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관전 / 김동열 본보 객원기자
언제나 애기처럼 느껴졌던 작은 아이의 대학 졸업식을 앞두고 지난 6월 10일 출국했다. 아침 주일예배 후 서울 삼성동 공항타워에서 짐을 붙이고 코엑스 후드 코트(Food Court)에서 비빕밥을 간단히 먹고 들뜬 마음으로 대한항공 리무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마침 샌프란시스코 행 비행기 출발과 똑 같은 시간에 마중을 나가는 친지를 공항 터미널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지루함도 잊어 버린 채 출국 수속을 마치고 아시아나에 탑승했다.
10시간 비행 후 하늘에서 본 샌프란시스코는 각각 다른 형상의 건물 색깔과 푸른 베이(만)가 만나 한 폭의 그림처럼 눈에 점점 가까이 들어왔다.
하늘에서 본 샌프란시스코가 왜 세계 3대 미항중에 하나로 평가 됐는지 그 이유를 알게 했다. 샌프란시스코는 띠엄 띠엄 구름과 일찍 밀려온 안개에 적지 않게 가려졌지만 맑고 푸른 하늘과 어울려 거리에 처음 나온 수줍은 여인처럼 보일 듯 말 듯 아름다움과 청아한 품위를 도도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출국 수속을 마치고 차를 기다리는데 어디에서 왔는지 찬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했다. 순간에 불어온 바람은 나의 폐부를 완전히 청소하듯 몸 속에 깊이 깊이 들어가 고향 사람의 도착을 소리 없이 환영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여름 바람은 서울에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참으로 축복 받은 이 지역 사람들만을 위한 특혜라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이 여름 바람은 먼 북극 알라스카에서 시작한다.
알라스카 만에서 시작되는 여름 계절풍은 미서부 연안을 따라 바다의 도시 시애틀이 위치한 워싱턴 주 해안을 지나 오레곤 해안을 거쳐 북부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서 케스케이드 산맥에 막혀 멈추어진다.
이 서북미 태평양연안을 따라 부는 계절풍으로 연안 해수가 회전운동을 일으켜 표면해수가 심해로 이동되고 태평양 심해의 차가운 해수가 표면으로 부상하면서 냉기류가 연안으로 이동하여 하절기 서북미지역기온이 계절풍이 심하게 불때면 초가을의 날씨를 몰고오는 현상을 흔히 볼수가있다.
여름철 해수 표면온도가 섭시 4도까지 되는 때가 있어서 샌프란시스코 베이(만) 중앙에 위치한 알 카트라스 형무소에서 요행히 탈출해도 찬 바닷물 때문에 물속에서 얼어 죽는다는 믿거나 말거나 전설도 생겼다.
하여튼 그 얼음 물이 흘러 내려 오면서 찬 바람을 일으키고 태평양 공기와 결합해 독특한 안개 권을 형성 한다. 미국 어느 곳과도 비교하기 힘든 샌프란시스코만의 독특한 기후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 저녁 언제 어디서 불어올지 모를 안개 때문에 무더운 여름에도 두터운 잠바를 차에 넣고 다녀야 한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반전, 반체제 작가로 ‘톰 소여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은 미국 제일의 독설가이자 위대한 애처가답게 자신이 보낸 가장 추운 겨울은 샌프란시스코의 여름이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의 말이 전해진 다음부터 샌프란시스코의 여름 밤은 관광객들에게 공포의 시베리아 밤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바람의 도시 샌프란시스코도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사계절이 있다.
6월부터 시작되는 여름에는 화씨 90-100도까지 오르지만 실로 변화 무쌍하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항상 날씨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만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의 경우 두툼한 옷 준비가 없을 경우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여름날 오후에 접어 들면서 갑자기 짙은 안개가 밀려 오면서 돌변하면 초 겨울처럼 추운 날씨로 변한다.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따가운 햋살을 즐기며 케이블 카(노면전차)에 매달려 가던 관광객들에게는 그야말로 악몽 같은 시간이다. 이처럼 시시 각각으로 변하는 샌프란시스코의 날씨는 흡사 어린 장난꾸러기 아이들의 마음처럼 예측할 수가 없다. 한 여름에도 반 바지와 두터운 코트가 함께 불평 없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샌프란시스코의 특징이다.
이런 바람과 안개를 더욱 만끽하려는 사람들은 자주 금문교를 찾는다.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꼭 가야 하는 명소로 사랑을 받는 곳이지만 다리를 둘러싸고 있는 프리시디오(Presidio) 언덕과 날씨는 마음이 선한 사람에게는 매우 따듯하고 후한 날씨를 선사하지만 자녀를 괴롭힌 사람에게는 몹시도 나쁜 날씨로 변하여 음산한 겨울 바람과 함께 안개 비를 뿌려 대신 갚아 준다. 또한 세계의 명물 피라미드 빌딩이 한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 전경도 보여주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는 이름에서 보듯 ‘프란시스코’란 성자의 이름을 붙일 만큼 종교 색갈이 진한 다 문화 항구 도시였는데 60년대 월남전이 시작 되면서 반전과 진보의 도시로 크게 변모했다. 전통적 기성세대에 반대하고, 기존의 질서에 대한 개혁과 사회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새로운 시민 정신의 물결이 버클리 대학을 중심으로 일어 났다. 그 과정에서 샌프란시스코 골든 게이트 공원 주변 애쉬비 거리를 중심으로 히피(Hippie)족이 탄생하고 스캇 멕켄지가 불러 우리의 감성을 움켜 주었던 노래 ‘샌프란시스코에 오면 머리에 꽃을……’도 이 때부터 널리 퍼졌다. 그러나 진짜 혁명적인 변화는 천당 아래 구백구십구당(999당)으로 불릴 만큼 천혜의 자연 조건을 구비한 샌프란시스코가 게이(동성애자)들의 메카로 변했다는 우울한 현실이었다.
성경에서나 잠시 비쳐진 일이 현실로 나타났을 때 미국은 물론 세계는 다시 한번 아름다운 항구 샌프란시스코를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주목하게 되었다.
게이들의 해방구처럼 알려진 샌프란시스코로 분노한 게이들이 모이고 그들만의 새로운 문화 중심으로 자리가 잡히면서 샌프란시스코는 엄청난 성 문화 갈등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 동안 게이 정치인도 탄생하고 정치적 암살 사건의 난마 속에서 게이들은 엄청난 고난과 차별을 받으면서도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 스스로의 목소리를 높이고 권익을 성장시켜 왔다.
이제는 사회가 그 들의 존재를 완전히 공인 하는 단계까지 왔지만 아직도 종교계의 극심한 반대와 보수파의 반발로 인권 대립은 계속 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특별한 여름 바람은 깊은 잠에 빠지지 않고 항상 깨어 있도록 이 지역 사람들을 긴장 시켜 왔고 새 질서의 형성을 추구하는 기업적 창의력을 일으키게 했다. 그런 바람이 스탠포드 대학과 함께 실리콘 밸리의 기적을 만들고 미국의 IT지식사회를 개척해 왔다고 샌프란시스칸(샌프란시스코 사람들)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가장 지적 순위가 높은 도시 중 시애틀과 함께 최상위권에 머무르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창의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6개월 만에 나를 반겨준 여름 바람과 언제 다시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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