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초 연방의사당 복도에선 대여섯명의 틴에이저들이 서로를 얼싸 안으며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우리가 해냈다, 우리가 해냈어!” 추방당할 뻔한 친구와 가족들을 구해낸 것이다. 물론 당분간이다. 45일간의 추방 집행유예, 짧지만 기적같은 얻어진 시간이었다.
그들은 두달전 마이애미의 킬리언고교를 함께 졸업한 친구들이었다. 이제 곧 하버드, 콜럼비아, 웰슬리, 밴더빌트 등 명문대 신입생으로 떠날 이들의 느긋한 여름방학을 뒤흔든 것은 7월25일 이른 아침에 울린 셀폰 벨소리였다. 또 한명의 베스트 프렌드 후안 고메즈가 다급하게 도움을 청하는 문자메시지가 들어온 것이다. 후안(18)은 부모 및 형 알렉스(19)와 함께 그날 새벽 집으로 들이닥친 이민국 단속반에 체포되었다. 16년전 콜럼비아에서 건너온 그들 가족은 불법체류자였다.
1,200만 불법체류자가 상존하는 미국에서 후안의 추방은 별 뉴스도 되지못할 흔한 이야기다. 기습단속에 걸린 수천명 아이들 중 한명일 뿐이다. 그러나 1주일 후, 후안의 스토리는 전 플로리다와 워싱턴 정가, 이어서 전국의 화제로 떠올랐다. “우리의 친구가 낯선 나라로 쫓겨나게 내버려둘 수 없다”며 ‘후안 구하기’ 작전에 돌입한 명석한 틴에이저들이 이루어낸 기적이었다.
후안은 보통 친구가 아니었다. 미국의 내일을 이끌어 갈 젊은 리더의 표본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거의 만점에 가까운 GPA, 11개 AP과목에서 최고점수를 받고 780명 중 14등으로 졸업한 후안은 컴퓨터가 없어 늘 친구들의 컴퓨터를 빌려쓰며 숙제를 했지만 공부가 뒤지는 동급생들에게 밤샘 개인교습을 마다하지 않는 헌신적 친구였다. 모든 명문대가 원하는 모델학생이었으나 후안은 장학금도, 재정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불법체류라는 ‘낙인’ 때문이었다. 그러나 밝고 명랑한 후안은 커뮤니티 칼리지를 택했고 투잡을 뛰어 학비도 벌고 집안도 도울 수 있게 되었다며 오히려 속상해 하는 친구들을 안심시켰다.
후안의 스토리는 친구들이 페이스북닷컴에 개설한 사이트를 통해, 연방의원들과 부시대통령과 미디어에 보낸 호소문을 통해, 급속히 퍼져 나갔다. 후안구하기 회원들은 3천여명으로 불어났고 친구들은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지난 6월말 어렵게 마련된 포괄적 이민개혁안을 당쟁으로 죽여 버린후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연방의회는 다행히 이들에게 친절했다. 플로리다주 출신 연방의원들이 발 벗고 나섰다. 하원의원은 후안형제의 합법신분을 요청하는 법안을 상정시켰고 상원의원은 이민국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8월초 이민국은 이들 가족의 추방을 유예시킨다고 발표했다. 45일간의 조건부 석방이다. 드림법안이든, 후안가족을 위한 개인법안이든 법안검토 시간을 허용하기 위해서라고 이민국은 설명했다.
미전국의 후안같은 불법체류 대학생들은 약 1백만으로 추산된다. 한인사회에도 수천수만의 ‘후안’이 숨을 죽인채 살고있을 것이다. 이들의 희망은 드림법안(The Development, Relief and Education for Alien Minors Act)이다.
불법체류자의 자녀들이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대학에 다니기 힘들어진 것은 1996년의 이민법안을 시행하면서 부터다. 그 505조항이 각 주정부로 하여금 불체자에게 주민등록금적용을 금지시킨 것이다.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드림법안은 2003년부터 계속 추진되어 왔다. 16세이전에 미국에 입국해 5년이상 거주한 미 고교졸업생에게 영주권 취득의 길을 열어주는 법안이다.
연방의회는 여름휴회를 끝내고 오는 9월4일 개원하면 다시 이민법안을 다룰 것으로 알려졌다. 포괄적 개혁안보다는 사안별 별도법안들의 전망이 밝다. 그중 하나가 드림법안이다. 이번 가을에라도 통과되면 약1백만명의 인재들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 실력껏 꿈을 펴고 교육을 받을 수 있게된다. 영주권을 수속중이던 아버지의 사망으로 어머니와 함께 불체자로 전락한 후 교회 쉘터로, 청소년 기숙사로 가족이 뿔뿔히 흩어진채 일하고 공부하며 더운 여름을 견디고 있는 한인 고교생 남매도 포함될 것이다.
이제 한달후면 추방될지도 모를 절박한 상황이지만 웃음을 잃지않는 후안은 많은 모임에 참석해 “내가 알고있는 나의 나라는 미국뿐이다. 드림법안의 퍼스트 드림차일드가 될 수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거의 매주 타운홀 미팅을 개최하고 있는 후안의 친구들은 쉴새없이, 전화와 이메일로 연방의원들을 들볶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그것뿐이다. 마침 여름방학을 맞은 한인학생들의 자원봉사로 민족학교는 드림 포스트카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각 의원들에게 드림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드림엽서 보내기 운동이다. 우리들 모두가 어렵지 않게 힘을 보탤 수 있는 일이다.
박 록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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