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죽어 버린 연방상원의 이민개혁안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우리에게 그것은 그저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20여만명 한인 불법체류자들의 삶이 걸린 문제이며 2만여명 한인 불법체류 대학생들의 오늘과 내일이 좌우되는 중대한 이슈다.
되살릴 수 있을까, 이 절박한 질문의 해답 찾기는 누가 이민개혁안을 죽였는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가해자는 여럿이다. 진보 언론은 공화당의 반이민 보수파를 지목했고, 보수언론은 민주당 지도부의 정치적 계산을 의심한다. 뉴욕타임스는 인터넷 등 테크놀로지를 동원하며 빠르게 확산된 반이민 풀뿌리 사회운동이 주효했다고 분석했고, 월스트릿저널엔 이민법 통과를 부시의 업적으로 내주지 않으려는 민주당의 작전이라는 주장이 실렸다.
이 모든 책임공방엔 나름대로 다 일리가 있다. 상원의 이민개혁안은 처음부터 ‘고아’였다. 사방에서 트집 잡힐 결점을 안고 태어나 어느 누구에게서도 절대적 환영을 받지 못했다. 불체자의 신분합법화라는 대전제에도 불구하고 이민자 그룹에서도 조목조목 반대가 많았다.
미지근하고 시큰둥한 지지에 비해 반대는 뜨겁고 거셌다. 인터넷 블로그와 이메일과 라디오 토크쇼를 통한 ‘사면 반대’ 메시지는 무섭게 확산되면서 맹렬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이민축소를 주장하는 한 단체엔 하루만에 7,000명 회원이 가입했고 또다른 단체는 70만명으로부터 개혁안반대 서명을 받아 상원에 전달했다. 어떤 정치가도 무시하기 힘든 성난 유권자 수십만의 목소리였다.
개혁안 사망의 책임을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 해리 리드의원에게 묻는 시각도 적지 않다. 보수 언론인 프레드 반스는 ‘누가 이민법안을 죽였는가? 리드는 부시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지만 살려두자는 케네디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폐기처분시킨 것은 리드 자신이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민개혁안이 통과되면 부시의 ‘실패한 대통령’ 이미지는 ‘이민개혁의 대부’라는 역사적 유산으로 가려질 수 있다. 또 개혁안의 통과는 공화당 내분의 가장 큰 이슈인 이민논쟁의 종결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니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에 그런 플러스를 허용할 수 없다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민법 되살리기의 직접적 결정 여부가 리드의 손에 달린 것만은 확실하다. 사실 리드가 다시 개혁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면 논의가 재개된다. 리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조건을 명시했다. “부시가 통과에 필요한 공화당 표를 확보해 온다면…”
개혁안은 지난주 토의종결 투표가 45대 50으로 부결되면서 일단 본회의 안건에서 제외되었다. 민주당 37명, 무소속 1명에 공화당은 겨우 7명만이 개혁안을 지지했다. 민주당 11명, 무소속 1명에 38명의 공화당 의원들이 대거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초당적 합의안’이라는 용어가 무색해졌다.
개혁안이 통과되려면 60표 이상의 지지가 필요하다. 이번 주초부터 적극적으로 공화의원 설득에 돌입한 부시를 향해 리드는 “적어도 25표는 확보해달라‘고 강력히 주문한다. 공화당 진영의 멜 마티네즈 의원은 “재상정만 되면 65표 찬성으로 무난히 통과될 것”이라고 낙관론을 펴지만 반대의 대표주자 제프 세션스 의원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생업도 제쳐놓고 마이크를 들고 워싱턴 의사당 앞으로 달려가겠다는 풀뿌리 운동가들의 기세 역시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결코 양보 못한다는 공화당 의원들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60표 확보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뜻이다. 인기가 바닥인 레임덕 부시대통령의 영향력은 크게 기대하기 힘들다. 그보다는 공화당이 원하는 수정안을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지난번엔 1백여개의 수정안이 난무했고 42개가 표결에 부쳐졌다. 가장 복잡하고 가장 중요한 법안이면서도 청문회 없이 곧장 본회의에 올려졌기 때문이다. 수정안만이 각자의 의견을 개진할 기회인데 시간이 충분치 못했다는것이 반대표를 던진 많은 공화당의원들의 불만이었다.
공화당이 수정안을 10여개로 줄이고 토의시간 제한에도 동의할 뜻을 비치면서 개혁안 재상정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행이다.
안도의 숨은 쉬었지만 우리의 일상이 달린 이민개혁안이 우리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죽었다 살아났다 하는 과정을 가슴 졸이며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은 조금 착잡하다. 또 이번 개혁안에 나타난 이민정책의 변화는 각 이민 커뮤니티의 입장도 제각기 달라질 수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민권은 흑인에 얹혀서, 이민자의 권리는 라티노에 얹혀서 무임승차하려는 안일한 생각을 버려야 할 때라는 뜻이다. 한인사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분석하여 우리에게 가장 최선이 될 수 있는 이민개혁의 방향부터 재정립해야 한다.
우리의 입장을 주장할 힘도 길러야 한다. 무엇이 우리의 보이스를 힘 있게 하는가. 정치력이다. 정치력은 투표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2주전 발표된 한인의 투표율은 아시아계에서도 밑바닥인 39%에 머물러 있다. 뼈아픈 자성이 필요하다.
박 록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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