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으로, 해변으로’ 집나간 ‘셰익스피어’
사랑, 미움, 질투, 복수, 작은 거짓말로 시작하여 엄청난 기만과 사기로 이어지는 속임수의 행렬… 이같이 비극과 코미디를 동시에 완벽하게 그려낸 작가를 지목하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윌리엄 셰익스피어다. 400년 넘게 끊임없는 동경의 대상으로, 이야기꾼으로, 그리고 연구 대상으로 관심 받아온 셰익스피어는 드라마의 대명사라고 할 만큼 환상적인 언어 구사와 인물 스케치, 그리고 독특한 상황 설정으로 관객을 매혹해 왔다. 매년 여름, 그런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야외에서 공연하는 전통은 웬만한 영어권 대도시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고, 남가주에서도 공원과 바닷가에서 여름 내내 셰익스피어를 만날 수 있다. 누구나 어렴풋이 내용을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들을 주로 하기 때문에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 어른들도 보기에 무난하고, 아이들은 공연 전 피크닉과 함께 잔디밭에서 뛰어놀게 해주면 색다른 구경거리 겸 놀 거리로 받아들인다. 남가주 곳곳에서 열리는 한여름의 셰익스피어 야외공연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공연 전, 관객들이 잔디밭에서 편안히 피크닉을 즐기고 있다.
셰익스피어 바이 더 시(Shakespeare by the Sea)
태평양을 내려다보는 야외극장에서 바다를 마주하고 피크닉과 함께 즐기는 셰익스피어 공연이 마치 ‘한여름 밤의 꿈’과도 같다.
올해는 경쾌한 코미디 ‘말괄량이 길들이기’와 ‘베니스의 상인’ 두 작품으로 샌피드로 바닷가를 중심으로 맨해턴비치, 레돈도비치, 허모사비치 등 남가주 주요 해변과 글렌데일, 어바인, 레이크우드, 토랜스 등지의 공원에서 공연하게 된다.
‘셰익스피어 바이 더 시’는 9년 전 1회 공연으로 시작한 행사가 9주 레퍼터리 순회공연으로 성장한 극단. 모든 연령대가 즐길 수 있도록 내용, 대사, 형식 등을 부담 없이 각색하여 지루하지 않게 연출한다.
공원에서도 밤 시간에는 잔디밭이 축축해지면서 기온이 급강하하지만, 바닷가 공연에는 특히 따뜻한 담요, 옷, 음료 등을 넉넉히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셰익스피어 바이 더 시’ 극단에서 올 여름 공연 예정인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한 장면.
▲일시: 6월14일부터 8월11일까지 정해진 수요일부터 일요일 오후 8시
▲장소: 포인트 퍼먼 팍(807 Paseo Del Mar, San Pedro, CA 90731)을 비롯하여 어바인, 맨해턴비치, 허모사비치, 글렌데일, 토랜스, 리돈도비치, 랜초 팔로스버디스 등 남가주 여러 지역의 바닷가 및 공원
▲입장: 무료
▲문의: (310)548-7705
www.shakespearebythesea.org
자연과 하나되는 색다른 ‘연극 피크닉’
모든 연령대가 즐길 수 있게 부담없이 각색
반스달 아트 팍 셰익스피어 공연 (Shakespeare in Barnsdall Park)
국제적으로 정평 있는 셰익스피어 공연단인 ‘인디펜던트 셰익스피어 컴퍼니’에서 매년 여름 무료로 제공하는 수준 높은 무대. 올해는 셰익스피어의 가장 악마스러운 영웅과 가장 감미로운 연인, 그리고 가장 시적인 왕을 만날 수 있다. ‘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 ‘리처드 2세’(Richard II), 맥베스(Macbeth), 세 작품을 번갈아 10주간 공연할 예정.
일찍 도착하여 미술관과 기타 전시실을 방문하거나, 유명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인 ‘헐리혹 하우스’(Hollyhock House) 등을 둘러볼 수 있고, 공원 곳곳에서 LA 시내와 할리웃 사인이 펼쳐지는 정경을 즐기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공연 전, 해질 무렵 잔디밭에서 피크닉 또한 반드시 해 봐야 하는 일.
주말 공연 이외에도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웍샵, 게스트 퍼포먼스, 스테이지 리딩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주요 게스트로 폴 보히머가 1인극 ‘줄리어스 시저’를, 르네상스 그룹 ‘바이올스 웨스트’가 셰익스피어 시대 악기들로 콘서트를 가질 예정.
▲일시: 7월5일부터 9월2일까지 매주 목~일요일 오후 7시
▲장소: 반스달 아트 팍(4800 Hollywood Bl., Hollywood, CA 90027)
▲문의: (818)716-9306
www.independentshakespeare.com
롱비치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Long Beach Shakespeare Festival)
롱비치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여름 연례행사로 아콰리엄 오브 더 퍼시픽의 앞 잔디밭에서 열린다. 6월23일부터 7월15일까지 드라마 ‘로미오와 줄리엣’, 7월21일부터 8월11일까지 가벼운 코미디극 ‘코미디 오브 에러스’의 두 작품을 선보인다.
전문 셰익스피어 극단답게 수준 있는 무대를 기대할 수 있으며, 매년 이층짜리 이동식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 스테이지를 설치하기 때문에 17세기 영국식 야외무대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다.
