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프린스턴대학 졸업반 웬디 콥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다. 졸업과 동시에 거액의 연봉이 보장되는 월스트릿으로 직행하기엔 뭔가 아쉬웠다. 사회의 시선처럼 ‘돈벌이에만 관심있는 X 세대’로 남고 싶지 않았다. 4년간 프린스턴에서 배운대로 보다나은 세상을 위해 변화를 이루고 싶었다. 많은 친구들도 비슷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교 수석졸업생으로 아이비리그에 입성했던 웬디는 행정학을 공부하며 미국 공립교육의 실패와 거기서 비롯된 교육의 불평등을 목격했다. 빈민지역 공립학교 학생과 중상류층 사립학교 학생의 평균 실력차이는 하늘과 땅이었다.
졸업 몇달전 웬디는 해답을 찾아냈다. “교사들의 평화봉사단을 만들자! 올해 졸업생들을 모아 교사훈련을 시켜 빈민지역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도록 하자…”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미국을 위해 가르친다(Teach For America)’로 명명하고 이 제안을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
지도교수는 비현실적이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웬디는 굽히지 않았다. 우선 필요한 것은 기금이었다. 30여개 대기업에 편지를 보내고 전국을 순회하며 지원을 요청했다. 당시 21세의 웬디가 확보한 기금은 250만 달러였다. “세상엔 엄청난 돈과 그 돈을 보람있게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습니다”
첫 교사단 선발은 90년 가을로 잡았다. 50명도 안될 것이라는 우려와는 반대로 2,500명이 지원했고 그중 500명을 선발했다. 아무나 뽑은 게 아니었다. “언젠가는 이 나라 어린이들 모두가 훌륭한 교육을 받을 평등한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라는 소명을 공감하는 최고의 인재를 대상으로 삼았다. 월스트릿에서의 스카웃 못지않게 선택받았다는 자부심을 갖도록 했다.
이렇게 출발한 티치포아메리카는 17년이 지난 현재 미 명문대 졸업생들의 가장 인기있는 첫 직장의 하나로 자리를 굳혔다. 2,000여명 모집에 매년 예일, 하버드를 비롯한 아이비리그 졸업생의 10%이상이 지원할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지난해 지원자는 무려 1만9,000명에 달했다.
단기 강훈련을 마친 후 2년간 미국내 빈민 지역에 일선교사로 배치된다. 폭력과 무관심, 가난과 무지로 피폐한 그곳의 교실은 온실속 화초처럼 살아온 이들에겐 ‘죽을만큼 힘든 충격적 경험’이다. 미래의 지도자들답게 대부분 난관을 딛고 결국은 보람을 찾지만 좌절로 무너지는 경우도 적지않다. 10%정도는 의무기간인 2년을 못채우고 탈락하는가 하면, 문제 학생을 벌주다 2,000만달러 소송에 휘말린 예일대 졸업생도 있었다.
이들이 변화의 대상으로 삼는 기성교육계의 비난 또한 거세다. 이력서에 그럴듯한 한 줄을 보태기위한 임시정거장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회의론이다.
그러나 보다 의미있게 인생을 출발하려는 젊은 지성들의 열정과 헌신은 곳곳에서 크고작은 변화를 이루어내고 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학업의욕을 불어넣고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며 티치포아메리카를 거쳐간 ‘동창생’들은 1만2,000명, 이들이 가르친 학생수는 250만명에 달한다. 현재 교사로 근무하는 4,000여명을 포함, 63%가 교육계에서 일하고 있다.
이중 한명이 지난주 워싱턴DC의 교육감으로 임명된 한인2세 미셸 이다. 92년에 코넬대를 졸업한 교사단 3기생이다. 볼티모어 초등학교에서 3년 가르치는 동안 제 학년 읽기수준을 갖춘 학생비율을 13%에서 90%까지 끌어올리면서 병아리교사 미셸은 교육의 불평등을 없앨 가장 절대적 요소는 ‘교사’라는 확신을 얻었다.
평등한 교육 실현에는 환경도 영향을 주고 학부모의 관심과 참여도 필요하다. 그러나 웬디와 미셸을 중심으로 한 젊은 교육개혁그룹이 꼽는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과 열정을 갖춘 젊은 교사들의 헌신이다. 미국의 교육정책은 이런 교사들을 더 많은 학교에 배치하는 장기정책을 최우선으로 재정립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젊은 교사단에 대한 찬사와 비난이 양립하듯 미셸 이의 교육감 임명에 대한 찬반도 팽팽하다. 미공립교육 실패의 대명사인 워싱턴DC의 교육행정을 완전히 뒤흔드는 급진적 개혁이 필요해 미셸을 발탁했다고 에이드리안 펜티시장은 말한다. 기성교육계는 방대한 행정을 어떻게 경험도 없는 30대 젊은 ‘아웃사이더’에게 맡기느냐고 반대한다.
그러나 이 개혁그룹을 길러낸 것은 웬디의 표현에 따르면 ‘무경험의 힘’이었다. 그는 기금을 모으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정규 자격증도 없이 단기훈련만 마친 졸업생들을 일선교사로 배치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아무 경험이 없어 몰랐기 때문에 밀고나갈 수 있었다. 미셸 역시 교장의 경험도, 교육감의 경력도 없기 때문에 ‘학생들만을 위한 교육’을 목표로 과감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무경험’은 이해득실을 계산하지 않는 순수한 젊은 파워가 될 수 있다.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어가는 확실한 힘이다. 미셸 이의 교육혁신이 성공하고 그의 성공을 롤모델 삼아 더 많은 한인 젊은이들이 미국의 사회정의 실현에 앞장서주기를 기대한다.
박 록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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