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기자-산악회, 콜로라도 로키산맥 ‘롱스피크’ 등정기
■가자, 로키산맥으로!
때는 바야흐로 가을의 흔적이 조금씩 밟히는 8월31일. 시카고 한인산악회의 협조 아래 로키산맥 롱스피크(Long’s peak) 동반 취재를 떠났다. 롱스피크의 높이는 해발 14,250피트(4,345미터) 가량. 이름은 1820년 스티븐 H.롱(Stephen H. Long)이 발견한 데에 연유하며 로키산맥 중에서도 프런트산맥에 있는 봉우리다. 부근 일대는 1915년 로키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롱스피크는 공원 내 최고봉이다. 한국 백두산이 2,750미터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무지’ 높은 산이라는 것이 틀림없다. 예전에 산을 올랐던 경험이라고는 군대 훈련소에서 앞동산 뛰어오르기가 전부인 기자로선 걱정이 됐던 게 사실. 하지만 함께 가는 시카고 산악회원 대부분은 전문 산악인이 아닌 취미활동으로 등산을 즐기는 중장년층이고 그 중 상당수가 60세 이상이다. 그보다 어린 기자에게는 ‘젊음’이 있으니 크게 걱정할 것은 없지 않은가. 로키산맥을 오른다는 것은 미국에 있는 산악인이라면 누구라도 최소한 한 번 이상은 시도하는 실현 가능한 꿈이다. 시카고 한인 산악회 역시 마찬가지. 일리노이 주변에 산다운 산이 없어 타주 한인들로부터 ‘벌판’ 산악회가 아니냐는 놀림을 받는 시카고 산악인들로선 ‘간만에 제대로 된 산을 오른다’는 가슴 설레는 시도가 아닐 수 없다.
■8월31일, 순조로운 출발
출발일인 8월31일은 오전 1시30분에 기상했다. 미드웨이 공항에서 새벽 6시 비행기로 떠나야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서둘러야했다. 미리 싸놓은 짐을 챙기고 잊은 물건이 없는지 점검한 뒤 카풀을 위해 글렌뷰로 향했다. 기자를 포함 모두 5명이 한 팀으로 공항까지 움직이게 된다. 중간에 잠이 덜 깬 회원 덕분(?)에 조금 지체되긴 했지만 별탈없이 미드웨이 공항에 오전 4시30분까지 도착했다. 서둘러 체크인을 마치고 새벽 5시가 되니 산악회원 모두 대합실에 모였다. 이제 1시간 후면 출발이다. 시카고 시간으로 오전 8시, 현지 시각으로 7시 콜로라도 덴버 공항에 도착했다. 덴버 자체가 고원 지대다보니 시카고보다 온도도 낮고 약간 건조하다. 기자는 짐을 부치지 않고 직접 들고 타 다른 회원들이 짐을 찾을 때 대합실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이게 웬일. 주위에 아무도 없다. 홍보담당 지승호 씨에게 전화를 해보니 이미 모두 렌트카 업체로 이동했단다. 서둘러 찾아가려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서류봉투를 정류장에 두고 셔틀버스를 탔으니 찾아달라는 내용이다.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절로 찾아왔으니 전화위복이라고나 할까. 총 5대의 차를 렌트했다. 하나는 세단이고 나머지는 밴이다. 덴버 공항에서 숙영지를 향해 출발했다. 기자가 속한 차는 4호밴. 지승호 홍보와 공근식씨 가족 3명, 명완진씨가 한 팀이 됐다. 중간에 덴버 H마트내 한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오후 1시 다시 숙영지로 향했다. 산이 시작되는 초입부터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계속된다. 숲은 얼마 없는 바위산이다. 생각보다 등반이 힘들겠다는 느낌이 뇌리에 스친다. 한국 강원도의 대관령을 넘어가는 것 같다고 다들 한 마디씩 한다. 설상가상으로 비도 오기 시작한다. 텐트로 야영해야 하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하지만 1시간쯤 지난 뒤 금세 또 맑아진다. 산 날씨는 예측 불허라는데 정말 그렇다. 갑자기 무전기 없이 가던 2호차 소나타가 없어졌다. 조금 늦게 출발한다 싶더니 1호차를 놓치고 엉뚱한 길을 따라간 듯 했다. 기자가 속한 4호차가 뒤에 남아 계속 전화를 해보지만 공원 입구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수신불가가 된다. 한참을 기다리다 3시가 넘어 연락이 왔다. 도로 내려오라 한 뒤 기다리고 있으니 결국 4시가 다 돼서야 찾아왔다. 2호차와 함께 야영장인 글래시어 배신(Glacier Basin)으로 도착해 곧장 텐트를 치고 취사 준비를 시작했다. 첫날인 만큼 여행 피로도 풀 겸 불고기 등을 준비해 푸짐하게 먹었다.