롱비치 공연의 특징은 ‘셰익스피어 바이 더 시’와 마찬가지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잔디밭에서 담요를 덮고 보는 재미. 로맨틱한 설정 때문에 데이트 커플들이 많이 모여들지만 작품 선택이나 성향이 가족 위주여서 아이들이 보기에도 무난하다. 따뜻한 복장은 필수.
롱비치 셰익스피어 컴퍼니에서 여름 공연으로 준비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입부.
▲일시: 6월23일~8월11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6시30분
▲장소: 아콰리엄 오브 더 퍼시픽(100 Aquarium Way, Long Beach, CA 90802)
▲입장: 무료
▲문의: (562)997-1494, www.lbshakespeare.org
윌 기어 디어트리컴 보태니컴 셰익스피어 공연
(Will Geer Theatricum Botanicum Summer Repertory Season)
2007년 레퍼터리 시즌이 ‘템페스트’와 ‘한여름 밤의 꿈’으로 막을 연다.
‘셰익스피어 인 더 팍’ 프로그램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여름밤 야외공연이 잘 어울리는 숲속 요정들의 이야기 ‘한여름 밤의 꿈’은 9월30일까지 특정 토요일 오후 8시에 공연하며, 마법의 폭풍 ‘템페스트’는 여름내 거의 매주 일요일 4시 공연으로 볼 수 있다.
윌 기어 디어트리컴 보태니컴은 널리 알려진 극장은 아니지만, 299석을 갖춘 아담한 계단식 야외극장으로서, 연극 공연에는 더없이 적합한 중형 극장이라고 할 수 있다.
공원처럼 울창한 나무와 풀이 극장을 둘러싸고 있어서 아늑하고, 가든까지 있어서 공연 전에 둘러보면 유쾌한 산책 공간이 될 수 있다.
다른 공연들과 달리 티켓을 구입해야 하지만, 작은 식물원에서 피크닉과 연극 관람까지 한다고 생각하면 비용이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것. 특히 올해 작품들은 두개 모두 윌 기어 극장의 푸르름과 어울리기 때문에 주말 나들이로 권할 만하다.
▲일시: 6월부터 10월 초까지 토요일 오후 8시, 일요일 오후 4시
▲장소: 윌 기어 디어트리컴 보태니컴(1419 N. Topanga Canyon Blvd., Topanga, CA 90290)
▲입장: 성인 20~25달러, 학생 및 노인 18달러, 5~12세 어린이 8달러
▲문의: (310)455-3723
www.theatricum.com
해 지기 전, 관객들이 피크닉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동안 공연단이 야외무대의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셰익스피어 인 더 팍’의 역사와 유래
뉴욕 센트럴 팍서 첫 무료 공연
뉴욕 센트럴팍에서 무더운 여름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무료 공연함으로써 ‘셰익스피어 인 더 (센트럴) 팍’이란 이름이 붙여진 셰익스피어 여름 야외공연은 연출가 겸 제작자 조셉 팹의 열정과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1954년부터 맨해턴의 소극장 지하에서 웍샵 형식으로 셰익스피어 무료 공연을 시작한 팹은 1959년, 센트럴 팍 터틀 폰드 앞 잔디밭에서 첫 셰익스피어 무대를 펼쳤다. 그 때 공원의 커미셔너였던 로버트 모세스가 공연으로 인해 잔디에 미치는 손상을 지적하면서 그 비용을 위해 관객에게 티켓을 팔도록 종용했으나, 무료 공연을 끝까지 고집한 팹은 모세스의 요구에 반대하여 오랜 법정시비 끝에 1961년, 센트럴 팍 내에 야외극장 ‘델라코테 디어터’를 건설하는 허가를 받아내고 만다.
첫 공연이 열린 것은 1962년. 작품은 ‘베니스의 상인’으로, 조지 C. 스콧과 제임스 얼 존스가 출연했다.
값비싼 브로드웨이 쇼와 대조적으로 일반인들에게 무료 공개되는 팹의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은 1960년대 뉴요커들에게 뉴욕만의 자존심이자 자랑거리로 인식되었고, 타 도시들에서도 비슷한 셰익스피어 무료 야외공연을 시작했다.
뉴욕 센트럴팍의 델라코테 디어터. ‘셰익스피어 인 더 팍’이 시작된 곳이다.
센트럴 팍을 줄여서 ‘셰익스피어 인 더 팍’으로 부른 제목은 셰익스피어 야외공연의 대명사와 같이 널리 쓰이게 되었고, 차츰 미국뿐 아니라 영국, 호주, 캐나다 등지에서도 여름 이벤트로 각광받는 행사로 성장했다.
델라코테 디어터는 이제 전설적인 극장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으며, 매년 여름 3개 정도의 다른 작품을 2주 정도씩 공연하는데, 그 중 한 쇼는 반드시 셰익스피어 작품으로 선정하여 일반에게 무료 공개하고 있다.
그동안 델라코테 극장을 거쳐간 배우 중에는 메릴 스트립, 케빈 클라인, 존 굿맨, 알 파치노, 모건 프리드먼, 마틴 신, 패트릭 스튜어트, 나탈리 포트맨, 지미 스미츠, 앨리슨 지니, 올리버 플랫 등이 있다.
런던의 국립 초상화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초상화. 작가 및 진품 여부는 확인된 바 없다.
고은주 객원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