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기억은 때로는 고통을 동반하고 기쁨을 동반한다
데릭 젠슨
일전에 어느 세미나에 참석을 한적이 있다. 강의가 거의 끝나고 강사께서는 참석자 전원에게 잠시 여유를 가지고 마음에로의 여행을 가자고 하였다. 모두 눈을 감고 편안 한 자세로 심 호흡을 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하여 잠깐이나마 다들 각자의 삶을 한동안 행복하게 해주었던 추억의 장소로 여행들을 갔다왔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의 공통점은 바다가 가장 기억나고 마음에 남는 장소라고 하였는데 아마도 바다가 주는 넉넉함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것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바다를 좋아하기 때문에 바다에로의 여행을 했다. 멕시코의 작은 섬 COZUMEL, 에메랄드 빛의 반짝이는 바다속에서 온갖 색색의 물고기들과 수영하던 그때, 야자수 나무 아래서 마냥 바다를 바라보다가 혹은 책을 보던가 그러다 책을 덮고 한잠 낮잠을 자던 그 평화로웠던 기억에로의 여행.
심신이 지치고 외로울때 그러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여행을 갈 갈 형편이 안될때 잠시라도 나름대로 마음에로의 여행을 가는 것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나는 바다가 지척에 있는 이곳에 살면서 자주 나가게 되지가 않는다.이곳 사람들 처럼 비치 타월 한장 들고 선텐 크림 바르고 모래 사장에 앉아 종일 누워 있기에는 나의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때로는 담요깔고 앉아 바닷가에 가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이나 그저 아무것도 안하고 ,사진가 김홍희씨의 표현을 빌자면 “햇살에 물비늘 뒤채는 겨울바다” 바로 그런 바다를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동생이 태어난 곳이 부산이라 잠재의식에는 바다가 늘 있었겠지만 그래도 나에게 가장 처음 기억나는 바다는 중학교때 경포대로 수학여행을 갔을때이다. 이미 어두워진 저녁에 우리는 도착하여 바다를 채 보지 못하고 여관에 들었는데 집에서 멀리 떠나왔다는 설레임이였던지 아니면 아침까지 기다려 바다를 보기가 너무나 애가 타서 인지 깜깜한 밤에 여관방 옥상에 올라갔었다.
그러나 달도 없고 별도 없는 칠흙 같은 어둠속에서 직접 바다를 볼수는 없었지만 나는 내음과 함께 바다를 느낄수 있었다. 내 눈 앞에 무한정 펼쳐져 있는 어둠의 우주가 있었고 그 우주속에서 가느다랗게, 허옇게 밀려오는 파도의 율동을 보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나지막하면서도 웅장하게 들려오는 파도의 소리, 그 소리는 흐느낌 같기도 했고 혹은 바다의 신이 중얼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던 그런 소리를 들을수가 있었다. 여관 옥상에 올라가 어둠속에 느꼈던 그 경이로움을 어찌 잊으랴 한번은 멕시코 칸쿤으로 여행을 갔을때이다. 번접하다는 명성과는 달리 너무나 하얗고 고운 조개 모래사장이 무한정 펼쳐져 있는 이곳에서 새벽에 깨어 바다로 나가 아직 동이 트기전의 캄캄한 바다를 거닐고 있으면 어느덧 아무 기척도 없이 동이 환하게 트여 있는, 어둠과 빛의 구분을 전혀 할수 없는 막막한 상태를 경험한 기억이 있다. 어둠과 빛은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 또한 바다와 하늘은 서로가 애초부터 하나였음을…, 또한 이탈리아의 작은 섬카프리로 여행을 갔을때 여행객을 잔뜩 실은 버스는 곡예를 하듯이 산동네 꼬불꼬불한 길을 거의 산 꼭대기 까지 잘도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길이 어찌나 좁은지 두차가 서로 지나다닐수가 없어 한 차가 오면 한차는 옆으로 최대한 비켜서서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하지만 서로 다투지도 않고 양보도 잘하면서 어찌들 그리도 잘 올라가던지. 차에서 내려다 보면 까마득한 절벽이라 우리는 오금이 저리도록 조마조마 했었는데 운전사와 가이드는 그저 평화로운 얼굴들로 말이다.
산에 올라가서 또 한명씩 타는 곤돌라를 타고 산 정상에 올라가서 내 발밑에 펼쳐져 있던 드넓게 펼쳐져 있는 지중해를 바라보았을때의 그 장관이란 . Tiberius & Caligula 같은 로마의 황제들이 그 경치에 현혹이 되어 아방궁을 이곳에다 지었다고 하는데 산 꼭대기에서 안개가 걷히면 내려다 보이는 섬의 풍광은 가히 완벽한 신의 창조물이라고 할수도 있을 정도였다.
섬 둘레의 바위 사이사이를 돌면서 용트림 하면서 쳐대는 파도와 까마득한 산 밑에서 날라다니는 갈매기와, 구름처럼 피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안개의 무리, 절벽 틈새로 피어있는 수 많은 야생화들, 이런 카프리 섬의 풍경은 참으로 장엄하기까지 하여 경건해지기까지 했던 기억이 있다. 누가 그랬던가 인생은 퍼즐과 같다고. 작은 조각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듯이 이렇게 작은 기억의 퍼즐은 나에게 삶의 찬란한 기쁨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바다가 꼭 나에게 즐거운 추억만 준 것은 아니였다. 사는 것이 때로는 고달플땐 버클리 마리나 방파제에 차를 세워놓고 마냥 울기도 했고
내 존재의 의미가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과 전혀 다른 곳으로 흐르는 것에 대한 반발심이랄까 ,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랄까 샌프란시스코 바다에 그만 내 인생을 마감하겠다고 뛰어들었던 그런 젊은 시절의 자랑스럽지 못한 광기도 기억나게 하는 바다이지만 이런 모든 것 그것 역시 이제는 하나의 퍼즐 조각이 되어 나의 삶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꼭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의 장소로만 떠나는 마음의 여행도 좋지만 힘들었던 시간들을 떠올리는 그런 마음의 여행도 가끔 해보는 것도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고통의 시간이 있었기에 현재가 있음을 인식도 하게되고 또한 아픔의 시절 역시 하나의 인생의 한 부분이 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암만 고통스러웠던 시간들도 지나가면 다 아름답고 현재는 밤하늘을 멋지게 밝히는 축제의 불꽃이고 미래는 광할하게 펼쳐져 있는 희망이 아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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