오후 5시30분, 갑작스럽게 일정이 변경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원래는 1일 오전 롱스피크로 출발해 중간 지점인 볼더스필드(Boulders’ field)에서 텐트를 치고 다음날인 2일 롱스피크에 오른다는 계획이었지만 캠프장 예약을 깜빡(!)했다는 설명이다. 또 40~50대가 주축이 된 산악회인 만큼 체력적으로도 무리한 산행은 피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결국 6시에 박영남 산악회장이 체력 비축을 위한 모레 새벽 출발 및 당일치기 등반을 골자로 한 계획 수정을 공식 발표했다. 이어 회원들 사이에 고소 적응 및 길 찾기, 등하산 시간 등이 집중 토의됐다. 무리하지 말고 원래 중간 야영지로 삼았던 볼더스필드까지만 가도 성공이라는 의견이 대부분. 하지만 처음부터 공격적 등반계획을 짜자는 회원도 있었다. 토의를 마친 뒤엔 적당한 음주와 여흥이 뒤따랐다. 자기소개를 하면서 회원끼리 서먹함을 없앴다.
■9월1일, 고산지역 적응 및 사전답사
다음날인 1일 오전 6시, 딱딱한 텐트 바닥에서 자고 일어나니 등이 배긴다. 함께 텐트를 사용한 지승호 씨와 함께 일출을 찍으러갔다. 차를 타고 한참을 오르니 길 주변에서 사슴이 노닌다. 구름에 가려 일출은 못 찍었으나 아침 햇살에 비친 로키산맥의 전경이 아름답다. 사진을 찍으려 이리저리 움직이다보니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찬다. 본격적으로 등반해야 하는 내일이 걱정된다. 다시 캠프로 돌아와 아침을 대강 때우고 인근 베어레익으로 향했다. 이곳에 있는 에메랄드 레익으로 등반하기 위해서다. 말이 등반이지 1.8마일 거리에 경사도 별로 없는 길이다. 다만 이 지역이 8~9천 피트 정도로 워낙 높다보니 고도에 적응할 겸 관광도 할 겸 연습 삼아 온 산행이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을 길에 조금 숨이 차긴 했지만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전원 호수에 도착했다. 송어가 노니는 맑은 물과 파란 하늘, 뾰족이 솟은 봉우리. 아름다운 경치에 다들 감탄하기 바쁘다. 이윽고 삼삼오오 둘러앉아 이야기 꽃을 피운다. 내일도 이 정도라면 얼마든지 오르리라. 다시 산을 내려가 에스테이츠(Estates) 다운타운서 패스트푸드로 점심을 해결했다. ‘정크 푸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산행 덕분에 입맛이 살아나서인지 별다른 불만 없이 햄버거로 배를 채웠다. 30여분간 짧은 식사 시간이 끝난 뒤 에스테이츠 팍 정상에 있는 알파인 애스펙츠(Alpine Aspects)로 향했다. 산을 오르는 찻길은 구절양장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구불구불하다. 해발 1만2천 피트 높이의 전망대에 도착한 시간은 점심을 먹고 1시간 정도 지난 오후 2시. 차에서 내린 뒤 완만한, 그래서 오르기 쉽게 보이는 언덕으로 걸어갔다.
