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숙(어린이법회고문)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 홀가분하게 번뇌와 망상에 찌든 마음을 내려놓고 생활의 재충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인도와 네팔에 있는 부처님의 발자취를 돌아보기 위하여 18박 19일의 여정에 올랐다. 1,600여 년의 자취를 간직해 온 한국불교의 성지는 물론, 인도나 중국, 동남아시아 불교성지는 더욱 의미를 갖는다. 성지순례는 어떻게 보면 즐거운 여행일 수도 있고, 여러 곳의 성지에 얽힌 이야기와 그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성지 순례의 한 기쁨이며, 시공을 초월한 옛 선지식들의 숨결과 역사의 무게를 한껏 느껴보는 것이 나의 신심을 북돋우고 수행정진의 일환이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아닌듯 싶다.
인도의 수도 델리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스님들과 인도인 프랑카씨의 안내에 따라 델리의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인구의 대부분은 올드델리와 뉴델리에 집중해 있고, 델리직할지구는 올드델리로 알려진 델리와 새로 생긴 뉴델리와 그 주변 지역으로 이루어졌고, 갠지스강(江)의 지류인 야무나 강의 서쪽 기슭에 있으며, 펀자브 지방과 갠지스강 유역과 교통 중심지여서 고대부터 17∼18세기에 이슬람교 무굴제국의 수도로서 특히 번영하였으며, 다시 1912년 콜카타를 대신하여 당시 영국령 인도 전체의 수도로 정해져서 더욱 발전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1931년 이래 남쪽 교외에 새로운 도시 뉴델리가 건설되어 정식 숀6도가 되었고, 올드델리는 고대 이래 7차례나 다시 건설되었다고 했다.
당시 유적으로는 빨간 사암(砂岩)으로 쌓은 성벽(랄키라성)이 있고, 그 안에는 궁전이 여러군데 있다. 그 중 특히 보석을 박은 벽이나 대리석 기둥이 서 있는 디와니이하스트 궁전은 유명하였고, 또 성의 남서에는 인도 최대라고 하는 자마마스지드 이슬람교 사원도 있었으며, 곳곳에서 병풍처럼 늘어선 중세의성 탑, 방사선 형태의 도로와 주요 건물의 집산은 지도만 보아도 둥근 광장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고 내뿜어져 나오는 만다라식 공간구조로 펼쳐져 있었다.
우리들을 태운 버스는 국립박물관 인근에 멈추었다. 그런데 갑자기 창문 앞으로 몰려드는 걸인들,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내밀며 “기부니 머니”를 외쳐 당혹스러웠다. 인정사정 보지 말라는 가이드의 충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행들은 벌써 루삐, 볼펜 등이 손에 들려있고, 갓난아이를 꿰찬 젊은 여자, 악기를 앞뒤로 둘러멘 소년의 절규어린 외침, 때국물 흐르는 맨발의 소녀가 깡통을 찬 어린 동생을 껴안고 손을 내미는 상황에서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다.
오랜 세월의 흙먼지를 덮고 있는 선사 시대의 유적들. 기원전의 역사가 눈 앞에 펼쳐지는 인더스 문명의 자취. 간다라 불상과 힌두사원의 조각과 신상들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 기행이 끝나자 우리 일행은, 점심공양을 위해 전용버스를 타려는데 아까 보았던 걸인들 모두가 두서너 시간을 꼼짝없이 우리 일행들을 기다리며 출입문에 서성거리며 서 있었다. 한 푼의 동냥을 위해 끝끝내 기다려야 하는 저들의 모습들. 달라드는 기세는 더욱 필사적인데 한 소녀의 눈빛은 애원을 넘어 마치 구원을 청하는 애절함으로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도리없이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자 소녀는 미소띠며 성호를 긋고 마침내는 합장을 하더니 차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박물관 기행을 마친 우리 일행은 밤기차를 타고 델리 남동쪽 약 485km지점의 러크나우에 도착, 몇몇 유적지를 본 후 네팔 국경에 도착하여 간단한 수속을 밟고 네팔의 룸비니 동산으로 향했다. 네팔 남동부 테라이(Terai) 평원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는 룸비니는 석가모니가 탄생한 성스러운 곳으로,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Bodhgaya), 첫 설법을 한 녹야원, 열반에 드신 쿠쉬나가르(Kushinagar)와 함께 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로, 각국의 순례자들로 넘쳐나는 곳이다.
1895년 저명한 독일 고고학자인 포이러(Feuhrer)가 히말라야 산기슭의 작은 언덕을 배회하다 석주 하나를 발견하면서 세상에 다시 알려지기 전까지는 인도에서의 불교 쇠퇴와 함께 황폐해져 폐허로 방치되어 있었다고 했다.
기원전 623년 샤카족의 왕비인 마야부인은 당시의 관습에 따라 출산을 하기 위해 고향으로 가던 중 룸비니에 있는 무우수(無憂樹) 나무 아래에서 석가모니를 낳으셨다. 그 후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 곳을 찾게 되며, 기원전 249년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Ashoka) 왕도 이 곳을 찾아 석가모니를 찬미하기 위하여 네 개의 불탑과 꼭대기에 말의 형상을 가진 석주 하나를 세웠지만 현재는 부러진 상태로 그 일부만 남았으며 이 석주에는 재위 20년에 성스러운 석가모니의 탄생장면을 묘사한 부조를 모시고 있는 마야데비(Mayadevi) 사원은 11세기에 지어졌으며 이 사원 남쪽에는 싯다르타 연못이라 불리는 곳으로, 부처님의 탄생지응e 룸비니는 전세계 불교도들에게 신성시되는 곳이며, 이 지역에 남아있던 많은 수도원과 스투파(사리나 유골을 넣은 묘탑)는 새롭게 재건되었다고 했다.
때마침 우리 일행이 도착했을 때에 네팔 하늘 아래서 흔히 볼 수 있는 오색 만국기(불교기)가 실에 붙여 바람에 날리고, 우리나라 만국기같은 깃발 아래서 150여 명의 티베트 스님들과 세계 각국의 기도하는 모습과 각국의 부처님 모시는 다양한 모습들을 엿볼 수 있었다. 스님들의 가사에서도 태국, 미얀마 스님들은 오렌지 색, 티베트는 검붉은 승복, 중국 스님은 밤색승복 그리고 한국스님은 회색승복을 보면서 사대성지 어느 곳이든 세계 불교인이 함께 모인 것 같았다.
룸비니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과 관련된 유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 1997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국제사원지구에는 한국사찰인 대성석가사(大聖釋迦寺)를 비롯해 각국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을 살린 수많은 사원들이 건설되어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순례자들에게 편안한 쉼터를 제공하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자비와 형제애를 전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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