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의 원로 의사로 평생을 병원과 교회를 위해 바친 유기진 장로의 90회 생신 기념 감사예배가 지난 11일 세노야 식당에서 친지들과 교우들 그리고 평안도 고향 이웃과 세브란스의대 후배 등등 110여명의 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거행되었다.
“내 나이가 90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인생은 잠간입니다. 70이 보통이고 건강하면 80인데, 연한(나이) 자랑할 것 아닙니다. 무엇을 가지고 왔다가 무엇을 가지고 가느냐? 생각하니, 수고와 슬픔뿐 이외다” 인생이 짧다는 노 장로의 9순 잔치 회고담은, 젊은이들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면서 또한 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시카고에서 90세까지 장수를 누리면서도, 기력이 쇠하지 않고 젊은이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을 하는 세 분이 있다. 금붕어 유치원장 임인식 장로, 배건재 회장의 장인이며 강원도민회 회장을 역임한 옥성도 선생, 그리고 유기진 장로, 이들은 지금도 약속을 꼭 지키고 신문을 읽을 정도로 영육 간에 건강 할뿐만 아니라 공동체 의식이 강한 분들이라 나는 이분들을 존경한다. 이 세분의 공통점은 자신보다 겨레와 민족을 걱정하며 사랑하는 민족주의자이며 애국자라는 점이다.
나는 이날 유 장로의 9순 잔치에서 축사 순서를 맡았다. 유 장로의 90생신은 가족의 경사일 뿐만 아니라, 우리 이민사에 기록 할 만 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일생은 일제의 한반도 강점기, 명문가 의인의 집에서 태어나 분단 조국의 아픔과 이민자로서 미국에 살면서 근검, 검소, 정직을 좌우명으로 삼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남을 도우면서 산 발자취가 아름다웠기 때문 이다. 명문가 의인의 집안 이라고 했는데, 잠시 유 장로 집안의 내력부터 살펴보자.
유기진 장로의 부친 유계준 장로는 대동강 변에서 무역을 했던 거부였다. 한국 기독교사에 찬연히 빛나는 산정현 교회(주기철 목사) 트리오 장로의 한명이었다. 민족지도자 조만식 장로, 오윤선 장로와 함께 이들은 주기철 목사를 섬겼다. ‘주기철’이라는 이름은 한국 순교사의 ‘저 높은 곳을 향한’ 대명사이다. 민족의 수난기에 일제에 타협하지 않고 ‘죽을 자리를 찾은’ 의인이다. 주 목사가 신사참배를 거부, 44년 4월 해방을 보지 못하고 감옥에서 순교할 때까지 5년 이상을 일경의 협박 속에서도 가족을 포함해서 옥바라지를 도맡아 한 분이 바로 유계준 장로다. 5째 아들을 남으로 보내면서 “아들아,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던 아버지는 공산정권에 의해서 순교 당했다. 유기진 장로의 깊은 신앙심은 바로 주기철 목사와 아버지 유계준 장로가 심어준 씨앗 이다. 유기진 장로의 가문은 불의와 부정을 가만히 앉아서 못 보는 피를 타고 났다. 유 장로의 바로 위의 형 유기천 박사는 형법학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서울대학교 총장을 역임 했으며, ‘쌍권총의 사나이’라는 별명과 함께, 박정희의 유신 독재와 맞서 싸우다 미국에 망명, 샌디애고 대학 법대 교수로 만년을 쓸쓸히 보내다 별세 했다.
9순 잔치에서 설교를 맡은 이성걸 목사는 ‘의인의 집안은 망하지 않는다’는 요지의 말을 전했다. 의인 조나단의 후손은 380명이 국가에 공헌 했지만, 마피아 두목인 알 카폰의 후손 380명은 형무소를 전전하며 마약과 술에 찌들었다는 것이다. 의인의 집안 유계준 장로의 자손은 크게 번성했다. 슬하의 8남매 중 유기천 총장만을 제외하고 7남매가 의사와 약사로 성공 했다. 큰 아들 유기원 박사는 하버드대 의학박사로 국립의료원장을 지낸 분이다. 이렇게 3대에 걸쳐 의사 약사를 26명이나 배출한 명문가 이다. 시카고에는 둘째 유기형(부산의대 교수)의 큰 아들인 유정호씨가 스웨디시 병원의 심장내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다. 시카고에서도 신앙으로 무장한 유씨 가문의 향기는 퍼져 나갔다. 교회가 갈라지는 아픔 속에서도 오직 한 교회만을 섬겼다. 교회 40년사를 사비를 써서 출판했다. 근검절약이 생활의 모토인 유 장로는 직접 깡통을 수거해 선교헌금에 보태기도 했다.
장기려 박사와 함께 평양기독병원에서 외과의사로 근무한 유 박사는, 월남 할 때 평양 정의여학교 교사였던 고몽애씨의 딸 3명을 맡아 데리고 남하했다. 발견되면 총살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으나 몸소 사랑을 실천한 ‘일사각오’의 용단이었다. 9년 전 타계한 유 장로의 부인 고난경씨(서울여대 창립자 고황경씨의 동생)는 생전에 모은 전 재산 130만 달러를 서울여대에 기부하고 갔다. 유 장로는 이제 양로원에 들어가야 할 나이가 되었으나, 사후 자신의 전 재산을 기증해서 설립 할 ‘류(RYU)재단 사업의 준비로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산정현 교회, 주기철 목사. 유계준 장로, 장기려 박사의 고귀한 유산은 9순을 맞은 의사 유기준 장로를 통해 시카고에도 아름답게 이어지고 있다.
유 장로님, 100수를 맞을 때 까지, 홍콩(링컨의 중국 뷔페 집)에서 자주 만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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