손을 뻗으면 잡힐 것만 같은 언덕 꼭대기인데 한참을 걸어도 도착하지 못했다. 맑은 날씨에 멀리 있는 것도 가깝게 보이는 착시 현상 때문만은 아니다. 문제는 고산증. 공기가 저지대보다 희박하기 때문에 열 걸음 정도 걷고 나면 그 자리에 서서 숨을 몰아쉬게 된다. 평소 수영 등으로 큰 폐활량을 자신하던 기자였지만 남들과 마찬가지로 가슴이 답답해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30분 정도 걷고 나니 정상이다. 주변은 이끼와 한해살이 풀들이 툰드라를 이루고 있을 뿐 나무는 찾아볼 수 없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식물의 한계생장선이 분명해진다더니 이런 곳에서는 나무조차 살아가기 힘든가보다. 함께 온 산악회원들은 주변 풍경을 감상하고 감탄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곳만 해도 경치가 이 정돈데 내일은 도대체 얼마나 멋있으려나. 궁금증과 함께 다음 목적지, 그러니까 내일 등반할 롱스피크 출발점인 레인저 스테이션으로 출발했다.
오후 4시, 사전답사를 위해 레인저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몇 시간 후 야간산행이 시작된다. 원래 계획은 새벽 2시30분 캠프장에서 출발, 새벽 3시 스테이션 도착이지만 현지 사정을 들어보니 그 전에 주차장이 가득 찬단다. 이에 조금 더 일찍 일어나기로 계획이 수정됐다. 답사를 마친 뒤 다운타운으로 되돌아가서 장을 보고 다음날 먹을 것을 준비했다. 기자는 맥도널드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산행 중 먹을 햄버거 2개와 초코렛, 에너지바를 샀다. 캠프에 돌아오니 오후 6시다. 얼른 씻고 일찍 잘 준비를 했다. 9시쯤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있는데 옆 캠프엔 교회에서 온 듯한 이들이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너무나 은혜로운 찬양이었지만 늦은 밤 산행을 떠나야 하는 기자에겐 솔직히 잠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9월2일, 정상을 향해 내딛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밖에서 두런두런 대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새벽 1시가 조금 지났다. 짐은 미리 싸뒀으니 옷만 챙겨 입으면 된다. 텐트 밖으로 나가보니 다들 꾸물거리지 않고 일어나 있다. 단체 활동 중 가장 필요한 덕목은 시간 엄수. 산악회원들은 만점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90점 이상은 받을 만하다.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도영란, 양은자씨 2명이 고산증을 이기지 못하고 배앓이와 구토 증세를 보였다. 이번 산행을 누구보다도 기대해온 도씨는 물론, 매일 30파운드 짐을 지고 산행 훈련을 했던 양씨로선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증세가 가볍지 않아 결국 출발 인원에서 제외됐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이들 둘은 아침이 밝은 뒤 셔틀버스를 타고 인근 라운드 레익과 밀스 레익을 찾아갔단다. 이 호수들은 로키산 국립공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다른 회원들이 바위산을 오르느라 고생하고 있을 때 여유만만하게 관광을 즐겼다니 화가 복이 된 셈이다. 최종적으로 25명이 준비를 완료하고 오전 1시30분 레인저 스테이션으로 출발했다. 도착 후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은 오전 2시. 원래 계획보다 1시간이 앞당겨졌다. 회원들마다 머리에 헤드램프를 끼고 힘차게 숲을 가로질러 올라간다. 1시간 정도 갔을까. 나무가 점차 줄어들면서 맑은 밤하늘이 보인다. 별이 무수히 박힌 검은 도화지 한가운데에 달이 모습을 반쯤 가린 채 고운 옆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은은하면서도 밝은 달빛에 전등은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갑자기 박영남 회장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한번 램프를 끄고 달빛에 의지해서 걸어봅시다. 박 회장의 제안으로 숲 끄트머리에서 램프를 끄고 달빛만으로 걷기 시작했다. 예전 가로등도 없는 시골길을 걸었을 때 이런 느낌을 받은 것 같다. 쏟아지는 별빛과 달빛을 머리에 받으면서 기자를 포함한 25명 산악회원들은 잠깐이었지만 오랜만의 낭만에 젖었다. 두 세 시간 정도 지났을까. 한동안 걷다보니 슬슬 뒤처지는 그룹이 생긴다. 