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9일 실시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은 사생결단의 치열한 싸움이었다. 장장 1년 2개월 동안 진행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간의 사상 유예 없는 경선 난타전은, 이명박 후보의 극적인 승리로 끝났다. 한때는 더블 스코어로, 시종 여론 조사에서 줄기차게 부동의 선두를 달린 이 후보는, 투자회사 BBK와 도곡동 땅투기 의혹으로 막판에 뒤집힐 지도 모르는 위기에 직면했으나, 결국은 신승했다. 선거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이명박과 박근혜의 지지율은 35 대 21이었다. 한나라당 경선방식에 따른 시뮬레이션에 의해서도 정확히 44.5 대 37.2로 이 후보가 초조할 것 없이 앞장섰다. 그런데 선거는 뚜껑을 열어 봐야 안다고, 두 후보의 실제 표차는 불과 1.5%(이 후보 81,084표, 박 후보 78,632표, 표차 2,452표)의 아슬아슬한 박빙의 승부였다. 박 후보가 억울한 것은 선거인단(당원 30%, 대의원 20%, 일반국민 30%) 선거에서는 이겼으나, 일반상대 여론조사(20%)에서 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박 후보가 한나라당 조직 장악에서도 이 후보에게 지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박근혜 후보는 이번 경선을 통해, 비록 낙선은 했으나, 감투했다. 고비마다 놀라운 의연함과 근성으로 대처 했으며, 뚝심과 강단으로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결단력 있는 아버지 박정희와 우아했던 퍼스트레이디 어머니 육영수여사에게 부족하지 않은 딸의 면모를 과시했다. 선거 기간 중 어머니 묘소에 찾아가 흉탄에 쓰러져 피 묻은 어머니의 옷을 눈물로 씻었다며, 지하에서나마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는 비장한 기도는 많은 국민을 감동시켰을 것이다. 선거 막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이명박 후보를 당차게 몰아칠 때는 아녀자가 아닌 대장부의 기상이었다. 또 박 캠프에서 아쉬워하는 것은 막판 뒤짚기에 시간이 짧았다는 점과, 중요한 시기에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건과, 남북 정상회담 발표가 악재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밖에서 볼 때도, 박 후보의 패인은 여러가지가 더 있다. 이 후보를 향한 의혹 폭로에서 점수를 따기는 했으나, 비전 제시는 미흡했다. 서울과 호남에서의 열세는 영남 맹주의 한계를 드러내 패인으로 작용했다. 그밖에 역 작용 요인으로는 여성이라는 점, 비기독교인, 참모진에 구태 정치인 대거 등용, 독재자의 딸이라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박근혜 후보는 한국정치사에 기념비적인 경선 패배의 명연설을 남겼다. 즉,“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한다. 저 박근혜는 오늘부터 당원 본분으로 돌아가 정권 교체를 위해 백의종군 하겠다. 이 후보께서는 국민과 당원의 10년 염원을 명심해 정권 교체에 성공해 주기를 바란다.” 다소 피곤하고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였으나 화합과 백의종군, 정권교체를 강조하는 그녀의 음성은 의연하고 차분했다. 이명박 후보 보다 11살, 힐러리 보다 5년 어린 박근혜 후보에게는 다음 기회가 또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이명박 후보의 승리는 예견했던 일이다. 이미지나 추진력에서 박 후보를 앞섰다고 평가받았다. 서울 시장으로서 청계천을 복원했을 때 이미 그의 오늘은 예약 돼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당선자는 수락 연설 서두에 북한의 심한 수해를 걱정하며 북한 주민들의 고통에 함께 관심을 가지자고 했고, 지금 아프가니스탄에 억류돼 있는 젊은이들도 하루 빨리 안전하게 돌아오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이어서 그는“한나라당은 국민이 믿고 정권을 맡길 수 있는 국민정당, 전국정당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선언했다. 동포 사랑과 지역감정을 초월한 이 대목에서 나는 이번 한나라당 경선이야말로 박 후보의 경선승복과 함께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 이벤트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또 이 후보가 수락 연설을 끝낸 후 가진 기자 인터뷰에서‘시대정신’을 강조한데 대해서 무척 고무적인 인상을 받았다. 그가 주장하는 시대정신은 경제를 살려, 서민이 잘 살고 중산층을 두텁게 하고 선진국으로 진입하자는 것과, 국민 화합과 단결을 꾀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나는 이명박 후보가 이 시대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훌륭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아니다. 어시장 바닥의 좌판 가게 출신으로 야간학교에 다니고, 안창호와 간디를 존경하는 의협심 강한 그는 6.3사태 주역으로 감옥 생활도 경험했다. 현대그룹 입사 후 30대 사장이라는 신화를 창조했다. 오늘날 한국이 요구하는 시대정신이 진정 경제 발전과 국민 정치 화합이라면, 정서적으로 민주화와 산업화의 양쪽을 공유한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시대가 요구하는 대통령으로 적합한 인물이다.‘이명박 대세론’이 본선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권은 아직 누가 대선 주자가 될지 오리무중이다. 지금 현재 60%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 후보에 대적할 만한 여권 후보는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본선에서 여야가 1 대 1이 될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역대 선거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여기에 이 후보는 예선서 불거진 각종 의혹이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처럼 위험한 상태다. 따라서 대선 고지를 향한 이명박 후보의 마음가짐은 각종 의혹에 대한 도덕적인 재무장이다. 차떼기당의 이미지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과 같은 의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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