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대 한인회장단 취임식이 7월31일 화이트 이글에서 6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식사 메뉴도 스테이크와 생선까지 곁들여 고급스러웠고, 축하 공연 프로그램과 함께 사람도 많이 모여 잔치기분이 물씬 풍겨났다. 경비 3만여 달러를 주최 측이 부담했다고 하니 고맙지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돕지는 못 할망정 얻어먹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무엇인가? 허전한 생각이 들었다. 신문 광고와 초청장에도 모임의 내용이 분명히 ‘시카고 한인회장 이-취임식’으로 되어 있는데, 행사장에는 ‘이’자가 슬그머니 빠지고, ‘회장단 취임식’으로 둔갑했기 때문이다. 물론 김길영 전 회장을 비롯한 전 집행부 인사들의 면면도 보이지 않았고, 취임과 이임을 함께 축하하는 화환의 리본도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치열한 선거전을 폈던 서정일씨의 불참도 무언가 아쉬운 감이 들었다.
여기에 대해 주최 측은 일언반구 언급이 없어, 참석자들의 추측과 궁금증만 증폭시켰다. 정종하 회장은 기자들에게 27대와 28대 간의 인수인계 문제로, 그 중에 공공요금 지불, 소송비용, 결산보고 등이 걸림돌이 되어 깨끗이 마무리되지 않았음을 전제하고, 그것과 관련해서 김길영 전임회장이 참석하기로 예정되었으나 막판에 불참을 통고해 왔기 때문에 프로그램까지 급히 바꾸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날 한인회는 취임식만 거행하게 되었다는 공식 발표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통상 새로운 정부나 새 기관이 탄생 할 때 갖게 되는 취임식에 꼭 이임식을 함께 하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시카고 한인회의 경우 이취임식을 겸하는 것이 관례였다. 더욱이 미우나 고우나 4년 동안 한인사회를 위해서 일한 봉사자를, 인사 한 마디 없이 그렇게 섭섭하게 떠나보내야만 했는가? 우리의 현실이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종갑 이사장을 비롯한 42명의 이사진과 젊고 참신한 새 한인회장단 출범에 즈음하여 ‘이취임식’ 문제를 서두에 꺼낸 이유는 정종하 회장은 변혁과 화합의 기치를 내걸고 선거에 임했으며, 그것이 어필이 되어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이날 손성환 총영사가 축사에서 지적한 대로 우리 동포사회는 그동안 한인회를 둘러싸고 갈등과 불협화음을 내는 바람에 한데 뭉친 역량을 발휘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리고 동포사회에 피곤함을 안겨 한인회의 불신을 초래했던 것이 사실이다. ‘화합’이 당연히 화두로 등장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정 회장은 평소 분열의 치유는 자신부터 의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해 왔다.
한인회장 선거가 끝난 지 2개월, 일을 시작 한 지 1개월이 지난 때에 가진 취임식에서 정종하 회장이 밝힌 철학과 비전이 담긴 취임사는 역대 어느 회장의 것보다 무척 고무적이고 인상적이다. 지난 2개월 동안 가족보다도 회장단과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는 이대범, 김학동 부회장의 인사말도 이색적이다. 정 회장은 여기에서 ‘변혁과 화합의 깃발’을 단 한인회라는 거함의 출항을 알리면서, 이 큰 배에 1세대와 2세대가 함께 승선하여 시대 변화에 부응하자고 강조 했다. “우리 1세들도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사업의 다변화와 은퇴준비 등 생활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2세들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많은 혼동을 갖고 있습니다. 변혁과 화합의 배는 바로 이 모든 것을 수용 할 수 있는 한인회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실질적으로 “2세들을 위한 한글학교 지원 과 다양한 문화행사를 통해서 각자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연로자들의 복지 향상에도 배전의 힘을 쏟아, 어린이에서 노인 어르신까지 같이 가는 밝은 시카고 동포사회가 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야심찬 계획과 목표를 천명했다.
정종하 한인회장 취임식에 즈음하여, 평소 한인회에 바라는 몇 가지 기대를 이 기회에 지면을 통해 제언 하려고 한다.
우선, 한인회의 재정자립이다. 지금과 같이 한인회 운영자금이 한인회장 주머니에서 조달되어야 한다면 돈 없는 사람은 한인회장이 될 수 없다. 당선 후 개인 돈 10만 달러를 내겠다고 한 정 회장은, 자신의 임기동안에 이룩하지 못 하더라도 다음에 오는 회장들을 위해서라도 한인회 펀드를 끌어 들이고 조성하는 기초 작업을 서두르기 바란다. 둘째로, 주류사회 참여다. 주류사회 참여는 우리 정치력의 신장이다. 보우팅 파워로 목소리를 높이고 적어도 한인 밀집 지역에서는 시의원 정도는 나올 수 있는 기반을 쌓는 일에 한인회가 앞장 서주기를 당부한다.
마지막으로, 분란의 소지가 여전한 미비한 한인회 회칙의 개정을 촉구한다. 한인회 정관 중 제10장 26조 2항 회장 입후보 자격 중 회비납부 사항인 ‘당해 연도로부터 역산하여 3년간 납부한 자’와 제5장 11조 총회 임시총회와 관련, 1, 2, 3항의 정족 수(150명 이상)는 현실에 맞게 개정 되어야 한다. 아울러 회장 입후보자의 공탁금 3만 달러 등 선거법 시행세칙도 손을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6,000명 이상이 투표를 한 14년 만의 경선에서 당당히 당선된 28대 정종하 회장 팀은 초심을 잃지 말고 겸손히 동포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는 훌륭한 한인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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