선두는 느릿느릿 천천히 움직였지만 후미에 뒤처진 이들은 힘겨워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차가 두드러진다. 배도 고프다.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 넣어둔 햄버거를 꺼내 먹었다. 차가운 패티의 맛은 마치 물러터진 개밥을 먹는 듯 최악이었지만 몸이 지치지 않으려면 수시로 뭔가를 먹어둬야 했다. 오전 6시. 어느덧 선두그룹은 10명도 채 안될 정도로 줄어있다. 나머지는 어디쯤 와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날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30분 정도 계속 걸었더니 멀리 산 너머로 동이 트는 게 보인다. 평지를 찾아 휴식 겸 아침 식사 시간을 갖기로 했다. 하지만 산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그야말로 장관이어서 입에 뭔가를 넣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다. 산봉우리 위로 솟아오른 태양은 얼마 안 되는 구름을 가볍게 제치고 주변 모든 것을 붉게 물들였다. 아침 해를 뒤로 한 채 선두그룹은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1시간 정도 지나니 1차 목표인 볼더스필드(Boulders’ field)가 나왔다. 대략 5시간 만에 올라온 게다. 고산증으로 조금 숨이 차긴 했지만 견딜만했다. 이곳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집채만 한 바위로 이뤄진 엄청나게 넓은 바위밭(?)이다. 주변엔 바위 위에 만든 간이 화장실이 있고 멀리 2차 목표인 키홀(Key hole)이 보인다. 마지막 정상까지는 얼마나 남았을까. 지금처럼만 같으면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휴식 후 오전 7시30분쯤 기자는 박영남 회장과 함께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60세가 넘었어도 전혀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는 명완진씨와 전날 공격적 등반을 주장했던 김세진씨, 한국에서부터 명산을 자주 찾아다녔다는 공근식씨 가족 등은 이미 저만치 가고 없다. 이철현 부회장 내외와 김흥수 총무, 양해열 씨는 남아서 조금 더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나중에 들었지만 오전 8시20분 가장 고령인 이화복씨(67)를 마지막으로 25명 모두 볼더스필드까지 도착했다. 단 1명 예외 없이 전부 올라온 것은 시카고 한인 산악회 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다들 ‘쾌거’라고 평가할만하다.
최종 목적지 롱스피크(Long’s Peak)로 올라가는 중간 출발점인 키홀. 볼더스필드의 바위밭이 바로 밑까지 계속돼 있어 오르기가 만만찮다. 1시간 정도 바위와 바위 사이를 뛰어다니고 여의치 않으면 두 손을 써서 오르기를 반복한 결과 힘겹게 다다를 수 있었다. 밑을 내려다보니 아까 지나쳐온 화장실이 까마득하다. 키홀을 오르기 직전엔 쉘터가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산 날씨와 이 때 치는 벼락을 피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비좁기 짝이 없고 내부에 아무 것도 없어서 날씨가 오늘처럼 맑으면 별무소용이다. 키홀 바로 밑 바위에 김세진 씨와 명완진 씨가 앉아 있다. 키홀에 오르면 주변을 둘러보고 조금 쉬었다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키홀에서부터 정상인 롱스피크까지 가는 길이 없다. 키홀 자체도 평평한 분지가 아니라 좁은 바위 끝일 뿐, 사방으로 낭떠러지 같은 벼랑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걸 정말 가야하나 고민하는 사이, 박영남 회장이 앞장서고 먼저 와 있던 김세진 씨가 쫓아간다. 명완진 씨는 가지 않을 모양이다. 일단 ‘취재’는 해야겠기에 기자도 따라나섰다. 절벽 곳곳의 움푹 팬 곳을 디뎌 이동했다. 바로 옆 오른쪽은 낭떠러지다. 앞에 가는 사람들 모두 왼쪽 절벽에 딱 붙어서 가고 있다. 다들 무섭긴 무서운가보다. 절벽을 타고 가는 과정은 길고 힘겹다. 몇 걸음 가지 못해 숨이 차고 자칫 발을 헛딛으면 큰 사고가 날 것 같아 몸에 힘이 과하게 들어간다. 1시간 정도 오르다보니 마침내 낭떠러지 절벽 지대가 끝났다. 먼저 올라간 박 회장의 도움으로 키보다 더 큰 바위 위에 서니 이번엔 까마득히 높은 바위 폭포(?)가 나온다. 바위 하나에 사람 하나씩 매달려 있는 모습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멀다. 갑자기 왠지 모를 억울함이 치솟는다.
