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정 칼럼
‘기세가 당당하다’의 기세다. ‘남이 보기에 두려워할 만한 힘’이라 푸는 ‘기세’다.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노 대통령을 보는 눈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핵 문제를 앞세운다. 의제도 가다듬어야 하고, 절차도 투명할 것을 원한다. 누구는 12.19 대선과 내년 2월 퇴임을 앞둔 대통령이 행여 엉뚱한 합의나 거래를 하지 않을까 밤잠을 설치겠지만, 지금쯤이면 지혜를 모아 정상회담에 임하는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면 어떨까. 믿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제 62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밝히는 뜻은 분명했다.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노 대통령의 기세는 당당했다 (청와대 브리핑 동영상 참조). 그의 말 속에 감춰진 활인검(活人劍)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노 대통령이 직접 연설문에 삽입했다는 “이번 회담에서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대목, 힘을 안으로 감추는 여유로움을 읽을 수 없는가. 챙길 수 있다면 나라의 큰 복이다.
“남과 북은 이미 남북 관계의 원칙과 발전 방향에 대해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합의를 해 놓고 있다”고 투망을 던진다. 천라지망(天羅地網), 피할 ‘길 없는 길’로 몰아부친다. 기억을 다시 새롭게 한다.
“72년 7.4 공동성명, 92년 남북 기본 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2000년 6.15 공동선언이 그것”임을 밝히고, ”이 4대 합의는 남과 북의 역대 정부가 (남북의 국민에게: 동영상 참조) 세계를 향해 약속한 것입니다”라고 대못을 친다.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실천하라는 말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체면을 세워주면서 ‘핵 문제’를 풀겠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계책이 설령 있다 해도 필자는 여기서 박수를 치고 싶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 것 하나도 꿀릴 것 없다. 눈치 볼 일도 없다. 뱃심 아니고도 맞짱뜰만 하다. 의제도 분명하다. 1) 한반도 평화다 2) 민족공동 번영 그리고 3) 조국통일의 새 국면이다. 정파가 다르고, 이해가 엇갈린다고 해서 무작정 반대하기엔 너무나 분명한 민족적 여망이고 과제다. 절차도 숨길 것 없다. 8.15 경축사에서 노 대통령은 “남북 공동체의 건설을 위한 대화에 들어가야 할 것”과 ”남북경협을 생산적 투자협력으로, 쌍방향 협력으로 발전시켜 우리에게는 투자의 기회가, 북한에게는 경제 회복의 기회가 되도록 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무작정 ‘퍼주기’만이 아니다.
그러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회담의 전 과정에서 역사가 저에게 (참여정부에게) 부과한 몫을 잘 판단하고,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과 “6자회담과 조화를 이루고 6자회담의 성공을 촉진하는 정상회담이 되도록 할 것”을 다짐한다.
광복절 경축사를 읽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은 의연했다. 조용했고 침착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통하여 “무슨 새로운 역사적인 전기를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역사의 순리가 현실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전임자들의 발자취를 새롭게 하는 자리다. 지금이야말로 남북한 사이의 여러 합의를 “실천에 옮기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고, “그 동안의 합의를 존중하고 성실히 이행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남북관계는 예측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임도 분명히 했다. 북한의 손을 잡고 발맞춰 나가겠다는 보살핌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좋다. 역사 앞에 서서 ‘회담의 성과’가 아닌 ‘책임을 다하겠다’는 각오라면 두려울 것이 있을 수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우리가 내민 손을 마주잡아야 할 북쪽의 형편이 아직도 “옹고집”이라면, 7천 5백만 민족과 세계를 향해 행한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면 서슴없이 활인검을 뽑을 수 있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뱃짱과 기세라면 할 수 있다. 남북 사이에 얼키고 설킨 매듭을 풀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에서 “안 될 것은 분명히 안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이 핵을 끝까지 고집하겠다면, 우리는 유명무실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폐기하겠다, 핵 주권을 되찾겠다, 이 문제만은 내 손으로 끝장낸다는 단호함을 보여주는 배수진(背水陣)을 치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6자회담 당사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의 결단을 다시 한번 더 물어야 할 것이다. 누구는 너무한다고 하겠지만, 우리 민족의 사활이 걸린 북핵 문제 해결과 성공적인 6자회담을 앞당길 수 있는 민족사적 책무를 다하려고 노심초사하는 대통령의 발길이다. 어쩌면 성공적인 남북정상회담을 보게 되고, 국민들은 박수와 환호로 반길 것이다. ”역사의 순리”를 바로잡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각오와 기세가 제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리라 믿으며, 한번 더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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