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은호(전 코리언 콘서트 소사이어티 회장)
누구나 다 그때 자기가 처한 환경에 의한 특유의 체험을 되살리며 역사적인 그날 1945년 8월15일을 추억하며 기릴 줄로 안다. 1924년 갑자생인 나는 일제하 일본군 징병 제1기생으로 징집되어 미일전쟁에 끌려갈 단계였다. 다행히 약학을 전공한다는 과학도들에게 주는 혜택으로 그 액을 모면하게 되었다.
1945년 여름방학은 우리 경성약학전문학교(현 서울대학 약학대) 학생들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일본군이 필요한 화학품인 주석산(tartaric acid)을 산머루에서 추출하는 작업을 진두지휘하기 위하여 방방곡곡 산간벽지로 학생동원을 당하게 되었다. 내가 배치되어 간 곳은 첫 해는 황해도 곡산이었고 1945년은 소련과 만주 국경에 아주 가까운 함경북도 나산(이북이 부르는) 북방인 산골 벽촌이었다. 이제는 그 마을 이름도 잊은 62년 전 이야기가 되었다.
마을사람들은 일본군의 명령으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총동원하여 산머루을 따오면 동원된 학생들은 처리하여 최종적으로 주석산 될 중간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소박하고 순진한 마을 분들은 우리 나이 어린 학생들을 서울서 온 학생들이라고 아껴주고 그 어려운 배급 받은 귀한 음식물 등을 갖다 주시곤 하였다.
1945년 8월10일쯤 되니 밤 잘 때 총성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곤 하였다. 그런데 며칠 후에는 총성소리가 더욱 크고 가깝게 들려왔다. 한 마을 어른이 오시더니 소문에 소련군이 국경을 넘어 오니 나보고 빨리 떠나라 하신다. 조그만 쌀자루까지 주시면서 말이다. 나는 주저하다가 8월14일 오후 하던 작업을 집어치우고 서울 집으로 돌아가려고 역으로 나갔다.
기차는 여객차량은 물론 화물차량도 피난민으로 꽉 차 있었다. 나는 겨우 뚜껑 없는 화물차량에 부비고 들어가 설자리를 간신히 얻었다. 그야말로 콩나물 같이 꽉꽉 서있는 형상이었다. 터널을 지날 때는 기관차가 뿜는 열과 매연으로 말이 아니었다. 얼굴은 까맣게 되고 말이 아니었다.
함흥에 도착한 것은 8월15일 새벽이었다. 나는 생쌀을 먹으면서 서울 가는 기차를 기다렸다. 마침내 기차를 타고 원산을 경유하여 이른 곳이 온천과 약수로 유명한 삼방산협이었다. 아마도 이때가 1945년 8월15일 12시경이었을 것 같다.
다음날 알았지만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무조건 항복 라디오방송을 한 그 시각이 되리라고 믿는다. 열차 속에 있는 나도 다른 사람도 이때 이 사실을 그 시간 알 도리가 없었다. 나는 다만 염려되는 것은 동원된 자리를 파기하고 돌아온 내게 학교 당국이 어떻게 처벌하겠는가에 대한 불안으로 초조하였다.
같은 객차 안에는 총에 칼을 끼우고 삼엄한 표정을 한 3명의 일본 군인이 흰 헝겊에 싼 전사한 군인의 유골 상자를 안고 앉아 있었다. 모르고 지나가는 우리들에게 욕질을 하며 반드시 경의를 표하며 경례하고 지나가라는 것이다. 우리들은 꼼짝 못하고 하라는 대로 하였다. 권력 아래서 자유가 없는 때는 우리 같은 범인은 아마도 거의 다 기가 죽어 비겁하고 비열하게 되는 모양이다. 그때 그 열차 안에 타고 있던 많은 피난민들 중 이런 요구에 항거하는 간 큰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만일 그때 우리들이나 일본 군인들이 일본 천황의 항복 라디오방송을 듣던지 알고 있었더라면 상황이 완연 달라졌을 것이다. 해방과 자유를 얻은 우리들이 총칼을 두려워 않고 분통을 터트렸을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 험악한 일본 군인들은 아마도 큰 봉변을 면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1945년 8월15일 12시 달리는 기차 안에서 해방을 알지도 못하고 맞이한 셈이다.
서울역에 도착하여 신설동 집까지 걸어 도착하였을 때는 8월16일 새벽3시였다. 해방된 서울의 아침에 제일 첫 번 째 하신 우리 아버지 말씀은 한국이 어제로 해방되어 이제는 우리나라와 온 누리가 자유로운 사람과 나라로서 살 수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 순간 느낀 기쁨과 감동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1945년 8월15일. 해방을 맞이한 우리 세대뿐 만 아니라 한국인은 누구나 다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를 준 이날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영원히 그 고귀한 자유가 계속 지속되도록 기원하여야 마땅하다.
하루만 더 이북에 지체하였더라면 오늘 누리는 이 자유가 있을지 의문이다. 위태로운 순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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