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제정 이미 됐지만
업계 로비에 수년간 연기
내년엔 확대시행 전망
현재 미국에 있는 어느 수퍼마켓에 가건 해산물은 원산지 표시가 되어 있어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똑같은 먹거리인데 육류나 청과류, 건과류에는 원산지 표시가 되어 있지 않다.
그같은 모순은 워싱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게임에 연유한다. 로비스트들과 일부 연방의회 의원들이 어류는 물론 육류와 청과류에도 원산지 표시를 하도록 의무화시킨 법이 통과된지 5년이 지나도록 그 시행을 미뤄왔기 때문이다.
연방의회도 민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고, 중국에서 수입되는 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증폭돼 가는 요즘이 식품 원산지표시법의 전면 시행을 밀어붙일 때라는 인식이 증가하고 있다. 자기가 먹는 식품이 어디서 난 것인지에 대한 소비자들의 염려가 커가고 있는데 포장에 그 사실을 밝혀야 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첫째, 그건 소비자들의 기본적으로 알 권리”라고 이 법을 지지하는 소비자 단체 ‘컨수머 유니언’의 선임 과학자 마이클 핸슨은 말한다.
그러나 레이블 법의 적수들은 전혀 만만한 상대가 아니며, 아직까지 연방의회에서 계속 상대를 제압해 왔다. 이 법이 2002년에 농장법의 일부로 제정된 이후 해산물을 제외한 모든 식품들의 원산지 표시를 성공적으로 막아왔던 것이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법은 미국 농부와 목장주를 위해 싼 가격을 앞세운 외국 경쟁자들을 간단히 막아주는 방법치고는 성가시고 돈도 많이 든다면서 원산지 표시는 오개닉 식품처럼 소매업자들이 얼마든지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텍사스주 공화당 소속 전직 연방하원으로 재직 당시 하원 세출위원회 농업소위원회 위원장으로 실력을 행사하며 원산지 표시 시행을 연기시키는데 앞장섰던 헨리 보닐라는 “제품에 원산지 표시를 하는 것은 아무도 금지하지 않습니다. 만일 소비자들이 원한다면 요구할 수 있겠죠”라고 말한다.
그 원산지 표시법의 운명이 앞으로 몇달 안에 정해질 것 같다. 현재 미국 농부들이 전세계로부터 증가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으므로 연방의회가 농업 정책을 심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산 콩, 우크라이나산 밀, 중국산 사과 등이 물밀듯 들어오고 미국의 소비자들은 외국에서 재배하고 가공한 식품들을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섭취하고 있다.
연방의회와 농무부에 깊숙한 유대기반을 갖고 역사적으로 워싱턴에서 강력하고 능률적인 로비를 펼쳐 온 육류업계는 그로서리 업계와 함께 원산지 표기법의 시행 노력을 방해하는 캠페인을 효과적으로 벌여왔다. 법은 쇠고기와 돼지고기, 양고기, 과일과 야채, 해산물과 견과류에 원산지를 표기할 것을 의무화시켰지만 이제까지 논란은 주로 육류를 중심으로 벌어졌지 청과류와 견과류 업계는 훨씬 조용했다.
연방농무부 소속 제임스 베커 수의사가 캐나다에서 들여온 들소를 검사하고 있다.
2005년에 해산물의 원산지 표시를 적극 추진한 사람은 테드 스티븐스 상원의원(알래스카·공화당)으로 막강한 상원 세출위원회의 당시 위원장이었다. 알래스카 어부들이 어류와 패류는 원산지 뿐만 아니라 양식된 것인지 자연산인지까지 표시하도록 한 이 법의 혜택을 보도록 나선 것이었는데 오늘날 원산지 표기법을 둘러싸고 공방중인 양측은 모두 해산물의 원산지 표기를 가지고 자기들의 주장을 정당화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업계단체인 식품마케팅연구소는 지난 3월 해산물 원산지 표기는 비용이 원래 예상보다 10배나 더 들었고 미국산 해산물 매출 증가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한 반면 알래스카 어부 연합은 다르게 말하고 있다. 즉 원산지 표기 덕분에 자연산 연어 가격과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또 중국산 해산물을 둘러싼 작금의 우려를 감안하면 해산물의 원산지 표시는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식품의 원산지 표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추진됐다. 자유무역협정 결과 수입 쇠고기, 특히 캐나다에서 들여오는 고기 때문에 심통이 난 목축업자들이 만일 선택권을 주면 소비자들은 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미제를 택할 것이라는 계산을 전제로 내놓은 것이었다.
그렇게 허우적거리던 원산지 표기법은 2002년에 비로소 농장법의 일부로 제정됐는데 타협안으로 첫 2년은 자발적으로 지키게 하고 2004년부터 의무화하도록 됐다.
이후 육류업계의 전방위 로비가 펼쳐졌고 연방의회는 앞에 말한 보닐라 의원의 주도로 이 법의 전면 실시를 한해 앞둔 2003년에 그 실시를 2년 더 연기시키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 2년 뒤에는 연방농무부로 하여금 2007년 9월까지는 원산지 표기 실시를 위해 예산을 집행하지 못하도록 금지시키는 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이제 민주당이 연방의회의 주도 세력이 되자 원산지 표기법 옹호세력들이 연방의회를 상대로 로비와 PR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현재 의회 지도자들의 반응은 우호적이다. 보닐라 의원의 뒤를 이어 연방하원 세출위원회 농업소위 위원장인 로자 델라우로 의원(코네티컷·민주)은 “아무리 늦어도 2008년에는 원산지 표기법이 시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특약-김은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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