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포 본즈, 헛슨 그물에 걸려 물대포
용감한 바보가 될 것인가. 현명한 겁쟁이가 될 것인가. SF 자이언츠와 애나하임 에인절스(지금의 LA 에인절스)가 2002년 가을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맞붙게 됐을 때, LA 타임스의 저명 스포츠 칼럼니스트 빌 플라슈키는 한창 물오른 배리 본즈를 상대해야 할 에인절스 투수들에게 자존심 따위를 버리고 현명한 겁쟁이가 되라고, 즉 무조건 볼넷으로 걸려보내라고 충고했다.
그해 데뷔해 선풍을 일으킨 베네수엘라 출신의 중간계투요원 프랜시스코 로드리게스가 딱 한번 정면승부를 걸었다가 홈런을 얻어맞았지만, 대부분 투수들이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본즈 기피전술을 택했다. 그것이 얼마나 주효했는지 계량화할 수는 없지만 그해 월드시리즈는 에인절스의 몫이 됐다.
오클랜드 A’s의 에이스에서 전통의 명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에이스로 바뀐 팀 헛슨은 지난해 8월 본즈와의 대결에서 맞짱을 떴다가 한 게임에 두 방의 홈런을 맞았다.
24일 밤 샌프란시스코 AT&T 구장. 본즈의 43회 생일이기도 한 이날 밤 투타의 두 강자가다시 만났다. 더욱이 본즈(24일 현재 753호)의 ML 홈런역사 다시쓰기가 초읽기에 들어가 미국은 물론 세계 야구팬들의 눈길이 잔뜩 쏠린 이날 맞대결 결과는 헛슨의 완승, 그것도 철저한 완승이었다.
본즈의 2회말 첫 타석. 헛슨은 특유의 낮은 싱커로 초구 스트라익을 잡았다. 본즈는 고개를끄덕였다. 감 잡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제2구 같은 구질 낮은 볼. 관중들도 시청자들도 헛슨이 이제 본즈를 피하나보다 했을 것이다. 그러나 헛슨은 정면대결을 택했다. 한가운데서 바깥으로 꺾이는 듯한 승부구. 본즈의 방망이도 가만 있지 않았다. 그러나 회전을 먹은 헛슨의 볼 때문인지, 홈런을 의식해 본즈의 어깨에 손목에 힘이 들어간 때문인지, 타구는 뻗어나지 못하고 늙은 1루수 훌리오 프랑코의 글러브에 걸려들었다. 본즈 아웃.
4회말 두번째 대결. 헛슨은 또 피하지 않았다. 1구 스트라익, 2구 헛스윙. 도망가기 바쁜 투수들만 상대하다 모처럼 물러서지 않는 투수를 대하는 본즈는 한편 고맙고 한편 놀라운 표정이었다. 3구. 또다시 과녁으로 파고드는 볼을 향해 본즈의 방망이가 번득였다. 그러나 힘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공의 회전에 먹혔거나 본즈가 이번에는 유인구일 것이라 생각하고 엉덩이를 빼고 있었거나 이거다 싶어 너무 힘을 줬거나…. 2루타성 1루타. 쳐낸 것 자체만 보면 본즈의 승리지만, 홈런으로 말해야 하는 즈음인 만큼 무승부.
7회말 세번째 대결. 헛슨의 배짱은 놀라웠다. 1구 한복판에서 외곽으로 흐르는 스트라익. 2구도 같은 코스. 3구마저 거의 같은 코스. 본즈는 화들짝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파울. 헛슨의 킬러본능은 4구째에 더욱 빛났다. 본즈가 가장 좋아한다는 안쪽 낮은 코스. 바깥쪽을 의식한 듯 방망이를 휘두를 생각도 안한 본즈는 볼이 포수 미트에 꽂힘과 거의 동시에 자이언츠 덕아웃을 향해 ‘삼진아웃 손가락 총’을 쏘는 엄파이어를 힐끔 쳐다보고는 터벅터벅 물러섰다.
9회말. 초구 스트라익, 2구 플라이볼, 3구 플라이볼에 이어 헛슨의 안쪽 공략에 힘껏 휘두른본즈의 타구는 높이 치솟은 뒤 이날 본즈 대신 홈런쇼를 벌인 브레이브스 간판타자 치퍼 존스(3루수)의 글러브로 빨려들었다.
그러나 승부의 신은 본즈의 생일을 망쳐버린 헛슨이 너무 심했다고 생각했을까. 왕대포 본즈에게 14개의 공 가운데 무려 13개를 스트라익을 던진 왕배짱 헛슨은 4대0 완봉승을 눈앞에 9회말 2사후 한시름 놓은 상태에서 깜박 흔들리는 바람에 교체됐고 소방수 위크먼은 더욱 난조를 보이며 동점을 만들어줘 헛슨의 승리를 날려버렸다. 경기결과는 13회까지 가는 연장접전끝에 브레이브스의 7대5 승리.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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