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결별의 아픔을 넘어 믿음으로 승화시킨 회고와 감사의 따뜻함이 실내를 채웠다. 부인을 앞세운 연로한 부군은 의연했고, 고인의 멋진 작품인 후손들은 정중하면서도 밝았다. 가신 분을 기리며 진정으로 영생을 축복하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환송의 현장이었다.
얼마 전 일주일 사이에 세 번의 장례에 참여한 일이 있었다. 모두 병환으로 별세한 분들이었는데 같은 교인 두분과 나의 바깥사돈이었다.
투병 중엔 상태가 나빠져도 행여나 하는 일루의 희망으로 기적같은 변화가 일어나길 기대하는 것이 인간의 상정이다. 병의 회복됨을 기뻐하다가 다른 부위로 전이된 악성 종양으로 운명한 남편 앞에서 막막해하는 미망인과 부모 사업의 내조자였던 딸 내외의 단출한 가족은, 조문객들의 위로 앞에서 맘 놓고 슬퍼할 겨를도 없이 행사를 치렀다.
늘 그렇듯이 가라앉은 두 곳의 문상을 다녀오면서 살아있는 내 현실이 모호해지는 착각으로 허탈해졌었는데, 세 번째의 장례식에선 뜻밖으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죽음이란 영원한 이별을 수긍해야하는 절박한 순간이어서, 영결식은 항상 엄숙하며 비감에 젖게 마련이다. 생존 시에 못 다한 배려가 새삼 마음에 걸리고 생의 한계를 가르는 ‘정지’를 뚜렷이 실감하기에 절로 목이 메는데, 그 유족들은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다른 곳과 같은 형식의 장례식이 조용히 이어지고, 가족대표로 고인을 추모하는 순서가 되었다.
“어머님은 훌륭한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들은 어머님의 멋진 작품입니다.” 흐트러짐 없는 아드님의 반듯한 모습과 맑은 음성은, 생전의 어머님 가르침에 순종하고 그 바람에 가까이 다가선 자손의 긍지를, 고인의 영정 앞에 띄워 드리는 인상 깊은 고별사였다. 인간적인 결별의 아픔을 넘어 믿음으로 승화시킨 회고와 감사의 따뜻함이 실내를 채웠다. 부인을 앞세운 연로한 부군은 의연했고, 고인의 멋진 작품인 후손들은 정중하면서도 밝았다. 가신 분을 기리며 진정으로 영생을 축복하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환송의 현장이었다.
평균수명을 다 했다고 한들 어찌 아쉬움과 미련이 없겠는가. 차단된 의식의 벽을 마주하며 깨닫는 허무와 뉘우침에 감각이 경직될 법도한데, 그 가족의 분위기는 지극히 평안했다.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을 충분히 긍정하고, 차분하게 영별을 마무리하는 넉넉한 자세는 조문객 가슴에 잔잔한 감동으로 남았다.
수년전에 돌아가신 내 어머니는 남자형제들 사이의 귀한 외따님이셨다. 소시적부터 오라버니의 어깨 너머로 글공부를 익혔고, 혼자 일본 유학을 준비한 개화된 사상을 지니셨던 분이다.
결혼 후 당신 가정에선 아들과 딸을 구별치 않았고, 더구나 공부하는 딸들에게 가사의 도움을 바라지 않으셨다. 때문에 가끔 들르시는 나의 외조모는, 딸들에게 부엌일을 시키지 않는 어머니를 보시며 “다 큰 계집애들 그렇게 키워 뭣에 쓰려느냐.”고 못마땅해 하셨었다.
오랜 훗날, 어머니를 잘 모시지 못한 죄송함을 어색하게 표현하는 우리에게, “공부 잘 한 너희들이 늘 자랑스러웠다.”시며 외로운 자존심으로 자식의 불효를 감싸주셨던 너그러움. 그 높은 뜻에 미치지 못한 부끄럼을, 이날의 멋있는 상주들 그늘에서 쓸쓸히 자위한다.
일찌기 여성 교육자인 모 박사가 그의 장례에 장송곡 듣기를 원치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도 그 말에 공감했고, 내 죽음에는 슬퍼하지 말 것을 집안 식구에게 당부하고 있다. 무거운 분위기는 남은 자의 몫이고 떠나는 영혼과는 관계없는 선이다. 부족한 인성 탓에 실수가 많아도, 모두 나름의 그림을 남기고 원점으로 돌아가는 우리가 아닌가. 큰 업적으로 역사에 기록되진 못해도, 부여된 삶을 충실히 누리며 자손의 번영에 별다른 하자 없음이 감사하고 행복한 것이다.
앞으로의 장례식에서는 내 시름이 복합된 눈물을 거두고, 저 세상 길의 전송을 진심으로 축복하는 친구로 참석하리라. 풀잎 같은 위로가 아닌 깨끗한 용기를 기원하는 참 벗의 마음으로.
흐뭇한 여운을 간직하고 영결실을 나오며, 문득 내 생애를 조명하는 자리는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이 화목하고 정다운 가정의 기쁜 고백처럼 자신 있는 증언을 기대할 수 있을까. 상실한 육친에의 애틋한 정의로 그리워하게 되는, 보편적 모성에 다름 아닌 나의 지난날을 돌아본다. 그러다가 서둘러 남은 시간을 헤아리는 어설픔에 혼자 실소했다.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어두운 상복을 헤집고 스쳐간다. 찬란한 기쁨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맑고 높은 하늘빛을, 가슴 가득 들이쉬는 상쾌한 오후였다.
<이인숙>
약력: 미주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입상. ‘한국수필’ 신인상. ‘현대시조’ 등단. 미주문인협회,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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