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한 고도에 깃든 또다른 낭만 하나 다뉴브는 흐른다’
강변 서민들의 여유로움 속
섬뜩한 군사박물관, 대조적
거리 악사 기타연주에 만감
크로아티아 최고의 관광도시 두브로브니크는 한국 부산과 비슷하다. 많은 선박이 뱃전에 묶여있으며 많은 여행객이 활보하는 휴양지라 음식 값도 비싼 것을 느꼈다. 욕심으론 이틀 정도 머무르고 싶었으나 남편 성화에 하루 밤만 자고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로 떠나기 위해 아침 6시경께 버스 정류장에 나갔다.
두브로브니크에서 몬테니그로를 지나 소피아로 가면 거리상 굉장히 좋을 텐데 교통편이 없단다. 그래서 버스와 밤기차를 타고 사라예보에 아침 도착 예정으로 떠났다. 달리는 기차 밖은 한국의 50년대를 연상케 하는 구경거리의 연속이었다. 판잣집만도 못한 녹슬고 부스러진 양철지붕 위에 고물 자동차 타이어가 얹어있고 더러는 사람이 살지 않는 허물어진 집도 군데군데 있었다. 또한 험한 산악지대라 평야는 별로 보이지 않고 험한 바위 사이에 억센 나무들이 즐비했다.
아침 기차역에 도착하니 한가한 역전엔 별로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수도의 역전이라 퀴퀴한 냄새와 빛바랜 진하고 무거운 초록색이 이곳을 더 스산하고 을씨년스럽게 지나가는 여행객을 맞았다. 숙소를 정해야 하기에 여행자 안내소를 찾으니 집시 같은 아주머니가 잘 곳이 있단다. 35유로에 우리 부부가 단독으로 잘 수 있는데 25유로에 하려면 자기와 3명이 자면 된단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서로 도움이 되겠다 싶었는데 남편이 그 여인을 못 믿었던지 안 하겠단다.
이곳 역시 산간지역 소도시인지라 5스타 호텔은 보이지 않아서 여인숙 정도의 숙소를 찾았다.
한 유스호스텔 직원의 안내로 20년 된 낡은 승용차를 타고 높은 산에 위치한 호스텔에 도착했다. 3층 높이의 다락방을 배당 받았는데 바로 지붕 밑의 방이 방한장치가 없는 관계로 새벽엔 추웠다. 작은 도시이기에 동네 아래로 나와도 시장 나온 사람들과 비닐 백에 조금씩 먹거리를 사들고 언덕길을 오르는 모습에서 이곳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엿볼 수 있었다. 저녁 무렵엔 어느 종교인지는 모르지만 확성기에 대고 청량한 남자 목소리가 비에 젖은 온 동네를 깨워주는 듯 했다. 신문지상에서 떠들썩했던 사라예보를 방문했으나 그들의 삶은 고생스러워 보였다.
소피아에 도착했다. 듣던 대로 낙후된 곳이었으나 다행히 이곳 유스호스텔은 깨끗한 침대보와 4층 건물의 시원한 공기가 전날의 고생을 잊게 해주었다. 다음날 시내에서 3시간 거리의 릴라 사원에 있는 정교회에 다서 870년된 교회 건물과 아이콘을 구경했다. 몇 백년이 지난 건물과 시설의 보존, 건축예술 자료들이 상상을 초월했다. 다음 행선지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로 떠나려는데 호스텔 매니저의 소개로 부쿠레슈티에서 오셨다는 박 목사님(침례교회)을 만나게 되어 저녁에 같은 기차로 떠났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칼레메그단 공원. 유적지.
여행 3주째. 부쿠레슈티에 아침 6시에 도착하니 조금 끈적이는 정도의 무더위가 느껴진다. 루마니아는 따로 여행책자를 사기가 아까워서 현지에서 부닥치기로 마음먹었는데 목사님을 만난 것이다. 기차역에서 필요하면 전화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무작정 전철을 타고 시내로 들어갔으나 상가 문들이 거의 닫혀 있다. 알고 보니 토요일이었다. 할 수 없이 맥도널드에서 아침 겸 커피를 마시면서 10시까지 기다렸다. 첫날은 4스타 정도의 호텔을 60유로에 얻어 짐을 풀고 오후에 완전 휴식했다.
