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육감은 겉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하고 수수한 두 자녀를 둔 37세의 한 여성에 불과한 모습이다. 한인 교회나 식품점 등지에서 쉽게 눈에 띄는 젊은 주부들과 별다름 없다. 하지만 그의 살아온 인생 경로를 따라가면 결코 평범하지 않는 매력이 엿보이며 관심을 끈다. 이 교육감이 흑인이 절대 다수인 DC 공립학교의 실무 총책임자로 우뚝 서게 된 것은 휀티DC시장의 개혁성 인사 그물에 우연히 걸려든 행운이 아니었다.
그녀가 유명하게 된 직접적인 발단은 볼티모어의 할렘 파크 커뮤니티 학교에서 2, 3학년을 3년간 가르치면서부터 시작됐다. 코넬대학에서 정부학 학사과정을 마치고, 우수 졸업생을 모집, 2년간 교사로 재직하게 하는 기관(Teach for America)을 통해 교육계에 뛰어들었다.
“다행히 좋은 교장을 만났지요. 교사들이 학생 지도에 재량권을 많이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주었으니까요.”
이 교육감의 남다름이 여기서 발휘된다. 그는 교사로서의 자유로운 환경 속에 안주하지 않고 이를 기회로 삼았다. “처음 부임해서 2학년을 가르쳤으나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어요”라며 아쉬움이 남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교사 2년 차부터는 달랐다. “또 다시 2학년을 맡아 3학년까지 2년간 교육했지요. 학업 성적이 하위권에 있었던 이들을 상위권대로 끌어 올렸습니다.”
이 교육감의 교사 생활은 열정과 헌신 그 자체였다. “학생들에게 가정에서 적어도 2시간은 공부하도록 권장했습니다. 그리고 공부가 뒤 처지는 학생들은 방과 후는 물론 토요일까지 학교로 불러내 보충 지도를 했습니다.” 일부 동료 교사들이 그렇게 까지 힘들게 일할 필요가 있냐고 했지만 계획한 바를 멈추지 않고 꾸준히 밀어붙였다.
가난 등 열악한 교육 환경 속에서 학업 성적이 말이 아니었던 이들을 우등생으로 만들면서 요즘 통용되는 ‘성적은 부자 순’이란 말을 무색케 했다. 이 교육감이 이때부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TV 프로그램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하고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도 주목받는 교육가로 변신했던 것.
그는 3년간의 교사 생활을 접고 하버드 대학의 케네디 스쿨 정책학 석사과정에서 교육정책을 전공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위한 자기 계발에 들어갔다. 졸업 직후인 97년 신규 교사 충원과 훈련 사업 기관(NTP: New Teacher Project)을 설립하고 교육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학교를 떠난 후 가르쳤던 학생들이 우수한 성적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가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
그녀는 NTP 교육 사업을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고위직 교육계 인사를 만나 자신의 능력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고 부상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DC교육감 임명에 입김을 발휘한 빅터 레이노소 DC 교육 부시장을 알게 된 것도 NTP 활동을 통해서다.
DC 커뮤니티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더러 공립학교 시스템을 운영해 본 경험도 없는 그가 교육감에 임명될 정도로 성장한 데에는 많은 사람의 지원도 필요했다. 특히 “뉴욕 할렘 초등학교 교장 린다 카터, 뉴욕 교육감 조엘 클레인, NBA 스타 선수였던 케빈 존슨 등은 좋은 인생 조언자 또는 친구”라며 “기회 있을 때마다 이들로부터 격려와 후원의 말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10일 시 의회가 만장일치로 이씨를 교육감으로 인준한 것도 따지고 보면 교사와 교육 행정가의 길에서 닦아온 인맥의 영향이 크게 한몫했다. 제자, 동료 교사, 학부모, 교육계 지도자 등이 인준 청문회에서 교육에 대한 그의 열정과 실천 능력을 한 목소리로 높이 평가해줬기 때문이다.
한편 교육가로서의 그의 비전과 헌신의 정신이 어려서부터 싹텄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남 1녀의 둘째로 태어난 그는 의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사회 봉사 활동을 많이 강조하신 분이셨어요. 부모님께서 절대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어요. 공부를 잘 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교육감은 청소년기 때 인디언 보호구역에 들어가 주민을 돕고 보조 교사로 일하는 등 자원 봉사 활동도 많이 했으며 고등학교 학생회장을 지낸 적도 있다. 하지만 그는 어릴 때는 축구, 농구, 필드하키, 수영 등 다양한 운동을 하는 것으로 방과 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부모들이 자녀에게 너무 공부만 시키지 말고 여러 가지 기회와 자유를 주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인준을 마치고 자격 시비가 수그러진 지금 미셀 이 교육감은 “이젠 내가 뭔가를 보여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사회가 공감하는 비전에 실천 능력을 겸비하고 주어진 기회를 적극 활용할 줄 아는 개혁적인 그의 태도가 어떤 식으로 구체화 될지 자못 기대가 크다. 미셀 이 교육감이 분명 한인 사회가 본 받을만한 ‘성공 패러다임’의 하나를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안성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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