■마침내 롱스피크 정상 등정
이건 산행이 아니라 아예 암벽 등반 수준인데요?
약간은 불만섞인 물음에 앞서 가던 박 회장이 달랜다. 저것만 넘어가면 거의 다 온 겁니다.
’거의 다’ 온 거라면 저게 끝이 아니라 뭔가가 또 있다는 말이 아닌가. 황당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여기서 뒤따라온 이철현 부회장과 양혜열씨가 합류했다. 예전부터 산악회 활동을 해서인지 이들의 몸놀림은 가벼워 보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철현씨는 한국에서도 산악회 활동을 하면서 암벽등반만 3년 이상 해온 ‘고수’다. 당연한 결과로 우리를 앞질러 올라갔다. 다시 1시간 정도를 고산증과 싸우며 기어 올라갔다. 숨 쉬기가 힘든 것에 그치지 않고 머리가 아프고 멍해진다. 다리에도 힘이 안 들어간다. 악전고투가 따로 없다. 조금 멀리 뒤따라오는 김세진씨가 보인다. 고산증이 심한데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올라오는 모습, 보기 좋다.
마침내 ‘바위 폭포’를 오른 뒤 밑을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었다. 절벽이나 다름없어 사람들의 머리 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기를 다시 어떻게 내려갈지 덜컥 겁이 난다. 뒤돌아서니 드디어 롱스피크가 보인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선 마지막 벼랑을 통과해야 한다. 30분 정도면 오를 것도 같은데 문제는 숨쉬기다. 갈수록 숨이 차는 간격이 짧아지면서 몸의 힘이 점점 빠진다. 벼랑 초입에 공근식씨가 앉아 있다.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뭘 하고 있는 걸까. 같이 올라가자는 기자의 권유에 공씨는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상이나 여기나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올라가지 않은 것이라며 지금 정상에 오르면 나중에 다시 올 명분이 없어진다고 했다. 알 듯 모를 듯 알쏭달쏭한 얘기다. 멍한 머리와 무거운 다리를 끌고 한 걸음씩 나아가기를 1시간여. 오후 12시30분경 드디어 롱스피크 정상에 올랐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로 지쳤지만 로키산맥의 웅장함을 아래로 굽어볼 수 있다는 건 평생 흔치 않을 기회일 터. 멀리 펼쳐진 산맥과 가까이에 맴도는 구름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총인원 27명 중 야간산행 출발 인원이 25명. 그 중에서 산악회 소속 6명과 기자 도합 7명이 로키산 국립공원에서 제일 높고 가장 경관이 볼만하다는 롱스피크 봉우리를 정복했다. 높이는 해발 4,350미터, 1만4천피트. 출발시각인 오전 2시로부터 10시간30분만에 오른 고지다. 이미 정상에 와 있던 이들이 축하 인사를 건넨다. 어떤 이는 악수를 청하며 이것은 당신의 개인적인 영광(glory)이라고 했다. ‘증명’ 사진을 찍고 샌드위치를 나눠 먹으니 오후 1시다. 이제 내려가야 한다. 앞서 와있던 이 부회장과 양혜열씨, 공정희-병곤씨 모자는 먼저 내려갔다. 하지만 너다섯 걸음만 걸어도 숨이 가빠오고 다리에 힘이 없어진다. 머리도 아프고 움직이기도 싫다.
순간 갑자기 날씨가 나빠지면서 우박이 내린다. 당황스럽다. 박영남 회장은 하산을 재촉하고 있다. 정상에 남은 이는 기자와 김세진씨 뿐. 둘다 체력이 저하된 상태지만 우박이 내리는데 계속 앉아있을 수는 없다. 내려가자. 하지만 비를 맞은 바위는 평소보다 훨씬 미끄럽다. 오르는 것만큼 내려가는 것도 시간과 체력이 많이 소모된다. 힘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온몸이 젖으니 체력이 급속도로 고갈된다. 바위를 내려갈 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다리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기 시작했다.
