한 여행사 대표는 미국 땅에서 한국의 대표적 대기업이라 할 수 있는 대한항공의 시카고지점이 미국인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영업활동을 통해 현지 업자들의 경제적 권리까지 박탈하는 처사는 힘센 어른이 어린애 팔목을 비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분개했다. 그는 이어 “자사와 계약된 대리점을 압박해 다른 회사의 상품을 팔지 못하도록 막는 처사는 스스로 자사 영업행위를 위축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 늦기 전에 대한항공이 불공정한 거래 행위를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앞으로 미국 비자 면제국으로 최종 선정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인준되면 미국의 물류 중심지이자 중부지역 유수 대학들의 집결지인 시카고는 한국과의 인적, 물적 교류가 훨씬 왕성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런 차원에서 대한항공 시카고지점은 더 큰 원성과 제재를 당하기 전에 현지 여행업체들과 소비자들을 존중하는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이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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