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많은 멕시코 인들에게 멕시코 선거 투표권을 얻는 것은 오랜 숙원이었다. 멕시코 참정권을 가져야 멕시코 정부로부터 제대로 대접받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이유로 몇몇 운동가들은 수십 년째 캠페인을 펼쳤다. 그 결과 2005년 멕시코 정부는 이를 허용하는 법을 제정했고 2006년 7월 대선에서 처음 투표를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참정권 부여 운동가들은 투표 자격이 있는 미국 내 멕시코인수를 1,100만으로 추산하면서 이 중 절반만 참여해도 총 유권자 3,000여만 명이 참가하는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이중 투표에 필요한 유권자 등록을 한 사람은 3만5,700명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실제 표를 던진 사람은 그 절반 이하로 추산되니까 결국 1~2만 명이 투표에 참가한 셈이다.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란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가 보다.
이처럼 참가자 수가 형편없이 줄어든 것은 멕시코 투표법이 92년 이전 이주자는 멕시코로 가 예비 등록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유권자 예비 등록을 하러 멕시코까지 갈 사람이 거의 없는 점을 감안하면 현실적인 유권자 수는 400만으로 줄어든다.
거기다 실제로 투표를 하려면 본 유권자 등록을 하고 등기 우편으로 투표용지 송달을 요구해야 하며 이를 받아 다시 등기 우편으로 선거 전날까지 도착하도록 보내야 한다. 선거 부정을 막기 위해 이런 복잡한 제도를 택했지만 이로 인해 참여율은 극도로 저조한 형편이다.
그러나 이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대다수 재미 멕시코 인들이 투표 참여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샌디에고 지역에서 활동 중인 한 참정권 지지 운동가는 “마켓 등지에서 투표 참여를 호소해도 사람들이 별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번 대선 참가를 위해 유권자 등록을 한 멕시코 인은 샌디에고 전체에서 300명에 불과했다.
이런 현상은 멕시코 사람에 국한되지 않는다. 2000년 해외 일본인에게도 참정권을 허용한 일본 역시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해외 거주 일본인은 59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중 10%인 5만8,000명만이 유권자 등록을 했고 실제로 표를 던진 사람은 그 30%도 안 되는 1만6000여 명에 불과했다.
일본 정부는 해외 일본인의 편의를 돕기 위해 직접 일본에 와서 하거나 해외 일본 영사관을 통해, 또는 우편으로 부재자 투표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음에도 이처럼 투표율이 저조했다는 것은 해외에 나가 살면서 일본 정치에 표를 던질 정도로 관심 있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음을 보여준다. 적은 표지만 만에 하나 이로 인해 선거 결과가 좌우되고 부정 시비가 일어날 경우 누가 이를 조사할 것인지도 문제다.
이런 시비를 방지하기 위해 일본보다 먼저 해외 거주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해 온 대만에서는 귀국해 투표하는 사람에게만 유권자 자격을 주고 있다. 이 때문에 선거철이면 매번 수천 명의 미국 내 대만인이 본국으로 돌아가지만 이것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대만 커뮤니티 안에서도 이 제도가 대만인의 미국 정착을 방해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의 헌법 재판소가 해외 한인들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미주 한인 사회에도 한국 내 정치에 대한 영향력 향상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벌써부터 미국 내 한인 유권자 수를 80만으로 추산하며 미주 한인이 한국 정치를 좌우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우리보다 먼저 이 제도를 시행한 여러 나라 예를 보면 지나친 기대는 금물인 것 같다. 거기다 유난히 형평성 따지기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병역 및 납세 의무를 지지 않는 영주권자에게 표를 주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을 펴기 시작하면 막상 시행 법규를 만들어야할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나올지도 알 수 없다.
재외국민들에게 참정권을 주는 것은 원칙적으로 환영해야 할 일이나 실제로 그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가까운 이웃 나라들의 선례들은 말해주고 있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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