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금’이라고 누가 말했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세상에서 말로 인하여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것보다는 침묵하는 것이 훨씬 낫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언제였던가 우리가 금같은 침묵으로 가치를 올렸을 때가. 침묵에도 종류가 있고, 매너가 있다.
다른 사람의 비밀은 폭로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들이 지키는 고상한 품위이다. 그러다 보니 파생되는 문제도 있다. 예를 들면 어느 날 왕창 ‘계’가 깨어진다. 누구인가 야반도주를 한 다음에는 온갖 소문이 난무한다. 전에는 잠잠하던 사람들이 사실은 이러저러하였다고 비로소 진실을 드러낸다. 가까운 사람들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가짜 학위’라는 비밀같지도 않은 비밀이 잘도 지켜진다. 그리고 몇십 년이 지나간 어느 날 그 사실이 여러 신문에 오르내린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어떤 아이가 집단으로 괴롭힘을 받는다. 반장을 위시한 모든 학급의 아이들이 알고 있어도 부모들도 모르게 오랫동안 왕따는 계속 된다. 친구들이 알고도 모른 체 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저지르는 비행에 대해서 말해야 좋을지 아닐지 분간할 수 없어서 ‘사생활 보호법’이 생긴 것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 보호법을 지키다보니, 알았더라면 방지가 되었으리라고 믿고 싶은 범죄가 발생하기도 한다.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이웃에 살고 있는데 나중에 그 사람에 의해서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면 문제는 자못 심각해진다. 지금 버지니아에서는 33명의 생명을 쏘았던 조승희가 일으킨 사건의 초점이 미연에 방지할 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모아지고 있다. 그 논쟁 중의 하나는 조승희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 특수 관리되었던 학생이라는 사실을 대학에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앞으로 저지를지도 모르는 죄를 미리 안다는 일도 어렵거니와, 개과천선을 하는 사람도 있어서 같은 죄를 또 범하리라고 장담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알고도 모르는 척 지나가기도 하고,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니 잠자코 있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지 않고 지날 수는 없어서 회사 혹은 단체, 심지어는 국가에서 일어나는 비행을 폭로하는 용감한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비행이 진행형일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되어질 것이 분명한 경우이다. 비행이 폭로되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도 증인과 물증을 찾느라고 많은 시간이 걸린다. 혹시라도 그 폭로 자체에 결함이 있다면 혼란이 가중될 뿐만이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알면서도 입을 다무는 경우가 많은데, 남의 일에 나서는 것보다는 침묵하는 대중 속으로 숨어드는 일이 훨씬 더 쉽기 때문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그것은 말없이 군중 속에 숨어서 자신의 얼굴을 감추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가 불의한 일로 죄를 짓지 않았음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침묵’이라는 단어에 내재한 비밀스러움 때문일까. 그것에는 신비한 힘이 있는 듯 하다. ‘말 없는 그 사람’의 매력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아가씨도 있고, 결혼한 후에는 ‘말 없는 그 매력’이 사람의 복장을 태운다. 경우에 따라서는 침묵이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면서 상대편을 굴복시키기도 하고, 또 오랜 침묵은 고뇌하는 지성으로 보일 때도 있으며, 성찰과 깊은 깨달음의 표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조용함’ 이야말로 세파에 휘둘리어 피곤한 우리의 정신을 투명하게 만들어 주는 청량제가 아닐 것인가. 맑은 마음으로 정리하는 생각은 우리에게 반성의 시간을 주기도 한다.
당신과 내가 말을 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마음이 통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우리들의 깊고 깊은 이해의 숲을 함께 거닐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침묵은 금’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 주위에 가득한 소음 속에서도 내가 만드는 정적의 공간을 찾아가자. 말도 많은 이 세상에서 누가 알랴. 당신과 나 사이에 놓여있는 침묵의 빛, 그 반짝이는 금빛의 오솔길을 발견하는 날이 있을지. 그러한 날들이 올 것을 기대해 본다. 침묵의 수준을 높이고 때와 장소에 알맞게 말하는 기교를 배우기 위해서라도, 오늘은 조용히 사색의 시간을 가져본다. 고요함을 음미해 본다. 그리고....... 침묵의 의미를 정리해 본다.
moonja.lim@yahoo.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