다음날은 호스텔로 옮기려고 했는데 박 목사님께 인사차 전화한 것이 그 집으로 가게 되어 그 곳서 3일 묵게 되었다.
부쿠레슈티의 인민궁전(5,000개의 방과 1,000개 홀)은 차우셰스쿠가 김일성 궁전을 보고 반해서 똑같이 지은 것으로 1984년 시작해 94년 끝났으나 아직도 10%는 미완성이다. 또한 시외에 있는 소금광산이 유명하다고 하여 택시를 타고 갔다. 1938년부터 70년까지 돌소금을 팠다는 큰 창고 같은 소금 벽이 꼭 대리석 같은 색깔과 모양이 너무나 신기한 자연의 명물이었다. 이곳 소금기 특유의 공기에 오래 있으면 류머티즘이 치료된다고 했다.
여행 27일째.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도착. 관광유치를 활성화하는 곳이기에 역내 여행자 안내원부터 친절한 미소로 가르쳐준다. 관광지에서 친절한 미소를 보이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기에 조금만 친절히 해줘도 배로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비교적 낡았지만 깨끗하고 밝은 숙소를 정해 짐을 풀고 시내구경을 시작했다. 거리에 큰 건물 2개가 폭탄 맞은 양 방치돼 있다. 경찰의 이야기로는 9년 전 나토전쟁 때 파괴된 것을 고치지 않고 있는데 독일인이 살 예정이란다. 그 거리를 2~3마일 정도 계속 걸으니 모든 정부 청사와 외국대사관들이 줄지어 있으며 각 대사관 정문 앞에 경찰이 서있다. 또한 정부 청사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다.
벨로그라드의 아침식사는 조금 특이하여 호스텔에서 식권을 주면 옆의 식당에서 빵을 먹을 수 있다. 계란프라이 1개, 흰빵 1개, 그리고 딸기잼이 전부다. 커피는 한 잔에 1달러 정도. 그런데 너무 써서 마시지를 못했더니 ‘화이트 커피’라는 것을 준다. 우유에 커피를 조금 탄 것이었다. 기름진 프라이에 빵과 화이트 커피 2잔을 마시고 배가 편할 지 걱정됐으나 여행 중 배가 든든해야 하기에 다 먹고 칼레메그단 공원으로 전철과 버스를 타고 갔다.
이곳 인구가 2억이라는데 과연 수도다웠고 서유럽에서 동유럽까지 나누어 쓰는 다뉴브강 양옆으로 서민들의 바쁜 생활이 역력히 드러나 보였다. 공원엔 어느 곳이나 노인들이 손자손녀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왔으며 엄마들도 아이들을 놀리기 위해 나온 모습이 보였다.
이 공원은 13세기 터키 점령 하에 있다가 17세기에는 형무소로 사용됐다는데 현재는 군사박물관으로 소련제 장갑차, 포탄 등 전쟁무기가 진열돼 있으며 곳곳에 감시자가 서 있었다. 옛날 성같이 흙벽돌과 돌로 쌓은 높은 담이 많이 있고 계속 보수를 하고 있었다.
그곳을 떠나 조그만 성문 안으로 들어가니 젊은 청년이 기타 연주를 하면서 돈을 벌고 있었다. 이곳서 명장 클래식 기타연주자 세고비아가 나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도록 이 청년도 아름다운 연주를 하고 있었다.
또 다른 구역으로 돌아가니 다뉴브 강이 바로 코앞에 다리를 가로 지르고 비교적 깨끗한 강물이 시원한 바람과 함께 더위를 씻어준다. 다뉴브강을 끼고 세계 각국의 명지와 명품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어서 사진으로 전 세계를 구경하는 시간도 가졌다.
여행 28일째. 아쉬운 마음과 집에 대한 그리움을 한 아름 안고 파리 드골 공항을 거쳐 LAX로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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