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심장을 조국 폴란드에 묻어다오”
2개의 무덤가진 쇼팽 - 몸은 파리 공동묘지에, 심장은 바르샤바 성당에
파리에서 3번 지하철을 타고 강베타라는 역에서 내리면 돌담으로 둘러싸인 숲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파리의 명물인 ‘페르 라세즈’ 공동묘지다. 공동묘지를 보기 위해 연간 20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은 아마 세계에서 페르 라세즈 뿐일 것이다. 작곡가 비제와 가수 에디 피아프, 화가 들라크로아와 피사로, 배우 이브 몽땅과 시몬 시뇨레, 소설가 발자크와 유고 등 왕년의 프랑스 예술인들뿐만이 아니다. 오스카 와일드, 쇼팽, 마리아 칼라스, 롯시니, 이사도라 덩컨, 그리고 미국의 팝 가수 짐 모리슨 등 프랑스인이 아닌 수많은 저명 인사들이 페르 라세즈에 잠들어 있다. 페르 라세즈 공동묘지는 이곳에 살던 루이 14세의 상담 신부인 페르 라세즈의 이름을 딴 것으로 109 에이커에 30만명이 묻혀 있다.
페르 라세즈의 특징은 묘지마다 세워져 있는 예술품에 가까운 비석과 조각이다. 공동묘지가 아니라 미술관을 둘러보는 기분이다. 어떤 가족묘지는 정원처럼 디자인되어 벽에 가족 모두의 얼굴이 새겨져 있기도 하다. 유명하고 부자일수록 묘지의 조각도 뛰어나 마치 파리 상류층의 가문 자랑 현장 같다. 이 묘지에 묻히는 것은 부의 상징을 의미하는데 ‘김성휘’라고 쓴 한국인의 묘비도 눈에 뜨인다.
<파리‘페르 라세즈’에 있는 쇼팽의 묘지. 158년 동안 팬들의 헌화가 끊어지지 않고 있다. 쇼팽은 자신이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러시아가 폴란드를 점령하자 이에 항의하여 평생 바르샤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페르 라세즈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묘지는 프리데릭 쇼팽(1810~1849)이다. 그가 묻힌 지 158년이 지났지만 하루도 그의 무덤에 팬들이 가져오는 생화가 끊어진 날이 없다고 한다. 기자가 갔을 때도 싱싱한 장미가 놓여 있었다. 쇼팽의 무덤은 생화로만 유명한 것이 아니다. 몸은 파리에, 심장은 조국인 폴란드에 묻어달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쇼팽의 심장은 현재 바르샤바 시내 ‘성십자 성당’에 따로 안치되어 있다. ‘쇼팽’이라는 발음이 보여주듯 쇼팽의 아버지는 원래 프랑스인이었으나 폴란드 귀족 집에서 불어 가정교사를 하다가 폴란드 여성과 결혼하여 쇼팽을 낳았다.
쇼팽은 폴란드의 상징이다. 화폐에도 새겨져 있고 심지어 그의 얼굴이 들어간 폴란드 보드카는 미국에서도 가장 비싼 보드카에 속한다. 바르샤바 방송국에서 정오를 알릴 때는 쇼팽의 마즈르카 멜로디로 대신한다고 한다. 쇼팽은 자신이 파리에 머무는 동안 러시아가 폴란드를 침공하여 점령하자 바르샤바로 돌아가지 않고 프랑스에 머물면서 평생 조국을 그리며 살았다. 그는 폴란드의 민속음악인 마즈르카에 광적인 애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쇼팽’하면 ‘마즈르카’를 연상할 정도로 그는 수많은 마즈르카 곡을 남겼다. 쇼팽 피아노 콘테스트에서 마지막 연주 필수곡으로 마즈르카가 항상 포함되는 것은 그의 얼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쇼팽(사진·그의 유일한 실물사진이다)은 리스트, 멘델스존, 슈만, 파가니니와 동시대의 음악인이지만 프랑스인들은 쇼팽을 유난히 사랑한다. 이유는 쇼팽과 프랑스의 문인 조르쥬 상드의 로맨스가 1840년대 파리 예술계의 화제를 이루었었기 때문이다. 쇼팽은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자기보다 여섯 살이나 많으며 두 아이의 어머니인 여류 소설가 조르쥬 상드와 8년 동거생활을 했었다. 결국 두 사람은 상드의 아들이 반대해 헤어졌지만 이들의 로맨스는 당시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쇼팽은 폐렴으로 39세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뒀다. 심장을 조국에 묻은 애국자 쇼팽 - 그의 묘지에는 폴란드 국기를 연상케 하는 빨간 색과 흰색의 장미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하 납골당에 안치된 마리아 칼라스의 묘지를 벨기에 기자가 돌아보고 있다>
<죽어서도 아내의 얼굴을 끌어안고 있는 어느 프랑스 남자 묘지의 조각>
<파리의 관광명소인 페르 라세즈 공동묘지. 관광객들이 지도를 펴들고 유명 인사들의 무덤을 찾고 있다>
clee@koreatimes.com
이 철 / 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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