■체력소진 하산길 고행
박 회장을 따라 2시간 가량 내려가다보니 다시 키홀이 나왔다. 어느덧 멀리 뒤에 있어 보이지 않는 김세진 씨처럼 기자 역시 남은 체력이 얼마 없다. 도대체 여길 왜 올라왔을까. 후회가 막심하다. 박 회장은 먼저 내려가고 기자는 쉘터에서 잠깐 쉬면서 김세진씨를 기다리기로 했다. 30분 정도 지나니 김씨가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키홀까지 내려왔다. 쉘터에서 각자 우의를 입었다. 조금 따뜻해진다. 볼더스필드까지의 바위밭 구릉지대로 또 내려갔다.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오후 4시30분경, 볼더스필드에 다시 내려왔다. 김 씨는 지쳐서 잘 걷지 못한다. 고산증에 우박을 맞아 몸살이 난 듯하다. 눈을 감다시피 하면서 걷는다. 기자도 발목을 접질렸지만 심하진 않다. 출발점인 레인저 스테이션까진 얼마나 남았을까. 하산은 올라온 시간보다 보통 절반 이상 단축되니 3~4시간 정도면 될 것 같다. 일단 날씨가 다시 개서 따뜻한 햇살에 체온이 조금 올라 다행이다. 산 날씨는 변화무쌍하다는 걸 절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뒤처진 것에 큰 걱정을 하진 않았다. 단지 늦게 내려가 저녁밥을 못먹으면 어쩌나 불안하긴 하다. 산악회에선 산행이 있는 오늘 저녁 단체 차원에서 푸짐한 식사를 마련한다고 했다. 김세진 씨와 서로 ‘조금만 더 빨리 갑시다’ 독려했다.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발은 빠르게 움직여주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걷는 속도는 느려지는데 어느덧 해가 진다. 날이 어두워지니 덩달아 기온도 쌀쌀해졌다. 아직 처음 출발했던 숲은 보이지도 않고 마음이 조금씩 급해진다. 어둠이 깔리고도 한참이 지난 오후 10시10분. 처음 출발했던 숲에는 일단 들어왔지만 김세진씨는 더 이상 걷지 못했다. 레인저 스테이션까지는 길어봤자 2마일인데 고지를 눈앞에 두고 체력이 완전히 바닥난 게다. 할 수 없이 기자가 먼저 내려가서 사람을 불러오기로 했다. 발걸음을 서둘러 혼자 떠났다. 숲의 길이는 총 2.5마일. 한참을 걸었으니 남은 거리는 약 0.5마일 정도일까. 하지만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똑같이 생긴 코너가 3번이나 나오고 길을 빙빙 도는 것만 같다. 문득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걸까 겁이 났다. 30분을 뛰다시피 내려오니 0.5마일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온다. 반가움보다는 슬며시 화가 난다. 그보다 훨씬 많이 걸어온 것 같은데 왜 이것밖에 안왔다는 건지 이상하다. 지친 상태에서 내려오기에 체감하는 거리는 실제의 2배, 아니 3배 이상이다. 30여분이 지나 드디어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미리 연락을 받은 레인저 측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혹시 춥지는 않은지 아픈 곳은 없는지를 물은 뒤 김세진씨의 인상착의와 위치를 묻고 대원 2명을 보내 데려오게 했다. 알고 보니 정확한 위치 설명 없을 경우 레인저는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움직이지 않는단다. 마침 산악회 사람들이 달려와서 일단 기자만 먼저 캠프로 귀환했다. 돌아와 산악회원들이 끓여준 라면을 먹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너무 늦게 내려온 관계로 ‘푸짐한’ 저녁 식사는 없었다.
■9월3일,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
마지막 날인 9월3일 오전 8시30분. 사람들은 벌써 일어나 있는 듯하다. 나가보니 김세진 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건강해 보인다. 다행이다. 뒷정리를 마친 뒤 오전 10시 관광차 조지타운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연휴의 마지막 날인 만큼 고속도로가 정체돼 그대로 일정을 강행할 경우 비행기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 것 같다. 결국 중간에 차를 돌려 덴버 다운타운에 있는 한식당에서 현지 거주하는 이화복씨 아들의 한턱으로 점심 겸 저녁 식사를 해결했다. 며칠 만에 접한 제대로 된 한정식이 꿀맛이다. 배부르게 먹고나니 고생했던 기억은 사라지고 일상의 조그만 행복감에 도취된다. 정신없이 보낸 3박4일의 피로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은 롱스피크 등정의 어려움도 어느 샌가 아득해져만 간다. 봉윤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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