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10분
일을 하러 걸어오시는 엄마가 저 멀리서 보인다.
오클랜드 Piedmont 아파트에서 버스와 바트를 타고 월넛크릭에 있는 나의 카페까지 일을 하러 나오시는 엄마를 바라다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약간 굽이 있는 신발에다 멋진 정장을 하거나 우아한 코트를 걸치고 사뿐사뿐 걸어오시는 모습은 70을 훌쩍 넘어 81세가 된 지금까지 변함이 없었는데 요새는 평생 늙을것 같지 않을것 같은 엄마도 흐르는 세월은 어쩔수가 없는지 느릿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는 모습에 내 가슴이 쏴아해진다..
해방을 겪고 두만강을 건너 남하를 하고 그리고 군인의 가족으로 육이오를 겪어 오면서 지금까지 6남매를 하나도 잃지 않고 잘 키웠다고 늘 행복해 하시는 엄마.
만주 연길현 삼학촌 강역골에서 태어나셨다는 엄마는 그당시에 가장 큰 도시인 용정에서 여학교를 다녔는데 역시 이웃 동네에 살았던 아버지 역시 용정 고등학교 학생이였다고 한다. 엄마는 아버지의 사촌 여동생과 명신 여고를 다니면서 자취를 하였는데 지금부터 63-64년전 연애가 흔하지 않던 그당시에 집을 떠나 타지에서 하숙생활을 하면서 서로 가슴이 설레는 사랑을 하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보낸 연애편지를 펴보면서 부끄럽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였다는 엄마 . 그렇게 사랑을 하고 그래서 결혼을 하였지만 아버지가 소위 임관시절에 아마도 잠시 기생하고 딴 살림을 차려 엄마를 속상하게 한 적도 있었다는 엄마의 고백.. 그러나 곧 아버지는 다시 가정에 충실하였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지극 정성 엄마를 존경하고 잘 해드린 그런 아버지였다.
용정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쩌다 들어간 학교가 모택동 공산당 학교라 목숨걸고 탈출하여 서울까지 도망나온 아버지의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 같았다.
역시 위기 의식을 느낀 친구와 모의를 하여 감시가 허술한 틈을 타 도망을 나왔는데 집에도 들리지 못하고 바로 친구와 만주에서 부터 강을 건너 낮에는 숨고 밤에는 걷기도 하고 기차도 타면서 그 머나먼 길을 남하하여 서울까지 들어오게 된 아버지. 엉겹결에 아버지와 헤어진 엄마는 서울에서 대학다니면서 등록금을 갖으러 잠깐 고향으로 올라왔다는사촌을 따라 당시겨우 2살이였던 큰 아들인 오빠를 등에 업고 삼팔선을 무사히 넘어 기여코 아버지와 재후할수 있었다고 한다.
삼팔선을 넘을때는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긴박한 상황도 겪었다는데 겨우 21살 여인이 남편을 만나러 그 먼길을 넘어 왔기에 오늘의 나도 존재하겠지.
꼭 고향 한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씀하셨던 부모님의 원을 이루어 드릴수 있게 된 일이 있었는데 25여년전 이곳 한국일보에서 연변을 처음으로 방문을 하여 그 소식을 한국일보에 실었던 일이 있었다. 난 신문을 보고 나서 용기를 내어 “ 누이를 찾습니다”라는 광고를 매일 연변 신문에 내었다.
아버지, 할아버지, 고모 이름을 매일 실은 결과랄까 마침 병원에 계시던 고모부가 고모의 이름을 발견하였고 그 소식을 받은 아버지의 누이 즉 나의 고모는 즉시 답장을 이곳 미국으로 보내 오랜 세월 기다린 아버지의 소원이 이루어 질 수 있었다..
해방되던해 떠나온 고향을 41년만에 다시 방문한 부모님은 아버지 누이를 만나고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그 기쁨도 잠시 지난 40여년의 세월을 곰씹어 가면서 회포를 풀어야 하는데 아버지는 바로 그 이듬해에 안타깝게도 이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그러나 부모님 덕분에 나는 사촌이 3명이나 생겼고 작년 서울 방문때는 연길에서 온 고모의 막내딸인 경희를 만날수 있었다. 단 한번도 못본 사촌끼리 잠실역 앞에 서로의 인상 착의만 이야기 하고 만났는데, 공항에 나온 막내 동생을 첫눈에 알아보았다는 아버지 처럼 나 역시 단번에 나의 사촌을 알아볼수 있었다.
지금은 까마득히 남의 땅이 되어버린 저 만주 근처에서 한국인의 피를 받아 태어난 두 남녀가 사랑을 하여 자손을 번창시켜 각자의 행복한 삶을 살게 하여준 엄마 아버지. 아버지가 안계시지만 씩씩하게 살아가시는 엄마께 기운 내시는 한약 한첩이라도 지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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