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참정권이 하루 빨리
회복되도록 압박해야
그 동안 해외 동포들의 오랜 숙원으로 남아 있던 재외국민 참정권 논란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한국의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지난달 28일 재외동포 참정권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1966년 대통령 선거법 개정에 따라 재외국민에게 첫 투표권이 주어졌는데1972년 유신헌법의 제정으로 기존 대통령 선거가 간접선거인 체육관 선거로 바뀌면서 설명도 없이 하루 아침에 정치적 미아(迷兒)가 된 것이다.
그 동안 재외 동포참정권 회복을 위하여 서울에서 활동중인 많은 시민단체와 뜻 있는 동포들이 헌법재판소와 국회를 상대로 공직선거법과 주민투표법 에 대한 ‘위헌판결’을 끈질기게 요구해 왔다.
그러면 ‘위헌판결’과 ‘헌법불일치’는 어떻게 다른가?
‘위헌판결’은 판결 즉시 법의 효력 정지가 발생하는데 반해 ‘헌법불일치’는 해당 법률조항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위헌결정에 따른 법적 공백을 막기 위해 법 개정까지 일정기간 동안 해당 조항의 효력을 유지하거나 한시적으로 중지 시키는 결정을 뜻한다. 헌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법률조항들이 단순 위헌으로 선언돼 즉시 효력을 상실하면 주민등록을 요건으로 하는 선거인명부 작성이 불가능하게 돼 다가올 17대 대통령 선거와 18대 국회의원 선거 등을 제대로 실시할 수 없게 되는 법적 혼란상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명백하다”며 “헌법불일치 결정은 충분한 법적, 기술적 대책을 검토하는 시간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결정에 따라서 앞으로는 국외 단기 체류자를 비롯하여 외국영주권자인 재외국민도 대한민국 국적만 갖고 있으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헌재의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지난 1999년 내려진 합헌 결정을 8년 만에 뒤집은 것으로 2005년 말(末) 기준으로 외국 시민권자를 비롯한 재외국민 663만명 가운데 유학생과 주재원 등 단기체류자 115만 명과 외국영주권자 170만 명의 75%인 210만여 명이 유권자로 추정 되고 있다. 이제 공은 헌재로부터 입법부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넘어 왔다. 부재자투표나 해외선거구 확정 등 어떤 형태의 선거권 행사 절차를 마련하는가에 달려 있다.
헌재의 결정에 정치권은 일제히 환영 논평을 내놨다.
한나라당은 “ 헌재의 결정은 당연한 결정이고 환영한다. 정략적 손익계산서보다는 재외 동포들에게도 같은 권리를 부여하는 헌법정신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면서 신속한 선거법 개정을 촉구했다.
열린 우리당도 “국내 정치에 참여하고 싶었던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이 주어지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국민소득 2반불 시대에 국가가 재외국민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할 수 있게 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논평했다.
각 당이 이처럼 헌재 결정 취지에 똑같게 화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론에 들어가 속을 들여다 보면 법 개정이 낙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한나라당은 단기체류자와 영주권자 모두에게 선거권을 주자고 주장하는 반면 열린 우리당은 올해 대선에서는 유학생, 주재원 등 단기체류자에게만 선거권을 주고 추후 영주권자에게 주자고 맞서고 있다.
양측이 이처럼 정반대 주장을 내놓는 이면에는 대선을 둘러싼 양보할 수 없는 이해관계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재외국민의 이념성향이 상당히 보수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점이 그 이유인 것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은 참정권 부여 대상의 범위를 넓히려 하고 있으며 열린 우리당은 가급적 줄이려는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현행 선거법상 해외부재자 투표는 선거일 전(前) 100일부터 부재자 등록을 받아 선거일 40일까지 투표를 완료하게 돼있다. 대선 일인 12월 19일부터 역산하면 9월초에는 해외부재자 등록을 시작해야 한다는 시간 제한이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이 재외국민 들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선 여(與), 야(野)가 시급히 선거법 개정에 나서지 않으면 올해 대선은 물론 내년의 총선까지도 참여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편 동포사회에서도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크게 환영하면서도 일부에서는 적지 않게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참정권 행사를 통(通)해 본국 정치의 병폐가 그대로 전염되어 동포사회가 또다시 반목과 분열로 치달을 것이라는 논리를 세우고 있다.
덧붙여 현재 생활의 터전인 거주국의 주류사회 내 참여가 지연되고 본국 지향적인 해바라기 사회로 급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재외 동포들에게 참정권이 주어지면 득표를 위해 수단 방법 안 가리는 본국 저질 정치인들의 나쁜 영향이 동포사회에 미치고 그로 인한 불법과 타락은 불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본국의 저질 정치 문화가 동포사회까지 침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찬성론자들은 재외 동포 참정권 회복은 해외 동포사회의 위상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본국 정부의 지원도 크게 늘어나 기대되는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고 피(避)할 수 없는 글로벌 사회의 스탠더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법 시행에 따른 잠재적 병폐 때문에 어렵게 되찾은 참정권 회복을 주저할 수는 없다는 여론이다. 선거로 인해 동포사회가 분열 되고 반목이 커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필요 악(惡)이라고 보고 있다.
필자도 재외국민 참정권 회복이 결정된 마당에 실시도 하기 전에 앞서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는 것도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선 헌재의 ‘헌법불합치’가 즉각적인 참정권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세계 재외동포 사회는 지역 한인회와 단체를 중심으로 이런 저런 이유로 빠져 나가려는 집권당에게 조속한 선거법 개정을 촉구하여 올 12월 대선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압박해야 한다. 유신헌법 제정과 함께 사라진 재외국민 참정권을 35년 만에 되찾은 동포들의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헌재의 ‘헌법불일치’ 결정을 이끌어 내기 위해 불철주야로 자신의 생업까지 접을 정도로 노력해온 많은 동포 지도자들과 동포관련 시민연대의 역할에 감사 드린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