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대통령 한사람을 제외하곤 모두가 원했던 대로 앨버토 곤잘레스 법무장관이 사표를 제출했다. 한사람을 제외하곤 일제히 환영을 표시한다. 마침내 또하나 목표를 달성한 민주당의 만족은 말할 것도 없고 공화당까지 노골적으로 안도의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진작 물러났어야 했다’ ‘동정의 여지가 없는 퇴장이다’에서부터 ‘후임은 곤잘레스와 정반대되는 사람을 택하라’에 이르기까지 미디어의 논조도 ‘안티’ 일색이다.
‘처음부터 그는 적임자가 아니었다’고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진보성향 신문들은 지적한다. 사실 ‘법무장관’ 곤잘레스는 부시의 정실인사라는 ‘원죄’를 진채 출발했었다. ‘충성’과 ‘친분’을 중요시하는 부시의 정실인사의 대표적 케이스라는 비난이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게다가 법무장관직은 다른 각료보다 조금 더 민감하다. 기대치가 여간 높은 게 아니다. 행정부의 양심으로 대통령이 윤리적 도덕적 기준을 정립하는데 선도역할을 해야한다. 대통령의 수석 법률고문이면서 11만명 공무원 조직을 관리하는 매니저이기도 하다. 기본의무는 민권수호에서 기업합병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정책결정에 관한 대통령의 명령수행에서 시작된다. 법과 정책의 한계가 모호해지는 민권법 집행 등 민감한 분야에서 대통령의 대변자가 되는 동시에 당이나 정치적 편향을 지양하고 특수범죄 케이스에선 절대 중립을 지켜야 한다. 때로는 직속 보스인 대통령에게도 입에 쓴 충고를 단호히 던질 수 있는 자세 또한 갖추어야 한다…
이래서 어떤 각료보다 법무장관 임명엔 대통령의 정실인사가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법무장관 기용에 정실인사를 삼가한 미국 대통령은 드물었다. 대통령의 ‘충성스런 친구’가 법무장관에 임명된 것은 곤잘레스가 처음이 아니며 마지막도 결코 아닐 것이란 뜻이다.
레이건은 자신의 그림자같은 친구 에드윈 미즈를, 카터는 오랜 고향친구 그리핀 벨을 각각 법무로 택했고 닉슨은 자신의 개인변호사이자 캠페인 매니저였던 존 미첼을 임명했으며 케네디도 동생 로버트 케네디를 들어 앉혔고 아이젠하워 역시 캠페인 매니저 허버트 브라우넬을 등용했었다.
워터게이트사건으로 기소당한 미첼 등 실패인선도 있었지만 브라우넬이나 케네디 같은 성공케이스도 적지 않았다. 특히 법조계 연륜도 거의 없는 35세 로버트 케네디는 정치측근의 탈세혐의 적발이나 민권법 위반소송에 적극 앞장서며 법무부를 자주적으로 운영해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법무장관으로 꼽히는 사람은 포드행정부의 에드워드 레비다. 당시 명문 시카고대학의 총장으로 저명한 법학자인 레비를 발탁하며 포드는 워터게이트로 신뢰도가 추락한 법무부의 회생을 당부했고 인격과 실력과 리더십을 겸비한데 더해 정치색까지 없었던 레비는 그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해냈다.
법무성에선 정치와 법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면서 공존하고 있다. 장관부터 연방검사 전원이 대통령에 의해 채용되고 해고된다. 그러나 일단 등용된 후엔 불편부당한 법의 수행자가 되어야 한다. 백악관의 정치에 휘둘리지 않도록 정치색을 지우며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곤잘레스 사임을 둘러싸고도 ‘정치적’ 공방이 뜨겁다. 민주당에선 곤잘레스가 백악관의 지시에 따라 법무부를 ‘정치화’시키며 기강을 무너뜨렸다고 비난하고 부시는 죄없는 곤잘레스가 의회의 ‘정치게임’에 희생당했다고 분개하며 공화당에선 능력도 경력도 못미치는 곤잘레스가 ‘정치적’으로 미숙해 별것아닌 연방검사 해고를 스캔들로 비화시켰다고 질책한다.
2년반전 곤잘레스의 인준청문회에서 의원들이 가장 집중적으로 추궁했던 것은 그가 부시의 변호사에서 국가의 변호사로 확실하게 탈바꿈 할 수 있을까였다. 부시에게서 독립할 수 있을까, 법무부를 정치화시켜 백악관의 지부로 만들려는 것은 아닐까 등에 대한 의구심이었을 것이다.
역대 법무장관들은 이상형인 레비까지는 못미쳤어도 나름대로 자주성 확보를 위해 고심하고 노력해왔다. 미첼의 후임인 엘리옷 리처드슨 법무는 워터게이트 수사 특별검사를 파면하라는 닉슨의 명령을 따를 수 없다며 사표를 제출했고 자넷 리노 법무는 화이트워터 스캔들 수사 특별검사를 임명함으로서 클린턴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강경보수로 꼽히는 존 애쉬크로프트 조차 부시행정부의 ‘영장없는 도청’은 위법이라며 지지를 유보했었다.
곤잘레스도 바른 길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청문회에서 이렇게 답변했었다. “법무장관은 대통령 내각의 일원이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민을 대변한다. 첫번째 의무와 충성은 언제나 헌법의 수호다”
그가 이 말을 행동에 옮겼더라면 첫 히스패닉 법무장관의 아메리칸드림 실현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감동적인 신화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진보와 보수, 이념과 정치성향을 잠깐 떠나 이민들 모두에게 아쉬운 부분이다. 배워서 아는 것과 실천하며 사는 것은 하버드 졸업생에게도 힘든 일인가 보다.
박 록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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